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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의 노래

by 민진

하늘은 곧 금이 갈 것처럼 쨍하다. 물길이 지나고 둔덕과 골짜기도 있다. 맨발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다. 발목까지 빠지니 뿌리가 박힌 나무가 걸어가는 느낌이다. 아버지는 큰 나무처럼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면서 바다 깊숙이 나아간다. 우리가 나무라면 머리카락은 새 둥지인가. 걸을 때마다 삐딱 빼딱한 자죽.

모래가 많이 섞인 곳은 갑옷을 입은 조개들 차지고, 머드팩을 할 만한 곳은 부드러운 몸을 가진 것들의 동네다. 바다 생물들은 영역 싸움 없이도 살아갈까. 우리가 지나가자 미끄럼을 타면서 급히 피한다. 다슬기들은 흩뿌려 놓은 점처럼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크거나 작거나 길을 만드는 걸까. 아니면 흔적이라고 해야 하나. 게들은 불룩하게 쌓아놓은 곳으로 쏙 들어가 더듬이 같은 눈만을 반짝거리며 내다본다.


바다는 하늘과 마주 보고 내외간처럼 별빛을 주고받는다. 달빛을 품으며 물빛으로 화답하던 곱디고운 노래를 부르던 시절. 누구라도 언제라도 찾아가면 맞아주었다. 거절하지 않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오손도손 생명을 키우고 나누고 사랑했다. 언제부턴가 금이 그이고 깃발이 내걸렸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금지된 땅.


물때를 맞추어 나왔다. 아버지는 짱둥어 구멍을 살핀다. 금방 물방울이 튀었을 법한 들락날락한 것에 집중한다. 그것을 중심에 놓고 어림하여 일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둔다. 조금의 틈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빙 둘러 밟기 시작한다. 다리를 깊이깊이 박아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처럼. 거의 오십 센티씩은 들어갔다. 삼백육십 도의 긴 원이 움푹한 발자국으로 섬이 된다. 짱뚱어가 꾀가 많아서 사방에 비밀의 문을 만들어 놓는가. 아버지는 길들을 막고서 손을 구멍 속에 집어넣는다. 드디어 팔딱거리는 것이 손에서 지느러미를 폈다 오므렸다 한다. ‘나 이렇게 무섭다!’ 겁을 주는 것처럼. 힘이 센 녀석이 아버지 손에서 파드닥거린다. 구덕에 얼른 집어넣어야 한다. 몸에 기름칠을 했는지 미끄럽고 잽싸기가 한이 없다.다 잡은 녀석이 탈출에 성공한 것을 두 눈 멀거니 뜨고 보고만 있기도 했다. 옥색의 땡땡이로 치장을 하고 잡힌 것이 억울해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은 눈두덩. 그릇이 팔딱이는 짱뚱어로 차오른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해 본다. 흙물이 가라앉지 않는 곳을 찜하고 발로 밟기 시작한다. 자그마한 발을 아무리 굴러도 무게가 작은지 발목까지 들어가다가 만다. 그런대로 빙 둘러 원을 두르고 팔을 겨드랑이까지 집어넣으면 고기는 없고 뻘이 한주먹이다. 잡으려는 것은 못 잡고 내가 바다 고기가 된다. 보호색을 입은 듯 온몸이 잿빛이다.

엎드려 있는 갯벌에 깨알같이 박혀있는 것은 다 누구의 숨구멍일까. 색색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물이 흘러가는 두덕 갯벌 살들을 더듬는다. 눈들을 찾는다. 양쪽 똑같이 뚫려 있는 바늘구멍 같은 것을 따라서 손가락을 죽 들이민다. 미끄러지다 끝닿는 데서 딱딱한 것이 만져진다. 맛있어서 맛 조개일까. 주우면 다슬기, 게 구멍에 손을 넣으면 게 잡이, 구멍 두 개를 따라가 맛 조개. 바다는 인심이 푸짐한 아낙네 같다.

물이 들어온다. 그만 나가라는 바다의 몸짓인가. 뭍 생명들에게 젖먹이는 시간이라는 듯. 소리 없이 물살로 채운다. 민물로 와서 진흙투성이인 옷과 얼굴을 대충 씻는다. 아버지와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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