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이 만발한 곳이다. 꽃을 보며 첫새벽에 이곳에 서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슬이 스러지기 전에, 청아한 새소리와 함께 이 정원을 거닐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가지를 흔들고 가는 바람일 수 있다면. 나도 한켠에 새초롬하게 머물기는 어려울까.
꽃이 피어나도록 조용하게 기도하면 안 될까. 꽃길 사이로 거닐며 마음과 마음으로 주고받는 미소만으로 만족하면 부족한가. 소곤소곤하는 것도 들으시며 생각만으로도 벌써 아시는 분께 큰 소리 내는 것은 내 소리 먼저 들어달라는 떼씀은 아닐까. 혼자서 거닐다 보면 보여주기 위한 몸짓 같은 것은 스러지겠지. 그대로의 맨발로 설 수 있다면. 터트려지는 꽃잎이 내는 소리라도 들을 양으로 사분사분 걸으며, 꽃의 마음을 만져보듯 잔잔한 웃음으로 나아가면 안 될까. 사잇길로 가며 다른 꽃들에게도 눈짓으로 아는 채 손을 흔들어주고. 고운 것들에게 하나하나 소중하다고 눈빛으로 말하면 어떨까. 꽃들의 찬미 소리가 끝나면 아주 희미하게 내 노래도 읊조려볼까. 귀를 만드신 이는 잘 들으시니. 마음속에 깃드는 비밀이랴.
아! 이른 아침에 이곳에 있을 수 있다면. 꽃들끼리 피워내는 수런거림을 듣고, 그분이 손 흔들어 줄 것 같다. 나도 꽃 인양 끼여서 조용히 마주 보면. 새소리는 청신하고. 솔로몬의 모든 옷가지가 이 꽃 하나보다 못하다는 뜻을 알아듣는 마음이고, 눈이며 귀이기를.
모든 것 내려놓고 꽃과 새소리와 바람의 속살거림 속에서 세미한 속삭임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파랗게 옥빛보다 더 파랗게 비워내는 꽃의 마음을 바라본다. 나의 아집과 교만과 미련함을 내버릴 수 있다면. 그러면 저 하늘나라와 가까워질까. 내 속에 냄새나는 것들을 그분 앞에 그득히 쏟아낼 줄만 알았지. 말씀 앞에 한 번이라도 온전히 서 보았을까. 초라한 나의 모습이 쓸쓸하다. 무어라 하시는지 그윽하게 귀 기울인 적 있기는 할까. 꽃 빛깔로 오는, 새소리로 울려 나는, 바람 속의 고요를 얼마나 들으려 했던가.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 같다고 하던 말씀 앞에 다시 서 본다.
꽃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이 바람에 말리 우기 전에, 햇살이 향기를 모으듯 물주머니를 가져가기 전, 그 청초한 꽃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면. 동산을 거니시는 그분의 손이 닿으면 소꿉놀이하는 아이처럼 다 놓고 일어날 수 있을까. 그때가 언제쯤일까. 수국처럼 꽃잎 다 말리우고 고독해지는 때일까. 물기 다 빠져버린, 바스락거리는 마른 꽃으로라도 가까이 서고 싶은 저 파르란 수국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