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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초상권

by 민진

남편보다 늦게 들어온 날 공기가 착 가라앉아 있다. 풀이 죽어 있는 딸에게 작은 소리로 왜? 눈빛으로도 말한다. 밑도 끝도 없이 “아빠가 고양이를 쫓아냈단 말이야” “무슨 얘기야”

고양이 소리가 나서 옥상에 올라가 보았단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있어서 집에 데려와 먹이도 주고 놀고 있는데 아빠가 오자마자 다짜고짜 쫓아냈다고. 재수를 하고 있는 딸이 내일모레가 수능인데, 다른 것에 맘을 뺏기고 있으니 나도 편치만은 않다.

동물을 키울 여건도 안 되고 집에 들이기 싫어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온 남편도 화가 나 있고 참. 장을 보는 날이라 남편과 차를 타고 마트에 가는데 계속 고양이 소리가 따라온다. 이상하네 오늘은 왜 이렇게 이 동네 저 동네 고양이가 난리일까. “고양이 소리 안 들려요” 하며 지난다. 이것저것 사며 보낸 시간이 한 시간 정도는 됐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울린다. 너무나 가까이서 들린다. 차 뒤편을 돌아본다. 아무것도 없다. 차문을 닫아두는데 고양이가 들어올 는 없고. 이어지는 고양이 울음에 내 귀를 의심한다. 환청이나 환각일까. 생각이 많아지는데 야옹거림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주차를 하고 차 밑을 살피는데 애기 고양이가 앉아 있다. 어디 갈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흔적만 피우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딸에게 전화를 한다. 고양이가 차 밑에서 나오지를 않는다고. 박스를 가지고 달려오더니 고양이를 부른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문을 열자마자 뛰어나갔다며 염려 안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단다. 약해 보이는 작은 이 녀석이 걱정이어서 친구와 전화로 이야기하는 중에 고양이를 몰아냈다고. 집에서 멀리 차를 세우는데 어떻게 우리 차에 올라가 있었을까. 마트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짧지도 않았는데 그 긴 시간을 버틴 것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꼭 저 갈 곳을 알고 있는 것처럼. 뭔가에 홀린 양 고양이 뜻을 따라간 것은 아니겠지.

벌써 연락이 되었는지 친구가 새끼 고양이를 가지러 오기로 했다며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시간이 흐른 뒤에 고양이 잘 보냈다며 돌아왔다. 버스 정거장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했겠지. 아니 전화로 벌써 모든 과정을 나누었을까. 고양이 이름을 달래로 지었다며 자라가는 모습을 가끔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달래 서열이 친구 엄마 다음이라며 즐거이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아빠 들으란 것처럼. 집에 내려오면 한 번은 달래한테 가는 것인지 친구를 만나는 것인지 들렀다 온다.


우리 집처럼 아예 키우지 못한다고 못 박아 놓는 집이 있는가 하면, 막내딸이 키우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받아들이는 부모도 있다. 이런 부모님을 둔 자녀들의 정서는 어떤 빛깔일까. 마음이 고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고. 그런 분들이 있어 세상이 어우러지고 아름다운 곳이 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거부할 수밖에 없지만 어떤 이는 받아들이고 싸매 주고 안아서 가족이 된다.


딸이 서울로 학교를 가더니 자취집에서 고양이와 함께다. 명절에 내려와도 너무 혼자 오래 둘 수 없다며 친구와 교대로 시간을 맞추어 올라간다. “너는 고양이가 엄마 아빠보다 중한가 보네” 하면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면서 “그럼 내가 고양이를 며칠씩 혼자 내버려 두면 좋겠어요” 하는데 할 말을 잃는다. 기르기로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옷마다 고양이 터럭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좀 안되기도 했다. 그것을 이야기하면 그래서 옷 색깔이 회색으로 맞추어져 가는 것 같다며 아무렇지도 않아한다.

고양이 이야기를 쓰면서 딸에게 사진 좀 보내주라고 했다. 보내온 것이 부분 사진이다. 모두 다 나온 사진으로 부탁하자 ‘전체는 안 나왔으면 좋겠네’ 한마디로 자른다. 나에게도 사진이 여러 장이 있다. 궁금할 때마다 나비 안부를 묻고 사진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키우지는 않지만 공기 속에, 생각 속에 고양이는 흐르고 있었구나. 딸은 자기가 키우지 못하게 된다면 엄마 아빠가 키워줘 하면서 미리 마음을 준비시키기도 한다. 지난번 글 낮달에 고양이 사진을 올리고 싶었는데 딸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참았다. 어쩌면 그래서 전편 같은 한편을 더 쓰는지도 모른다. 딸이 허락을 하지 않으니 사진이 아무리 많아도 사용하지 못한다. 사람만이 아닌 고양이도 초상권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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