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이 쿨렁쿨렁 몰려 내려간다. 깊이를 모르는 구렁 같다. 산책길과 바늘꽃 밭도 물을 담았다. 날씨가 맑아지자 물들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얕은 곳만 찾던 어린 물고기들이 물살을 따라가지 못하고 갇혀 버렸다. 배를 허옇게 드러내고 길가에서 팔딱거린다. 몇 모금의 물이 남아 있는 곳에서는 간신이 숨을 쉬지만 해가 올라 물을 말리우면 꼼짝없이 입 벌리고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거센 물결 앞에 목숨 줄을 내어 놓아야 한다.
오랜만에 하늘이 하얀 구름들을 둥실 띄우고 웃는다. 아침에 강가로 간다. 아직 물이 자작하게 남아 있기도 했지만 금세 빠질 것 같다. 강 자체가 흘러가는 느낌. 백로 세 마리가 한가로이 먹이를 먹고 있다. 건너편으로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녀석은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둑에서 내려다보니 어떤 아저씨가 물에다가 무엇을 자꾸 던진다. 물고기이겠거니 생각하고 내려간다. 아니나 다를까 물고기들이 숨만 꼴 딱 꼴 딱 쉬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아저씨는 가고 내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납자루, 피라미, 각시붕어 새끼들 같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은은한 멋을 자랑하는 민물고기들. 뱀을 닮은 드렁이도 있다. 어렸을 때 보았지 않았다면 살려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끄러워서 풀잎을 뜯어 몸을 감싸서 던지니 되었다. 물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의 물고기는 풀숲에 숨거나 도망을 다니니 잡을 수가 없다. 아예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될 때에야 가만 몸을 맡긴다. 힘을 빼야만 된다. 물은 소리 없이 빠져나간다. 한 시간 정도 팔 운동을 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들도 살던 곳으로 보낸다.
물 미끄럼틀을 타는 것들이나 거머리는 그냥 둔다. 물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생명임에 분명한데 편견은 여지없이 머리를 디민다. 차별이라는 난폭함을 행사하는 나와 만난다.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가차 없이 자를 들이댄다. 내 안의 두 자아가 늘 몸부림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나를 채근하거나 반대하지도 않는다. 우선순위라는 것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중요함의 가치는 누가 가늠하지. 차등을 두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일까.
자전거를 타고 오던 여인은 비닐봉지에 물과 물고기를 넣는다. 키우려고 그러나. 나를 보고 저 쪽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살아 있느냐고 물어보자 살아있단다. 여기는 없는 편이라고. 내가 주어 던져서 그렇다고 하자, 자기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가야 한단다. 물고기를 거반 던져서 저쪽으로 가볼까 하는데 오랜만에 나온 햇빛이 너무 강렬하다. 어떤 소설에서 햇빛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는 말이 생각난다. 몇 주째 비만 오다가 나온 햇살은 바늘처럼 따갑다. 저쪽에까지 가볼 용기를 잃는다. 주저된다. 저만큼 어떤 아주머니도 물고기를 살린다. 몇 발짝 떼다 보니 마른땅이 된 길에 이미 말라 있는 은빛 주검들이 즐비하다. 그냥 돌아선다. 살아있는 것들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니 시작도 끝내는 것도 내 뜻대로다.
그때도 흙탕물보다 더 시커먼 물이 우릉우릉 울음소리를 내며 바다로 달렸다. 어쩌면 내 안에서 들리던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산모롱이를 돌아 낮은 산에 올라 물 때문에 가 볼 수 없는 곳을 바라본다. 갯논을 사서 논바닥을 고르고 모를 심기를 이태, 태풍과 백중이 겹치며 홍수가 나서 둑이 무너졌다. 모든 것이 잠잠해지고 쨍한 태양이 얼굴을 내밀자 일이 시작되었다. 꽃필 때가 된 나락들이 소금기를 머금고 새까맣게 타들었다. 민물로 씻어보지만, 밀물이다가 썰물이 되면 짠물에 잠기게 되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해 농사를 망쳤다. 중장비를 동원해서 막았지만 세 해 연거푸 둑이 터지자 아버지는 화병으로 몸져누웠다.
그 일 후부터였을까. 큰 물이 지면 마음이 차가워진다. 얼어붙는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른 체하고 싶어 진다. 뉴스도 보고 싶지 않다. 깜깜 이가 되어 그 시간이 비켜가기를 바란다. 꽃들도 그냥 둔다. 비 맞고 이겨내라고 하는 오기 같은 것이 생긴다. 걔네들을 나하고 동일시시키고 있는 것 같다. 산 위에서 막막히 논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가 아직 내 안에 웅크리고 있나.
이상하게 강에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니. 아침이라서 그 여린 것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물고물 한 것들을 제 자리로 돌려보내면서 장마가 지면 또 나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살려준 목숨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가 아닌, 물고기라도 물속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내 안에 주저앉아 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 물가에 서서 크르릉 흘러가는 물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