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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cere Baek Mar 10. 2021

생애 첫 공개수업

신규교사의 유리 멘탈, 정점을 찍다

학부모 공개수업 D-1. 이 날 조차 일이 터진다


내일 당장으로 공개수업이 코앞으로 다가와있었다. 분주하게 자르고 붙이며 내일 쓸 수업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뒷문으로 옆반 학생 한 명이 울상인 채로 들어온다.


이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다.


그 아이의 손에는 액정이 왕창 깨진 휴대폰이 들려있었다. 듣자 하니 우리 반 J와 방과 후 수업을 듣다가 함께 쓰는 물감을 두고 약간 말다툼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휴대폰이 없어져있었고, J는 "00아 너 휴대폰 안 보이던데?"라고 말하고는 유독 빨리 집으로 가버렸단 것이다.


그리고 그 휴대폰은 주차장에서 액정이 산산조각이 난 채로 발견됐다. 우리 동학년 선생님이 주차장 쪽을 지나가시다가 발견하고는 갖고 올라오신 것.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일은 또 어떻게 해결한담.



나는 그렇게, 공개수업 전 날 동학년 선생님들과 학교 cctv를 돌려보고, 화장실 창문 밖으로 인형도 던져보며 그 사건의 정황을 추측하고 있었다. 결국 조각조각 퍼즐을 맞춰 정황을 파악했고 내일 어떻게 사건을 처리할지 회의를 한 후 퇴근을 했다.



그렇게 D-day.


당일 아침부터 J를 불러 사실 확인을 했고, 공개수업이 끝나고 어머니께 말씀드려 이 일을 해결할 생각에 정신이 분산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상황에서 공개수업을 해낸 자체가 대견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날 한 수업을 떠올리면 아이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그렇게 임용 수업실연의 정석 같은 수업을 했다니. 아이들과 소통하고 주고받는 수업이 아닌 나 혼자 꾸민 나만의 수업을 했다. 내가 노린 진지한 핀트와 우리 반의 색깔과는 맞질 않아 남자아이들은 내가 가져온 자료를 보다 웃기까지 했다. 뭐 좀 망한 것 같았으나 당시 내 정신은 공개수업보다도 휴대폰 사건 처리에 더 쏠려있었던 듯하다.


당일 공개수업에 오신 J의 어머니와 오후에 바로 상담 후 상대 학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학부모님은 “변상은 따로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물건이 망가졌지만, 그 아이는 마음이 다쳤잖아요.”라고 말하셨었다. 인상 깊었던 그 대답. 교사의 자리에 있으면 시시때때로 나는 이후에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여하튼 이 말을 전해 들은 J의 부모님은 끝까지 휴대폰 모델명을 물어보시고 변상을 해주시면서 일은 마무리되었다.



무너지는 유리 멘탈


다음 날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는데 내 옆에 앉아있던 A가 말을 건다.

“선생님~ 어제 우리 엄마도 오셨었어요.”

“응, 그랬구나~”

“그런데 우리 엄마가 선생님이 불쌍하대요. 공개수업 때 그 정도면 평소에 어떻겠냐고.”


그 소리에 며칠동안 버티던 내 멘탈이 터져버리고야 말았다. 입맛이 뚝 떨어져 멍하니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꾹꾹 참았다가 연구실에 도착하자마자 쏟아냈다. 5교시 시작하면 다시 아이들을 보러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또 우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이러다간 진짜 울보 선생으로 소문날지도 모른단 생각에 이 악 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단장을 했다.


당시 나는 아이들 앞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고 밝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실 앞 문에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교실 문을 열었다.


어찌어찌 수업을 다 끝내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만 왜 유독 큰 문제들이 일어날까. 내가 잘못된 걸까. 불쌍하다는 소리 정도를 들으려고 교사가 되었나. 그 단어의 의미를 알고나 그런 말을 하신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A는 별 의중도 없이, 오히려 평소에 나를 많이 도와주고 좋아하던 아이라 자신도 속상한 맘을 표현한 것일 텐데. 혼자 부정적인 감정 속으로 끝도 없이 파고들었다.


당시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아, 처음이니까.’라고 말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야 된다는 건 알지만, 그러기엔 닥친 상황들이 전혀 괜찮지 않았다.


복잡하고 지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일기장을 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와중에 정말 잘한 것은 꾸준히 일기를 썼다는 것이다.



그 날 적었던 일기장 내용 중 일부에 이런 글이 있었다.

좀 더 여유 있는 마음, 넓은 마음을 갖고 싶다.
누군가 내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받아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너무 잘하려다 보니 이런 건 아닐지. 다른 이들에게 내가 부정당하면 너무 힘들어하는 나 모습을 발견한다.
타인으로부터 어떤 시선을 받거나 뒷말을 듣든 내 스스로가 부족하지만 옳은 방향으로만 살고 있다면,
나 스스로를 좀 더 믿어주자. 항상 잘할 순 없잖아.


그렇게 4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체감은 2년인데, 겨우 두 달만의 일들이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나의 첫 해는 지금 돌아봐도 다사다난했다. 그래서 많이 울고 웃고 고민하고 배웠던, 그 당시를 언젠가 꼭 한번 돌아보며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미지근한 것보다 훨씬 값진 시간들이었다고 감히 말한다. 당시에는 '값지다'는 표현이 1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소중한 순간들이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지나고 나서야 당시 경험의 가치와 의미들이 보인다. 나의 2018년도 그렇다. 일기장에 묻어둔 당시를 조금씩 꺼내보며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고 있다.  




제 부족했던 경험을 나눈 이 글을 읽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혹시나 자신의 무능함을 느끼는 순간 또는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힘든 상황들이 있다면 아래의 말을 떠올려봐요.


잘 풀리는 일들은 즉시의 편안함과
행복을 줄지 몰라도,
힘듦과 고민의 시간들은 보통
우리를 더 현명하게 만들어준다.




오디오북인지 강연인지 오늘 어디선가 들은 내용인데, 곱씹을수록 100% 공감되는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내 삶은 항상 실수투성이, 스펙타클한 일들 투성이인데,

그만큼 내가 더 성장하고 무르익어가도록 해 준 일들 투성이었다는 말.


그래서, 지난 일들을 떠올릴 때 참 감사가 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책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일이 무엇이든, 그 어떤 것도 우리 존재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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