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릴라 May 30. 2021

나의 첫 명상센터 방문기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찾다

동네 명상센터를 검색한 건 아이가 10개월 쯤 됐을 때였다. 아이를 돌보는 것에 지쳐 있었고 검색창에 우울증을 검색하고 우울증 테스트를 매일 했다. 인터넷 검사에서는 경한 우울증으로 나올 때도 있었고 정상이라고 나올 때도 있었다. 정신과를 가야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명상이 떠올랐다.     


인터넷에 동네 이름과 명상을 같이 검색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포기해야 하나 생각하던 때에 동네에서 우연히 명상센터 플랜카드를 보게 됐다. 소중하게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문의해보리라 생각했다.   

   

아이는 11개월부터 걷기 시작했고 손짓, 발짓으로 소통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와 소통이 되면서부터는 육아가 한결 수월해졌다. 일상은 똑같지만 간단한 것이라도 아이와 주고 받을 수 있어 즐거웠다. 아이의 성장을 보느라 힘든 것도 잊었고 명상은 잊혀졌다.     


올해 3월부터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고, 며칠 되지 않아 아프기 시작했다. 3월에는 1, 4월에는 2, 5월에는 3 결석했고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아이가  아픈지 매일 생각한다.


 ‘어린이집을 너무 일찍 보낸 걸까, 온습도를 제대로 맞춰주지 못했을까, 항생제를 이렇게 오래 먹어도 되는 걸까, 모유수유를 안해서일까, 제왕절개를 해서일까.’     


아이가 아파서 돌보느라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아픈 아이를 보는 고통, 자책 이런 것들로 마음이 지쳤다. 다시 문득 명상이 떠올랐다. 어찌 어찌 잃어버린 전화번호를 다시 찾았고 토요일 4시 동네의 명상센터에 가게 됐다.     



명상센터는 2층인데 1층 계단을 오를 때부터 아로마향이 났다. 기분 좋은 향을 맡으며 2층에 도착하니 물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명상 센터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쾌적함이었다. 좋은 향, 물소리, 쾌적한 온습도,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 편안한 좌식 의자. 다른 회원은 결석한 날이라 명상에 참여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감격스러웠다.    

  

이곳은 ‘인도 오앤오 아카데미’ 명상을 하는 곳이고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에캄써클’이다. 호흡 명상을 시작으로 인도 오앤오 아카데미, 에캄 써클에 대한 설명과 명상이 번갈아 이루어 졌다. 커피를 못 마신 날이라 더 잠이 왔던 나는 명상할 때마다 틈틈이 졸다 깨다를 반복하고 선생님이 설명할 때는 멀쩡한 척하며 1시간이 지났다.   

  

명상이 끝나고 일어서는데 몸이 아주 개운했다. 한 10시간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 개운함이었다. 아이 키우면서 10시간을 자기도 어렵지만 잔다고 해도 깨고 나서 개운함을 느끼긴 어려운데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난 정말 잠깐씩 졸았을 뿐인데.(혹시 많이 잔건가?)    

 

정체 모를 개운함에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때부터는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피곤함은 기분 좋은 노곤함에 가까웠다. 목욕을 하고 난 뒤에 몰려오는 졸음같은. 경직됐던 몸이 이완된 느낌이었다. 노곤함 때문에 이 날 밤 9시에 잠들었다. 아이가 잠들면 자신의 놀이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고양이가 놀라 자는 나를 쳐다봤지만 잠은 불가항력이었다.    

 


단지 1시간 동안 명상에 졸면서 참여했을 뿐이데 개운함과 노곤함, 몸의 이완을 느꼈다. 그리고 명상을 한 다음날인 오늘, 평소에 미뤘던 책상과 책장 정리를 했고 그동안 4월에 머물러 있던 일력을 날짜에 맞게 한 장씩 찢었다. 일력을 한 장 뜯는 것은 1초면 되는 일인데 나는 하루에 1초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두 달여 동안 없었던 여유를 1시간 명상으로 되찾았다.   

 

사실 명상센터를 찾았던 건 명상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명상 센터에서 방법에 대한 건 단 한 가지도 듣지 못했다. 그냥 앉아서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고, 감사한 사람을 떠올리고, 이루고 싶은 목표를 떠올리고, 우주와 하나 되는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그것도 졸면서.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두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이 시간에 산책을 마음 놓고 하지 못했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그 외에도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산책을 할 시간은 없었다. 그런데 명상 센터에 가서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책을 보지 않고, 휴대폰을 보지 않고, 쓸 데 없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몸이 이완됐고 개운함을 느꼈고 일력을 제 날짜에 맞게 둘 수 있게 됐다.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그토록 갈구했는데 명상을 하면서 온전히 혼자인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거였다는 걸 알겠다. 앞으로도 명상을 계속 해보고 싶다.    

 


*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도인님이 하셨던 말씀을 덧붙입니다. 간혹 명상 센터 중에 종교적인 강요가 있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명상 센터를 선택할 때 이 점에 주의하셔야 하고 전국에 체인이 있는 마음수련 명상센터와 같은 곳이 가장 무난하다고 합니다. 제가 간 곳은 마음 수련 명상 센터는 아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엔 핸드드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