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엘사의 파란 드레스, 여자아이의 파란 오리발
둘째 딸아이가 수영을 시작한 지 10달이 지났다. 수영선생님이 오리발이 필요하다고 해서, 와이프가 와이프 친구의 아들이 사용하던 오리발을 빌려왔다. 오리발은 큰 것을 살 수도 없고, 아이의 발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어차피 오리발은 길게 신어봐야 몇 달 정도 신으면, 바꿔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나 와이프나 새 오리발을 사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빌려온 오리발이 남자아이가 신던 거라, 파란색이라는 것이었다.
‘난 파란색 오리발도 괜찮은데, 여자아이들 중에 파란색은 나밖에 없을 거야.’
‘다른 얘들은 무슨 색인데?‘
‘남자애들은 다 파란색이고, 여자애들은 다 핑크색이나 빨간색’
그래도 다행인 것은 둘째가 좋아하는 색깔이 파란색이라는 것이었다.
‘넌 파란색이 어떤데?’
‘어어, 내가 좋아하는 색이 파란색이긴 한데.‘
‘그럼 파란색 오리발이 더 좋은 거 아니야?’
‘그래도, 여자 아이들 중에 나만 파란색이면…’
와이프가 거들기 시작했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런 색을 써야 한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야 되는 거야’
‘고정관념이 뭐야?’
‘어떤 일에 대해서, 근거나 이유 없이 오랫동안 이래야 한다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 여자는 핑크, 남자는 파랑. 옛날에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과 남자가 할 수 있는 일도 다르다고 생각했고, 그 외에도 많이 있어.’
‘엘사의 파란 드레스’
첫째 딸아이도 끼어들어서 가족 전체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여자 아이들은 핑크나 흰색드레스를 좋아한다는, 혹은 좋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지.’
‘맞아. 어린이집에 가면 여자애들은 대부분 핑크야.’
‘근데, 엘사가 파란 드레스를 입었고, 겨울왕국 만화영화를 본 아이들은 너도나도 엘사 드레스를 입으면서, 파란색 드레스도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맞아’
‘그리고, 왕자도 있어. 다른 만화들 예를 들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등에서는 공주는 예쁜 거고, 공주를 구해주는 건 왕자의 역할이지. 그런데 겨울왕국에서는 왕자인 한스는 악당이었고, 겨울왕국의 문제를 해결한 건 엘사와 안나 자매의 우애였고.’
‘그렇네’
‘여자는 예쁘고 착하기만 하면 되고, 문제는 왕자님이 짜잔 하고 나타나서 해결해 준다는 동화의 선입견을 깬거야‘
‘주토피아’
‘맞아. 주토피아에서도 주인공 토끼는 경찰관이 될 스 없다는 고정관념을 깼고, 여우는 악당이라는 고정관념도 깼고, 양은 착하다는 고정관념도 깼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 나의 성격에 대해서 누군가가 여자아이는 이래야 돼, 초등학생은 이래야 돼. 등으로 이야기하면, 그 말이 고정관념인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해. 만약 고정관념이라면, 깨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것이 중요해. 특히 누군가 내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내 성격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 그렇지 않다면, 이게 나야라고 생각하고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해’
나름 중요한 가족 토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 때 읽어주는 각종 그림책과 동화책. 그리고 만화영화들이 고정관념이 꽁꽁 뭉쳐져 있는 결과물일 수 있다는 것은 새삼 무서워지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의 머리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은 아마도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칠 터이니.
책장에 있는 각종 그림책과 동화책, 소설책들의 제목 훑어 봤다. 그 속에는 각종 고정관념들이 숨겨져 있는 책들이 꽤 있었다. 이미 아이들이 읽은 책들과 그 속의 고정관념과 선입견들. 이것들은 모두 어떻게 깨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