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 대체 왜 이러는 걸까!
# 2018년 3월
신규교사로 설렘을 가득 안고 시작한 첫 달
개학한 지 3일쯤 되었을 때 부반장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우리 아이 가방 앞 주머니에 있던 지갑이 학교에 다녀오니 없어졌어요.”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받은 학부모님 전화였다. “짐작 가는 아이가 있기는 한데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네요.”
아무런 증거 없이 판단할 수 없으니 참고만 하겠다고 말씀드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학부모님이 지목하신 J는 매 쉬는 시간마다 내 옆에 딱 붙어있는 학생이었다. 나를 너무 좋아하고 어떻게든 나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지는 아이. 눈웃음이 예쁜 아이 었다. 혼란스러웠다. 다음날 학교에서 J의 작년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작년에도 몇 번 다른 친구들 물건을 훔친 적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실수로 흘린 건 아닌지, 학원에서 잃어버린 건 아닌지 다른 경우를 자꾸 생각했다.
지갑은 다음 날 우리 반 쪽 여자화장실에서 들어있던 돈은 다 없어진 채로 발견됐다. 그 날부터 우리 반은 잠시라도 교실을 비울 때는 무조건 열쇠로 문을 잠갔다. 점심시간에는 가장 먼저 다 먹은 두 명 이상이 내게 열쇠를 받아 함께 올라가는 것으로 규칙을 정했다. 매 번 교실을 비울 때마다 주머니 속의 열쇠는 내 무거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무겁게 짤랑거렸다. 다행히 도난 사건이 또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주일 뒤쯤 연구실에서 회의를 하고 수업하러 교실을 왔더니 아이들이 한 데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가 내가 오자마자 우르르 나에게 왔다.
“선생님, 00이 책상에 이런 게 있었어요!” 꼬깃꼬깃 접은 종이에는 세 글자가 적혀있었다. ‘시발년.’ 쪽지를 받아 들고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우선 우리 반 아이들 중 한 명이 이 행동을 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눈 마주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23명 중에 이런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다고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반은 아니라고 믿지만 절대 반복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런데 쪽지는 두 번이나 다른 아이들의 책상에서 더 나타났다. 나는 또다시 작년 선생님들을 찾아갔고 대화를 통해 비슷한 일이 이미 작년에도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J였다.
그런데 네 번째 쪽지가 나온 날은 J가 쪽지를 들고 내게 왔다. “선생님, 제 책상에도 이게 있어요.” 나는 말을 잃고 아이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진짜 너라면 스스로에게도 보내놓고 연기하는 거니..?’
나는 아이들에게 너네는 공부할 필요 없다며 교과서를 다 넣으라고 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공책을 다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글씨체를 대조해보며 쪽지의 글씨체와 ㅁ을 쓰는 방법이 같은 두 명을 추려냈다. J도 있었다. 내가 글씨체 대조를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는 애국가를 쓰는데, 자신이 이 행동을 한 사람은 맨 끝에 제가 했습니다.라는 한 마디만 더 적으라고 했다. 우리나라 기술로 누가 했는지 정도도 못 알아낼 것 같냐며 선생님은 충분히 알아낼 수 있지만 본인에게 직접 듣고 싶다고 으름장도 놓았다. 이런 해결책들은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매시간 연구실에 죽상이 되어 들어섰다. 모든 것이 처음인 데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안쓰러운 막내에게 동학년 선생님들은 갖가지 조언으로 도와주셨다. 방과 후엔 우리 반에 다 모여 돌아가며 옛날 경험을 말해주시기도 하고 다독여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따뜻하고 좋으신 분들이다.
애국가 적기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아무도 마지막에 ‘제가 했습니다.’라는 말은 적지 않았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다가와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기 전, 앞으로 또 이 쪽지를 보내면, 선생님한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말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한참 점심을 먹다가 3분의 2 정도의 아이들이 올라갔을 때다. 한참 전에 교실로 올라갔던 한 명이 후다닥 급식실로 다시 돌아왔다. “선생님!! 또 쪽지가 올려져 있어요!!” 나는 입맛이 뚝 떨어지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교실로 올라온 나는 그 날 쪽지를 받은 모든 사람은 다 남아서 선생님과 면담을 한다고 했다. 목적은 J와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마칠 때쯤 한 아이가 내게 살짝 다가와서 “선생님 사실 저 아까 점심시간에 00 이가 다섯 번째 쪽지 올려두는 걸 봤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J였다. “말해줘서 고마워.”
다른 아이들과 짧게 짧게 면담을 마치고 그 아이가 들어왔다. “선생님은 네가 한 거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너 입으로 듣고 싶어.” 하지만 끝까지 J는 세상 억울했다. 심지어 “선생님 저 못 믿으세요?”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 아이 정말 어쩌면 좋을까. “J야, 선생님도 거짓말해 봐서 아는데, 사실대로 말하는 거 진짜 용기 필요한 일이야. 용기 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게. 선생님은 네가 용기 내면 진짜 너무 멋있을 거 같아.”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선생님 저 진짜 아니에요. 4학년 때 비슷한 행동 해서 부모님께도 절대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고요.” 우리는 그렇게 3시간을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처음엔 J에게 너무 화가 났다. 친구가 직접 봤다는데도 어떻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지? 그런데 이 아이 눈이 계속해서 떨리는 걸 보며, 이 아이 지금 두렵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시간 동안 이야기해줬다. “선생님은 네가 사실대로 말해도 너를 미워하거나 혼내지 않을게. 근데 선생님에겐 사실대로 말해줘야 해. 그래야 선생님이 너를 진짜 도와줄 수 있어.” 거의 3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입을 뗐다 붙였다 반복하던 J는 눈을 내리깔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 잘못했습니다..”
집에 왔는데 저녁 7시가 다 돼가고 있었고, 머리도 아프고 진이 다 빠져있었다. 때는 겨우 3월 말이었다. 이 아이는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할까? 뭐가 문제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교대 생활 4년 동안, 그리고 임용 공부로 이런 걸 배우진 않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오만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매일 밤 너무 피곤했지만 당장 내일 눈뜨면 또 교실로 가야 했기에 선배교사들이 쓴 책들을 읽다 잠들었다.
학급 세우기로 바쁘고 업무 처리 하나도 벅찬 신규교사의 3월에 그런 문제들이 생겼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알 것 같다. 그래도 모든 과정을 헤쳐나갈 수 있던 건, 옆에서 도와주신 좋은 동료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2월 둘째 주나 되어야 발령을 받고 바로 시작되는 교직생활. 누구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어영부영 시작한다. 교실 속에서는 예상치 못한 이들이 생기고 내 뜻 같지 않을 확률이 99%이다. 나는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신규여서 뿐 아니라 조금 힘든 아이들을 만난 건 맞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괜찮다. 교실은 아이들도, 교사도 성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오히려 나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걸 느꼈다. 이후 나는 J의 내면에 무엇이 채워지지 못했던 건지, 교사의 역할 그리고 부모의 역할이 뭔지도 참 많이 알게 됐다. 그리고 한편으론 J를 통해 나의 모습도 깨달아갔던 듯하다. 교실은 참 특별한 공간이다. 부족한 인격체들이 만나 서로의 부족함을 통해 배우며 성장한다. 그곳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