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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

by 민진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수구화(繡毬花)가 수국화로 변하고 다음은 수국으로. 내가 알기로는 물을 좋아하는 국화라고 배웠는데 이렇게 고운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 새롭다. 작은 여러 개의 꽃방울들이 모여 꽃숭어리를 완성하여 가는 것이 인생과 비슷한가. 하루하루가 모여서 삶이 되는 것이니까. 꽃잎 가운데 둥그런 것이 터져나 별이 되는데 그것이 진짜 꽃이다. 얼마나 귀하면 꽃을 싸는 보자기가 그리도 예쁜 보석함일까.

장미 수국을 들였다. 한 해의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꽃을 볼 수 있지만 충분히 보상을 받는다. 시중에 나오는 수국 값이 만만치 않음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한다. 꺽꽂이가 잘 되고 강한 녀석들인데, 몸 값이 높을까. 이번에 들인 것은 꽃이 진 다음 판매를 해서인지 그리 비싸지 않았다. 내년 유월이 되면 장미처럼 피어나는 수국을 보겠지 하면 벌써 꽃 마음이 된다.


집에 있는 수국 나무에 마지막 꽃 한 송이 피어나는 중이다. 이른 봄 두 그루 심겨 있던 것을 각각 다른 화분에 심으면서 남편 친구 분에게 선물하려고 몫을 정했다. 예쁘게 피어나자 남편에게 가져다주라고 하니 싫다는 것이다. 왜냐고 하니까 자기는 수국이 별로라고 했다. 상여 꽃 갔다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도 닮은 것 같지는 않다. 곰곰 더듬어보니 어렸을 때 마을에는 수국이 없었다. 상여는 습자지에 알록달록 물을 들여서 만든 꽃으로 장식을 했다. 아이 때 장례를 치르는 장면을 보았는데 정말 화려했다. 마지막 가는 길이라고 꽃에 파묻혀서 보내려는 것이었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색색의 꽃상여가 사라져 갔다. 대신에 영구차가 관을 운반하는 것으로 장례식이 바뀌었다. 그 수십 년이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꽃을 바라보는 모습이 각별해졌다고 해야 할까. 오월부터 가슴을 뛰게 하던 둥근 꽃은 칠월까지 빛난다.

여고를 다니던 시절 도내 학생 임원들이 모여서 예절교육과 정신 교육을 받는 곳에 참석을 했다. 한복을 준비해 오란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하얀 한복을 빌려 주었다. 아마도 부활절 때 입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가져가서 입었는데 나 혼자 위아래 흰색이었다. 다들 알록달록한데 나만 희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 속에서 저만 달랐을 때 와지는 묘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달까. 집은 먼데 바꿔올 수도 없고 그냥 입고 지내야 했다. 교육청 행사였으니까 교관들이 나이 지긋한 여선생님들이었다.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순간 당황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과 겉모습이 다르니까 응어리가 얹혀있는 기분인데. 예! 하고 멈췄다. 올 것이 온 건가. 순간 든 생각이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그냥 가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뭐라 말할 수 없지만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을 수도 있다. 왜 소복 같은 흰 한복을 입었느냐고 묻고 싶었나. 그것이 무슨 문제라도 되었을까. 아님 누구와도 차별화된 것에 대한 꾸지람을 참았는지도. 다르면 안 되는 시절이긴 했다. 팔십 년도 초반이었으니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허용될 만한 사회의 정신적인 기둥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까. 예절교육이나 그 외 것들은 눈곱만큼도 생각나지 않으나 그 한 꼭지만 빛바랜 사진처럼 내 안에 남아있다.


우리는 다름이라는 것을 얼마나 인정하고 살아갈까. 기준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지 저울질하는 것은 아닌가.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여유가 내게 없는 것 같아서 못내 아쉽다. 튀는 것도 못 봐주고, 차이 나는 것도 용납하기 어렵고, 엇비슷하기를 바라고 그 무리들과만 어울리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


육종기술이 발달하여 총천연의 모양과 색깔로 수국이 피어난다. 모두가 같을 이유는 없다. 그중에 토종의 산 수국은 하얗고 가녀리다. 나는 어쩌면 하얀 산 수국이었을 수도 있겠다며 그 옛날의 나를 지금이라도 다독이고 위로해준다.

수국 화분은 친구가 가져갔다. 거실에 놓은 사진을 보니 그곳은 꽃등이 켜졌다. 마음은 덩달아 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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