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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Sep 11. 2022

나 어떡해.

늦은 시간 운동을 다녀온 후 등에 쏘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거울을 보니 빨갛게 벌레에 쏘인 듯한 자국이 보였다. 집에 모기가 들어왔나 싶어 연고를 발랐다. 다음 날 퇴근길. 등이 불 타올랐다. 혹시나 싶어 부랴부랴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퇴근 시간 꽉 막힌 도로는 내 맘 같지 않다. 요즘 들어 부쩍 교통량이 증가하여 퇴근 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도착하니 오후 6시가 넘어 진료하는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겨우 진료 중인 정형외과를 찾아 검사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상포진이란다. 약 처방을 받고 힘이 빠진 채로 너덜너덜 집으로 왔다. 

  토요일 여성병원을 들러 호르몬 검사를 했다. 며칠 후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또다시 병원으로 갔다. 등과 허리의 대상포진의 불타오르는 열감과 기나긴 진료 대기줄을 바라보며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다. 검사 결과는 참담했다. 여성 호르몬 이상 증세가 뚜렷했고, 호르몬 수치는 노년기라며 의사가 안타까움에 혀를 찬다. 어차피 출산과 육아가 다 끝났으니 ‘괜찮다’고 마음속으로는 이야기했지만 호르몬 문제로 인한 골다공증, 고혈압, 고지혈증 등을 심각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말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저는 운동도 꾸준히 하고 소식하면서 관리해 왔는데 왜 이런가요?”

억울해서 항변하듯 의사에게 물어본다. 

“10에 8은 유전이에요. 운동하신 거 매우 잘한 거지만 유전을 이기지는 못해요.”

의사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쥐어짜듯 몸을 혹사시키신 거 같아요. 대체로 이런 수치는 열심히 산 사람들에게서 빈번하게 나타나요. 마음을 좀 비우고, 실수도 받아들이고 사세요.”

의사의 말에 깜짝 놀란다. 


비타민 D주사를 맞고 약국으로 향한다.

대상포진, 여성호르몬제, 칼슘제 등 처방받은 약을 한아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추석 연휴의 시작. 

 나는 아침 일찍 병원을 갔다. 볼 한쪽이 붓고 딱딱한 것이 생겨 통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병명은 침샘염이란다. 침샘에 염증이 생겨 부풀어 올랐다. 


 추석 연휴 첫날은 가족사진을 찍기로 한 날이다. 2년 간 미국 지사 발령을 받은 남동생네가 출국하기 전 친정 식구 모두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호빵맨이 되어 버렸다. 고민 고민하다 포토샵을 해주겠지 싶어 아무렇지 않읕 듯 애써 웃으며 사진을 찍기로 했다.     


어떡하나.

추석 연휴에 퉁퉁 부은 얼굴을 부여잡고 누워 있다. 통증은 가시지 않아 항생제를 먹어야 조금 가라앉는다. 업무를 보려고 짐을 싸 왔는데 펼쳐보지도 못했다. 저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아프면 서러운 마음이 든다. 서러운 마음은 사실을 왜곡시킨다. 왜곡된 사실은 분노를 일으킨다. 바깥으로 나도는 남편, 작년 고3 생활로 힘들게 했던 딸. 공부 안 하겠다고 선언한 고1 아들 등 그들 때문에 내가 동동거리다 이렇게 된 것 같아 화가 났다. 

  아니다. 실은 내 성격 때문이다. 느긋하게 바라보면 되는데 항상 쥐어짜며 마음을 조급하게 하여 일을 몰아치듯 해내는 성향이 있다.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를 쓰며 살아온 내가 보인다.     

  온 밤을 남 탓 내 탓으로 지새운다. 


어떡하나.     

 온몸으로 내 살아온 세월을 증명하는 병이 생(生)을 두렵게 한다.           


 혹 - 문정희

 자궁 혹 떼어낸 게 엊그제인데
 이번엔 유방을 째자고 한다
 누구는 이 나이 되면 권위도 생긴다는데
 내겐 웬 혹만 생기는 것일까
 혹시 젊은 날 옆집 소년에게
 몰래 품은 연정이 자라 혹이 된 것일까
 가끔 아내 있는 남자를 훔쳐봤던 일
 남편의 등뒤에서 숨죽여 칼을 갈며 울었던 일
 집만 나서면 어김없이
 머리칼 바람에 풀어 헤쳤던 일
 그것들이 위험한 혹으로 자란 것일까
 하지만 떼내어야 할 것이 혹뿐이라면
 나는 얼마나 가벼운가
 끼니마다 칭얼대는 저 귀여운 혹들
 내가 만든 여우와 토끼들
 내친김에 혹 떼듯 떼어버리고
 새로 슬며시 시집이나 가볼까
 밤새 마음으로 마을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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