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길을 헤매는 것 같지가 않았다. 정도를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인수인계로 바쁜 발걸음에 낙엽들이 차이기 시작하던 계절. 빼빼로데이를 앞두고 가게 앞마다 리본 묶인 선물 상자들이 퇴사를 축하하는 양 진열되어 있던 주. 밤낮 일교차로 마지막 출근날까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던 아침. 2022년 11월 10일, 나는 장장 반년에 걸친 퇴사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사표를 던지는 상상 한 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상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오래도록 생각하고 생각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 사표를 내고서도 한참을 회사에 머물러야 했다. 나는 다음 회사가 정해지지 않은 채 (대책 없이) 회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이었기에 그랬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나 또한 그동안 공들여 놓은 자리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동료들에게 전해줄 쿠키를 픽업하고 드디어 마지막 출근길 지하철에 올랐다. 가산디지털단지 역까지 두 번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는 그 길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지옥철 러시아워의 풍경마저 아름다워 보였다. 마지막날까지도 하루종일 곧 닥칠 행사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퇴사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반갑게도 조기 퇴근이 허락되었다. 작은 감사패와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회사를 나섰다. 해도 아직 지지 않은 시간이었다.
퇴사를 하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잠적이었다.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끌 것. 그러면 모두에게서 해방되는 기분이겠지. 그리고 지겹도록 늦잠을 자고 싶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고 알람도 울리지 않는 아침. 일단 그렇게 몇 달을 쉬고 싶었다. 그 후에 이직이든 프리랜서든 새 일을 찾으며 새 생명을 맞을 준비를 하고 싶었다.
퇴사 다음날 오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이전 회사에서도 송별회가 끝나자마자 속병이 나 응급실에 갔었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긴장이 풀려서, 그동안 힘들었어서, 디톡스 마냥 몸살이 났나 싶었다. 다음날, 남편과 나는 뜻밖에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았다. 감기로 인한 몸살이었던 것이다. 약을 처방받으러 가기 전, 혹시나 해본 임신 테스트. 그토록 기다리던 두줄이 보였다.
코로나를 제외하면 모든 타이밍이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 확진으로부터 시작된 임신은 맘카페에서 종종 언급되는 여러 이벤트들을 유난히도 겪으며 아슬아슬하게 이어졌다. 초음파를 보러 갈 때마다 조마조마했던 내 마음과는 달리 작은 생명은 씩씩하게 몸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바뀐 1월의 마지막 날, 눈부시던 겨울 햇살 속에 그 작은 생명은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났다.
반 년간은 오로지 몸의 회복에만 집중했다. 걷기를 시작했고 몇 달 후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마음껏 하며 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좋아하는 그림을 많이도 보러 다녔고 예쁘다는 카페에 부러 찾아가 책을 읽었다. 그간 못 만났던 친구들도 부지런히 만났다. 생각해 보니 그간의 나를 위한 보상 같은 시간들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힘이 붙기 시작하자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몰려왔다. 어디에도 내지 않을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업무 중에서도 그토록 하기 싫어했던 블로그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내 마음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글쓰기 모임을 만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급함으로 쓸모를 찾아 질주하려던 나의 발이 다행히도 묶였다.
마치 원고료라도 미리 받은 양 온통 글 생각뿐인 날들을 보냈다. 가끔은 아르바이트도 했다. 종종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길을 헤매는 것 같지가 않았다. 정도를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그래야 할 때 같았다.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 묻는다면? 일 년 전 나라면 그럴듯한 계획들을 나열해 가며 스스로를 쓸모 있는, 쓸모 있을 사람이라 주절거렸을지 모르겠다. 나? 그냥 논다. 늦잠 자고 밥 해 먹고 가끔 글 쓰고 있다. 글 쓰는 사람 혹은 글을 쓸 사람, 그것이 지금 나의 정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