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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cere Baek Sep 30. 2022

착한 선생님이 되기 싫었다

발령받은 첫 해, 신규교사 시절. 한바탕 교실이 돼지우리 마냥 엉망이 돼서 속상하던 날, 나를 위로해주던 동료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이 강냉이를 잘 보여서 그래요.”

“네...?”

손가락으로 이를 가리키셨다.

그 뒤로 나는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많이 웃어주면 만만한 선생님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때의 나는 착하다는 건 무섭지 않다는 말로 이해하고, 무섭지 않다는 건 교사로서의 권위가 없단 것으로 생각했었다.



학기초에 아이들에게 매번 설문조사를 한다.

'어떤 선생님이 좋나요?'

아이들의 답은 항상 비슷하다.

'착한 선생님. 재미있는 선생님. 친절한 선생님'

분명히 아이들이 원하는 건 착한 선생님인데.


생각해보니, ‘우리  선생님 착하다!’라는 말을 들을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저 만만한 선생님이 되는  같아서였고. 아이들이 원하는 , 따뜻한 선생님일 뿐이다. 같은 단어인데 주파수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지금도 내가 맡은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우리  선생님 정말 착해!”

라고 말하는  자주 듣는다.  

지금은  말이 반가워서  다행이다.


무조건 허용적인 부모가 좋은  아니듯이 균형이  중요하다. 따뜻하되 단호할  알아야 한다는  균형이 신규교사에겐  어려웠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주어야  것은 생각해보면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아이들의 기억 한편에 따스함이 되어주고 갈아갈 힘을 실어주는  내가 생각하는 교사의 의무이자 행복이다.

그리고 내게 어울리지 않게 강냉이를 숨기려 애쓸 때와 나답게 강냉이를  드러낼  아이들의 표정을 비교해보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쌓이면서 단호한 것과 무섭게 하는 것의 차이 알게 되었고 친절한 것과 쉬운 것의 차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이제 강냉이를  드러내면서 아이들과 실컷 웃는다.


내가 해보니, 강냉이는 훤히  드러내도 된다.


교사가 웃지 않고 행복하지 않는데 아이들이 행복할  없지 않나. 혹여나 이전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과 함께 최대한 많이 웃자.

나의 경우  많이 웃어줄  아이들과 마음이 통했고, 신뢰가 쌓였고, 그때부터 단단하고 예쁜 관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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