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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처럼, 위로 곡 같이

by 민진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정’ 이를 데려오라고 소리 소리쳤다. 그렇다고 진짜로 그러라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엄마도 퉁퉁 부은 얼굴로 정신이 나가 있고. 볼거리를 앓고 있던 네 살짜리 남동생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삶과 죽음이 서성이는 곳에 살아있는 자는 살아야 하겠는지 이상하게 동생의 모습이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뇌 속의 회로를 다시 정렬하면서 그 부분만 삭제를 시켜버린 듯 아이에 대한 것은 모두 잊었다. 집안의 침울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엄마를 따라서 공동묘지를 몇 번 간 기억이 다이다.


구석진 곳에 봉긋 솟아있는 흙무더기. 풀이 아직 자라지 않아 먼지가 날렸다. 엎드려 있는 크고 작은 봉분들 위로 우쭉우쭉 자란 풀들이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너울 거렸다. 서러운 세상에 왔다 갔다는 흔적처럼 웅크리어 둥그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동생이 외로울 거라며 방망이 하나 장난감처럼 귀퉁이를 파고 감췄다. 어린 내가 생각해도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누가 일러 주었을까. 마음을 다잡아보려는 아픔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변했다. 그 아이가 자랄 때까지만 나를 데리고 다니려 했던 것 같이 나가지 않았다. 함께한 기억은 거기서 끊어졌다. 당신마저도 나다니지 않았다. 버티고 있던 뭔가가 무너져 내렸을까. 다른 것에 마음을 뺏기기 시작했다. 농한기 철이면 도박으로 밤을 새웠다. 논밭을 팔아 소장수를 시작하여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허허로움을 감추려 했을까.

‘물가에 서서’란 글을 쓰면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어 보고 싶어 졌다. 마음 깊은 곳을 헤집었다. 사모곡처럼, 위로 곡 같이. ‘당신의 마음을 딸이 알고 있지요’를 말하고 싶었다.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잘 가라고 이제 손을 흔든다. 정지된 것 같은 시간을 흐르게 하려는 것인가. 무의식으로 가라앉아 있다가 이별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일까.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아이가, 네 살이라면 이쁜 짓을 많이 했을 텐데 어떻게 기억 한 점 남아 있지 않는지. 무시하고 살아온 것일까. 너무 일찍 세상을 버려서 미웠을까. 내 안에서 몰아내어 버린 것처럼. 아버지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먼 이야기처럼 들먹거리지 않았다. 없던 일처럼 여겼다. 빈자리가 주는 현실의 팍팍함을 이겨내느라 힘에 겨웠다. 안간힘을 쓰느라 다른 것은 뒷전이 된 것일까.


가버린 사람들을 가만 되뇌며 하늬바람을 한 번씩 놓이게 하는가. 마음에 굳은살을 박이게 할 용기가 생긴 것일까. 죽은 자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앙가슴 언저리에서 맴도는 아픔의 조각을 거둬들이기 위한 것일 수도. 한 가지씩 마침표를 찍고 널 부러져 있던 것들을 주섬주섬 모으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십 수년이 지난 일들을 굳이 들춰낼 필요가 있을까. 한 번은 마주하고 지나야 할 감정의 기슭을 넘고자 함일 지도 모른다.

남동생이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애정이 달라졌다. 첫사랑을 못 잊어서였을까. 자신의 몸이 괴로워서였나. 자라는 것을 온전히 보아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왜 서둘러 떠났을까.

살면서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있다. 슬프면 슬픈 대로, 덤덤하면 덤덤한 대로. 먼 시간을 돌아왔을지라도 육체의 끊어짐과 정신의 갈무리를 해야 한다. 이제야 이별 앞에 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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