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좀 만났습니다
위로받는 일은 어렵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나를 위한 말을 건넬 것 같으면 바로 상황을 피하거나,
못 들은 것처럼 슬쩍 넘어간다.
10년 넘게 키운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위로받을 게 두려워 출근하기가 싫었다.
나는 불쌍한 사람보다는 미친놈으로 보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서는 순수한 위로란 없기 때문이다.
위로는 얄팍한 호기심과("무슨 일 있어?")
그것이 해결된 뒤 적선처럼 던져주는("헐, 어떡해, 힘내ㅠ") 텅 빈 몇 마디뿐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런 것에 절대 먹잇감을 주지 않겠어!
위로의 손길을 거절한 나는 내 손에 직접 피를 묻히는 길을 택했다.
나를 상처 준 원인을 포함해 모든 걸 박살을 내고, 한참을 쓰러져 마음껏 슬퍼하고 몸부림치다가, 느닷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열심히 살아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 에너지는 실로 대단했지만 칼자루를 어느 방향으로 쥐냐에 따라 상처가 너무 깊었다.
"그냥 갈 길 가세요, 에? 충분히 미춰버릴 거 같으니까!"
나는 정중하게 위로의 손길들을 사절했다.
얼마나 단호했는지 나 자신에게조차 위로를 허용하지 않아 세상 그 누구도 나를 토닥일 수 없었다.
오늘 아침엔 난임병원을 가는 날이었는데, 전에 없이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접수대로 걸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감정이 훅 올라와서 화장실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 병원에 온 날 화장실에서 누군가 울고 있는 소릴 들었는데 속으로 '좀 감정적이네'라고 생각했다. 그때가 후회된다.
그렇다고 이제 와 새삼 위로가 받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타인은 나를 위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동안처럼 싹 다 엎어버리고 막 나갔다가 다시 시작할 순 없었다. 난임 치료는 시간이 귀하기에.
엉뚱한 처방전(대청소나 쇼핑)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는 일도 오늘은 싫었다.
'아니, 그냥 너 좀 쉬어가라고.'
나는 나를 살살 달래 동네 한적한 스타벅스에 들러 따수운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생각을 정리해 볼까 했는데 딱히 어떤 생각이 들진 않았다.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지도 않았다. 갑자기 나에게 오은영 박사처럼 굴 필욘 없으니까.
그냥 나는 나와 함께 있을 뿐이었다.
나는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인데, 오늘은 뭐랄까,
어떨 땐 적당히 모른 척 해줄 줄도 아는 사려 깊은 사람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안도감 때문이었던지 따뜻한 콧물과 함께 감정이 주르륵 흘렀고 나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 3명은 여기 한국 여자가 우는지 웃는지도 모른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말 잘 한다. 발음도 억양도 아주 괜찮네.
들어보니 회사 동료들인가 보다.
패딩 입은 사내가 말한다. "너 일 잘해. 사장님이 페루 사람 또 뽑는대. 니가 잘하니까 페루 사람 뽑는 거야."
듣고 있던 페루 남자가 씨익 웃었다. "아니야~"
"잘해". 패딩 입은 사내 목소리에서 순수한 부러움이 묻어났다.
젖은 냅킨을 손톱으로 누르며 나는 이걸 다 듣고 있는 나 때문에 입가에 긴 보조개가 생겼다.
내가 내 삶을 사랑하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든 웃을 거리를 찾는 약간의 여유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다 쓴 냅킨을 눈처럼 꽁꽁 뭉치며 생각했다.
'나는 너를 잘 아는데, 너 괜찮을 거야.
이런 말 잘 안 믿지?
근데 안 믿으면 니가 어쩔 건데.
이런 일이 일어난 건 내가 어쩔 수 없지만,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냐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데,
어떡할래?
이 커피 다 마시면 웃으면서 일어날래, 계속 이렇게 기분 엿 같을래?'
나는 남은 커피를 원샷 때리고 들어왔을 때보다 한결 가볍게 걸어 나왔다.
예전처럼 모든 걸 박살 내지 않고 위로해 줄 나를 남겨둔 것이 참 다행이었다.
나는 나와 함께 있었을 뿐이었고, 그 기분이 썩 좋았다.
어느 날 위로가 필요할 때 그 친구를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