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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스케치

by 민진

쫄래쫄래 따라나선다. 같이 가자고 한 분은 아버지였으리라. 논두렁길을 지나 강으로 간다. 설핏 시원한 바람이 들녘에 놓인 오후 끝자락이었을까. 해는 하늘 허벅지에 걸려 있어도 한낮 같다. 팔월의 들판은 온통 진초록이다. 걸어가는 사람마저 초록물이 뚝뚝 드는.

강둑에 다다르면 아버지는 겉옷을 벗었다. 나는 가만히 둑에 앉아서 구경한다. 하늘을 쳐다보거나 먼 산이 부르는 소리는 알아듣지 못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준비가 되면 손목에 벼리를 걸고 왼쪽 어깨에 좽이 한쪽을 걸치고 오른손으로 물결모양 주름을 잡듯 움켜쥔다. 물 위로 흩뿌리듯이 내던진다. 돌멩이 비슷하게 무게가 나가는 추가 아래에 달려있어 둥그렇게 펼쳐진다. 투망이 물속으로, 중력이 미치는 만큼 서서히 바닥을 향하여 내려간다. 그 사이 아버지는 큰 돌들의 틈새를 들쑤신다. 놀란 물고기들이 밖으로 나오면, 고기들을 재촉하여 그물 안으로 몰아 댄다. 어른 손바닥만큼의 황금 옷을 입은 붕어들이 그물 사이사이에 지느러미가 걸려 옴짝달싹 못한다. 물이 깊어 큰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을까. 나는 물에 들어가 보려는 엄두도 못 내고 하릴없이 풀만 쥐 뜯어서 흘러가는 물에 던졌다.

저만큼 무리의 아이들과 소들이 느직 느직이 걸어온다. 풀 뜯기러 가는 중인가 보다. 그 사이에 짝지 얼굴이 보인다. 순간 아연해진다. 아버지가 입고 있던 팬티에는 구멍이 나 있었기에. 갑자기 생각이 뒤집힌다. 짝지와 그 형들이 지나갈 때 아버지는 물속에 들어가 있으라고 주문을 건다. 아버지 한번 쳐다보고 걸어오는 남자 얘들을 살짝살짝 곁눈질한다. 머릿속으로는 방학이 끝나고 학교 갔을 때 놀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부터 앞서고.


넓은 벌이라서 길이 널찍했다. 내가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지나갔다. 짝지는 조용한 아이였다. 둘 다 작아서 맨 앞에 앉았다. 그때 국민학교 일 학년인데 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찬이 부족할 때면 선생님이 짝지와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달달해서 얼굴을 찡그리고 억지로 먹었다. 왜간장을 사용하여 요리를 해서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지금은 내가 만든 찬도 달착지근한 것들이 많다. 그때의 입맛이 가져다준 것은 아닐까.

이웃마을에 북에서 이사 온 두 집이 있었다. 한 곳은 외딴집 짝지 네고 다른 집은 담배 가게를 했다. 자기네들끼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덜 외로웠을까. 사람들은 피란민 집이라고 불렀다. 꼭 그렇게 구분 지어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세상 참 좁다. 고양시에 사는 남편 친구가 그 담배 가게 집이 외가라고 했다. 방학이면 자주 내려왔다는데 소 몰던 그네들 사이에 끼어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걱정이 사라지자 다시 차분해진다. 물고기와 씨름하는 아버지. 고추잠자리들이 떼 지어 날고. 질릴 때쯤 집으로 향한다. 물고기 담는 구덕은 묵직했다. 아버지가 붕어를 손질을 해주면 어머니는 무와 호박을 넣고 붕어 매운 찜을 끓였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민물고기에서는 흙냄새가 난다고 먹지 않았다. 나와 동생은 눈치만 보다가 엄마 편으로 기울었다. 아버지 혼자서 매 끼를 먹어야 하다니. 밥상 위에 얹힌 폭력은 아니었을까. 폭력은 멀지 않다. 어머니가 입맛을 조금만 누그러뜨리고 같이 먹었다면. 아버지가 고생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나 동생이 재첩이나 다슬기를 캐거나 잡아와도 버려졌다.


다시 아버지를 따라 강에 가서 물고기 잡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면. 세월은 물같이 지나 내 나이가 그때의 아버지보다 숫자가 커졌다. 가끔 푸르른 들판을 지나 아버지와 함께 물고기 잡으러 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별 말없이 다녔지만 자연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던 시절이었다. 남동생은 어렸고 딸과 함께 다니고 싶어 했던 아버지에게 붕어찜도 맛나게 먹고, 재잘재잘 더 사랑스러운 딸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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