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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Nov 13. 2022

빼빼로 데이의 교훈

 빼빼로 데이 하루 전날. A가 아이들에게 빼빼로를 나눠 주었다.      

 내일 자신에게 빼빼로를 달라는 말 대신이다. 서로 자기 달라며 손 내미는 아이들을 보며 A는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고른다.

  A는 나와 개인적으로 만나면 예의가 바른데, 무리 속에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된다. 수업 시간에 방해되는 말을 하거나 친구들에게 집중하다 학습을 놓치고 무기력하게 엎드릴 때가 많다. 또 쉬는 시간에 본인 성향에 맞지 않게 거친 욕을 하고 과한 행동을 하다가 친구들 장난의 타깃이 되기 일쑤여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친구들을 고발하러 학년 교무실에 자주 온다.

 그런 A가 미리 빼빼로를 가져와 친구들의 주목을 받으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으쓱한다. 하지만 곧 ‘왜 나는 안 주냐?’며 불만을 가진 아이도 나오고, 또 ‘외부 음식 반입 금지인데 교칙을 어겨도 되냐?’는 항의를 하는 아이의 말에 '내 맘이다. 왜?'를 외치다 친구들에게 비난받기 시작했고,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빼빼로를 못 받은 아이들 중 한명이 학년 교무실로 왔다. A 때문에 빼빼로를 받으려고 교실이 시끄러워졌고, 또 일부 아이들이 약한 애들에게 자기 것을 챙겨 오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성격이 급한 나는 1학년 담임 선생님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빼빼로 학교 반입 금지! 제 눈에 보이면 압수한다고 전달해 주세요!”

    

하교 시간. 여학생이 교무실로 찾아와 나에게 따진다.

 “왜 빼빼로 가져오면 안 돼요?”

“ 외부음식은 교실 반입 금지야. ”

“ 왜요?”

“ 원래 코로나 시기에는 지정된 장소 이외에는 감염 위험 때문에 안 되는 거야. ”

“ 그럼 가지고만 오고 안 먹으면 되겠네요?”

“ 음식을 가지고 오는데 어떻게 안 먹을 수 있니? 분명 먹는 친구들이 있을걸? ”    

" 우리 모두가 안 먹으면 되잖아요!"

" 네가 책임질 수 있니? 전교생이 안 먹게 할 수 있냐고!"       

 아이는 스무고개 질문을 하듯 자꾸 말꼬리를 잡으며 빼빼로를 가지고 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회의가 있어 마음이 바쁜 나는 아이의 말을 더 받아줄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없어 짜증이 났다.   


  “네가 모르고, 못 보는 상황이 있어! 어떻든 선생님 눈에 보이면 압수할 거야!”며 큰소리치고 돌려보냈다.      

여학생을 돌려보내고 협의회를 하는데 마음이 불편하다. 교실 민주주의를 논하는 시대에 ‘압수’가 웬 말이냐?  실제로 행할 마음도, 행할 수도 없으면서 엄포를 주기 위해 강압적인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나를 발견한다.  학년 부장이 되고 나서는 더 그렇다. 무섭고 엄해야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다는 무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학년 교무실로 와서 담임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전달하셨어요?”

경력이 제법 된 담임은 ‘지금 이태원 참사 추모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빼빼로 데이’라고 들떠서 되겠느냐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훈화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아이가

“이태원 참사와 빼빼로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라고 질문을 했단다.

 내 곁의 친구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날에 이태원 참사까지 연결 짓는 건 아이들에게 무리이기도 했을 것이다.


 11월 11일.

 복도나 교실에 빼빼로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없다. 그냥 평소처럼 복도에서 수다를 떨고 노는 중이다.

 그러나 하교 시간.

 아이들은 숨겨 두었던 과자들을 꺼내어 봇물처럼 서로 주고받기를 실행했다. 그뿐이랴. 디지털 원주민들답게 여기저기서 핸드폰을 꺼내 서로 기프티콘을 교환하며 확인했다. 그런데 내가 나타나면 후다닥 숨기며 뛰어 도망을 갔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게 아니었다.      


  눈치 없는 아이 몇몇이 눈앞에서 서로 빼빼로를 교환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모른 척했더니

“뭐예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혼낼 줄 알고 안 가져왔는데! 저만 손해잖아요! " 라며 평소에도 말 잘 듣는 다른 학생이 나에게 원망을 쏟아낸다.


 실제로 행할 것도 아니면서 말을 뱉어 놓으면 권위가 떨어지는 법이다.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선생님이 무리한 것을 말해 놓고 실행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면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불복종의 경험에 익숙해진다. 말을 잘 들은 학생들만 손해를 보는 상황은 그들에게 배신감도 들게 하여 결국 아무도 지도에 따르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더불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심리적 반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해야 한다. 교육 심리학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사춘기는 오죽하랴.


아이들 마음을 움직이는 훈화의 말을 고민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급함이 앞서 금지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버렸다. 빼빼로를 주고받는 행위는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인데 그것을 침해한다고 느낀 아이들은 거부감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11월의 학교는 쉴 새 없이 돌아간다. 학년 말 각종 평가로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여유를 잃었고 생각을 놓쳤다.


 '사람은, 못하게 하는 것보다 선택의 자유를 줄 때 동기를 얻는다.'


' 행할 수 있는 말만 하자!'


 메모지에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었다.  또 여유 없이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 말이나 먼저 내뱉지 않게 신중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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