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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

by 민진

길가에 고양이가 죽어 있다. 그 위로 차들이 지나다녀 형태가 망가져 보기가 민망하다. 저것을 묻어주어야 되겠는데 생각만 한다. 저녁때 버스를 타려고 나가다 보니 또 한 마리의 사체가 보인다. 누군가 해코지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일은 꼭 묻어 주어야겠네 하며 길을 가지만, 의지가 약해서 결심을 여러 번 해야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겠지 미루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외면하고픈. 나를 다독인다. 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빤히 바라보아야 한다. 같이 숨 쉬고 살았던 것에 대한 작은 예의라고 생각하자며 숨을 고른다.


몇 년 전에 큰 딸애가 입시 후 시간제로 일했다. 미술학원 선생님 가족이 오랜만에 여행을 가면서 동물들을 부탁을 했다. 그중에 나이를 먹을대로 먹어 허약한 개도 있었다. 먼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돌보았는데, 강아지가 먼 길을 떠났다.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선생님과 먼저 얘기를 하고 가지고 오라고 했다. 작은 하얀 것이었다.

강가 큰 미루나무 밑으로 갔다. 두 그루 있는데 작은 것은 거센 바람이 불면 어떻게 될지 몰라 아예 우람한 나무 밑에다 묻어주었다. 딴에는 수목 장을 한다는 생각으로. 그 녀석은 사람과 같이 살았고, 살만큼 살다가 간 경우였다. 알지 못한 것의 마지막을 같이했다.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흰 천에 싸와서 그대로 땅을 파고 뉘었다. 거의 십여 년 전 일이다. 물론 그 선생님은 여행에서 돌아온 뒤 미루나무를 찾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모자와 마스크를 쓴다. 고무장갑과 신문지 비닐봉지를 챙긴다. 그 작은 몸체는 차바퀴에 깔리고 여러 날 되어 냄새가 나서 파리들이 내려앉아 있다. 두려움이 손끝에서 파르르 떤다. 심박수가 높아지는 것 같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냄새는 걸러내지 못하나. ‘고양이 옹달샘’ 글에 나온 노르스름한 고양이 같아서 마음이 더 짠하고 씁쓸하다. 저를 글 속에 등장시켜 빚진 마음이 있었나 보다.


사실 냥이들이 새벽마다 우는 소리가 꼭 아기 울음처럼 들리고, 시끄럽기도 하다. 마당에 흙을 말리려고 펴 놓으면 밤에 뒤를 보고 가기도 다. 흙은 잘 간수하고 식초 탄 물을 분무기로 뿌린다. 쓰레기 봉지에 생선가시나 닭 뼈라도 들어가 있으면 온통 찢어 헤집는다. 아예 식초 한 병을 사다 놓고 쓰레기 버릴 때마다 냄새를 배게 하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무신경한 내가 이렇게 할 정도라면 길 냥이 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며 소중한 목숨들인데.


신문지를 덮어 간신히 봉지에 넣는다. 사오 미터 떨어져 있는 곳의 다른 한 마리는 몸체가 상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무겁다. 뻣뻣하여서 겨우 넣는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강가로 간다. 비가 많이 내린 뒤라서 강물이 가득하다. 그쪽은 안 될 것 같다. 청개구리네 엄마처럼 장마가 지면 떠내려갈까 봐서. 다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지나가기까지 하염없이 걷는다.

풀이 덜 자란 곳에 자리를 잡고 땅을 파기 시작한다. 자갈투성이다. 꽃삽으로 둥그렇게 두 마리가 들어가 묻힐 만큼. 신문지에 싸인 것을 내려놓는다. 자리가 좁은지 가득 찬다. 더 널찍했으면 좋을 텐데. 빨리 끝내고 싶어 서둔다. 그 위에 신문지를 한 겹 덧씌우고 파낸 흙을 덮는다. 덮는 것은 금방이다. 고양이 장례엔 조문객이 없다. 단지 바람에 흔들리는 수많은 바늘꽃들이 대신한다. 아마 내년에는 고양이 무덤 위에도 하얗게 피어나 한들거릴 것이다. 혹여 바람결에 야옹야옹 소리가 나지는 않겠지.


흔적 없는 무덤 위에 꽃 한 개 심고 물러나는 하늘에는 희끄무레 슬픈 듯 낮달이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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