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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Dec 06. 2023

회장님도 좋아했던 쇠소깍


회장님은 남편의 예전 상사였다. 부부가 제주도에 오면 우리를 불러 함께 식사한다. 재작년 겨울, 그분이 남편에게 부탁했다. 안식년을 맞아 서귀포 한 달 살기를 하려 하니, 알맞은 숙소를 찾아 달라고. 식사는 해 드시지 않으니 밥 먹을 곳이 많으면 좋겠다는 조건도 있었다. 남편은 성산에서 모슬포까지 괜찮은 숙소 리스트를 만들어 보내드렸다. 최종적으로 남원과 쇠소깍의 숙소를 검토하다 쇠소깍 펜션을 택했다. 주변에는 밥집이 많았다. 비싼 맛집보다 조촐한 동네 밥집들이 있는 동네였다.     


시와 여행을 좋아하고, 책도 여러 권 썼던 그분은 그곳에서 글 쓰고, 산책하며 홀로 한 달을 보내다 가셨다.  

“그래서, 회장님이 그 숙소 만족해하신 거야?”

“그럼. 3층 방에서 등대가 보이는 풍경을 아주 좋아하셨지.”

신기했다. 제주에 오시면 늘 5성급 호텔이나 비오토피아 같은 최고급 숙소에 머무시던 노인이 그 작은 펜션 방에서 겸허한 생활을 하는 것이.     


지난 주말, 바람 없이 포근한 쇠소깍에는 겨울에도 테우(통나무로 만든 뗏목)와 2인승 카약 체험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조금만 해변을 벗어나면 한적한 효돈 마을이 나붓이 펼쳐져 있다. 

지금은 투명 카약이 없어졌는데, 몇 년 전 서울에서 온 제자는 그걸 타보고 흥분해서 외쳤었다.

“제주에서 제일 신나는 체험이었어요!”

쇠소깍의 푸르고 시리도록 투명한 물에 바닷속 돌들이 그대로 비쳤다.     


쇠소깍 체험하는 부근에는 유료 주차장이 있고, 조금 더 해안 쪽으로 가면 무료 주차장이 있다. 서귀포 사람은 어지간하면 유료 주차장 이용 안 한다. 무료로 주차하고, 등대 구경을 간다. 포구에는 일인용 차를 타고 온 할아버지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뭐 좀 잡혀요?”

할아버지가 싱긋 웃는다.

“전갱이야.”

할아버지가 가끔 먹이를 던져주자, 주위에 고양이 떼들이 기다리고 있다 달려든다. 고양이를 벗 삼아 오후를 낚는 할아버지 손길이 따숩다.     


보목포구로 가는 좁은 길을 걷다 보면 ‘게우지코지’를 만난다. 조심스럽게 ‘추락위험!’이 있는 바닷가 쪽으로 나가보자. 왼쪽으로는 검은 돌들 위로 바람에 누운 풀과 나무들이, 오른쪽으로는 특이한 ‘생이돌’이 눈길을 앗아가며 가슴이 서늘해질 것이다.       


   

유래     


쇠소깍은 한라산에서 흘러내려온 효돈천의 담수와 해수가 만나 생긴 깊은 웅덩이이다. 
'쇠소'는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의 연못'을 '깍'은 '마지막 끝'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가뭄을 해소하는 기우제를 지내는 신성한 땅이라 하여 함부로 돌을 던지거나 물놀이를 못 했다. 계곡의 입구를 막아 천일염을 만들기도 했고 포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검은 모래로 유명한 하효 쇠소깍 해변에 이른다. 7~8월에 쇠소깍 축제가 열려 맨손 고기 잡기, 검은 모래 속 보물찾기, 효돈동 감귤브랜드인 ‘다우렁’길 걷기 등 다양한 행사를 체험할 수 있다.      
게우지코지   

툭 튀어나온 암석 지형이 전복의 내장(제주어로 ‘게읏’)을 닮아 이름 붙여졌다. 게우지코지 옆에는 뾰족하게 솟은 두 암석, 생이돌이 있다. 제주어로 새를 뜻하는 ‘생이’와 ‘돌’이 합쳐진 말로, 바다 철새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visitjeju]        


카페숙소밥집     



1. 게우지코지 커피하우스와 펜션     

이번에 처음 찾은 이 커피집은 게우지코지 바로 앞이다. 야외 좌석에 앉아 커피와 빵을 즐기는 걸 추천한다. 바다와 햇볕과 꽃, 옆 양어장 물소리가 더해 완벽한 한 때를 만들어 줄 것이다. 음료와 빵은 빼어나지는 못하다. 하지만 뒤쪽 숙소는 조용하고 리뷰도 좋아서 머물만한 곳이다.            


2. 테라로사     

유명한 테라로사. 이름에 걸맞게 정원도 내부도 훌륭하다. 나는 산미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 혼자 즐기러 가지는 않는다. 

지금 서귀포는 귤 철이다. 귤나무 옆에 앉아 커피 마시는 호사를 부려볼 수 있다.      

     

3. 서양차관     

서귀포 신시가지에는 ‘시스터 필드’라는 서귀포 최고의 빵집이 있다. 전지현이 제주도에 오면 빵 사러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다. 시스터 필드가 몇 해 전 보목과 쇠소깍 중간쯤에 서양차관을 열었다. 

처음 열었을 때 마치 ‘미스터선샤인’에 나옴직한 실내의 분위기와 외관에 서귀포 명소가 될 것을 알았다. 이번에도 사진 찍기 위해 다시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주인이 바뀌었는지 실내외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 카펫에는 얼룩이 지고 군데군데 허술함이 보였다. 


다행히 차맛과 그릇과 달지 않은 양갱 및 디저트 맛은 그대로였지만, 이미 손님이 떠나고 한 테이블에 손님 몇이 담소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제주 최고라는 밀크티의 맛이나, 경성시대를 느끼게 하는 인테리어를 보고 싶은 분은 가봄직하다. 


"서양차관 주인께.

멋진 장소와 개성이 뚜렷한 이 카페를 방치하는 것은 너무 아깝습니다. 리노베이션 하여 젊은이들의 인스타 명소로 부활해 주세요."    

      

4. 소금막 식당과 펜션     

엄마가 제주에서 음식점 할 때, 내가 가면 동문시장에서 갈치 사다 생선구이 기계로 구워주셨다. 그 도톰하고 노릇한 갈치구이 맛을 잊을 수 없다. 제주에 와서 먹은 다른 갈치구이는 도통 감명 깊은 맛이 아니었다. 

소금막 식당은 구이가 아니라 갈치튀김이었다. 생물구이라 맛있었지만, 튀김이라 많이 먹을 수 없었다. 단 2인분, 6토막 주문에 3만 원이면 제주 식당 물가로는 괜찮은 편이다. 비싸지 않게 갈치 먹고 싶은 분들이 가볼 만하다.

식당은 1층, 2층부터는 펜션을 한다. 문의는 식당에서 하면 된다.     


5. 만금식당     

당신이 낯선 동네의 식당을 선택할 때, 그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찾는 오래된 정식집을 택하는 사람이라면. 

만금식당은 회장님의 단골 밥집이었다. 나는 혼자 갔더니 2인 주문인 정식은 먹을 수 없어, 18,000원 하는 옥돔구이를 먹고 왔다. 오래간만에 먹는 방금 구운 옥돔을 먹느라 반찬은 손도 못 대었다. 

“어떻게 이 가격에 옥돔구이를 낼 수 있어요?”

“시장에서 사면 못 하죠. 공장에 가서 박스로 사 와요.”     


6. 그리고 ‘베케’     

해안가는 아니지만 베케도 효돈에 속한다. 베케는 자연 카페이다. 꽃 좋은 철에 지나는 길이면 꼭 가보시기를. 주인이 조경전문가라 정원이 볼만하다. ‘제주에서 가장 사랑받은 카페 10’에 속하는 곳이다. 나도 그곳에서 조경 강의를 받기도 했고,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벚나무 보러 간다.




대체 음식이나 카페 리뷰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 맛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백종원은 배가 클 것 같다. 쇠소깍의 맛집을 먹어보고 쓰려고 지난 일주일 동안 네 번 갔다. 지금 당장 먹어보고, 마셔 보고 써야지, 지난번과는 맛이 달라질 수 있었다.     


자구리에는 예전부터 우리가 즐겨 찾던 고기국숫집이 있었다. 이번에도 소개하려고 갔다가 손님이 없어서 갸웃했다. 먹어보고 깨닫게 되었다. 무성의한 음식. 딱 한 숟갈 떠먹고 나니 못 먹을 것 같아 겨우 체면치레만 하고 나왔다. 주인이 같아도 그랬다. 손님들이 먼저 안다. 곧 문 닫을 거라 본다.     


서귀포 주민으로서 경기가 너무 없어 안타깝다. 이번에 만난 한 식당 주인은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 때는 손님이 넘쳤는데. 손님이 너무 없어 죽고 싶은 심정이다.”


곳곳에 문 닫은 식당들. 저녁이면 컴컴한 이중섭 거리. 

“이제 제주도 안 간다!”

는 기사를 볼 때마다 속이 쓰리다. 

아닌데. 잘 찾으면 먹을 것도, 볼 것도 많은데. 비싼 식당 안 가도 되는데.

느무느무 비싸기만 한 집에서 먹어놓고, 돌아서서 흉보는 건 반칙이다. 도민인 우리는 그런 데 평생 안 간다. 그러니 구경 오시는 분들도 잘 검색하여 실속 있는 관광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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