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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Feb 26. 2024

Sisters, 내 자매들이 있어서


나는 맏이다. 어렸을 때는 장녀라는 게 싫었다. 엄마는 두 살 터울로 5남매를 낳아서, 내가 16세 때 14, 12, 10, 8살의 동생들이 있었다. 사춘기 때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바빴고, 어린 동생들이 있어 집은 늘 시끄러웠다. 자식들이 많아서 부모님은 7월생인 나를 한 해 일찍 학교에 보내서, 바로 밑의 동생과도 세 학년이 차이 났다. 그래서 집에 대화 나눌 사람이 없었다. 가장 차이가 심하게 났을 때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동생 둘을 데리고 어린이날 엄마 대신 어린이대공원에 가야 했다.  

    

우리 자매들은 십 년 전부터 다시 뭉쳤다. 초등 동창들이 인터넷이 생기며 다시 만났듯 우리도 단톡방에서 매일 연락하기 시작했다. 가슴 답답한 가정사가 생기면 서로 호소했고, 좋은 일이 있거나 생일이면 앞다퉈 축하했고, 아침저녁 반찬이나 먹거리, 건강정보들을 나눴다. 모두 떨어져 살지만, 카톡 덕에 평생 어느 때보다 더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 홀로 제주도에 살지만 친구가 그렇게 필요 없었다. 할 말은 자매들에게 다 해서 적적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엔 형제자매가 많아서 외로웠는데, 지금은 자매들이 많아서 외롭지 않다.     

 

매년 봄가을에는 뉴욕에서 동생이 온다. 그 기간에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 간다. 어머니의 보행이 자유롭지 못해 많이 걷는 여행이나 해외는 못 가고, 강원도나 경기도의 리조트에 간다. 가끔 제주도로 가족들이 오기도 한다. 이박 삼일의 짧은 나들이지만, 홀로 계시는 어머니는 이 때만 손꼽아 기다리며 사시는 듯하다. 나보다 더 큰언니 같은 둘째가 어머니 가까이 살면서 매일 찾아뵙지만 다른 딸들이 그리우신 거다.    

  

내가 자매들에게 받은 도움은 셀 수 없다. 내 가족이 아플 때, 둘째는 부산까지 내려와 온갖 집 정리를 다 도와주었다. 셋째는 2000년에 혼자된 나를 뉴욕으로 불러 자기 집에 살게 했고, 정착할 수 있게 온갖 일을 다 돌봐줬다. 작년 뉴욕에 한 달 살고 싶다고 말하자 흔쾌히 그 부부는 나를 받아들였다. 뉴욕 도심은 하루 호텔비가 50만 원이 넘는다. 동생 집이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준 것보다 내가 받은 게 훨씬 많네. 나야 귤 철 되면 귤이나 보내주고, 셋째 한국 오면 육지에 가서 함께 놀러 가고, 제주에 식구들이 오면 돌보아준 것밖에 없는데.    

 

살면서 중년이 되기까지는 친구가 좋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 점차 힘이 빠지고, 아픈 곳이 생겨도 귀찮아하지 않고,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해 준다.      

다행히도 지금 오 남매 중 남동생만 암으로 투병 중이고, 네 자매는 다 큰 병이 없다. 

예전에 고베 아저씨가 팔순이 넘어 말씀하셨다.

“이제 친구들 다 가고 나 혼자 남았다.”

자식도 아내도 없었던 아저씨는 일본에서 홀로 외롭게 살다 돌아가셨다. 암에 걸렸지만, 그저 그와 더불어 같이 산다고도 하셨다.

맏이인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동생들을 생각한다. 한 사람씩 가기 시작하면 마지막으로 남는 한 사람은 얼마나 외로울꼬. 오래 산다는 게 반드시 축복이 아니다.     

 

오늘 둘째의 남편은 대장 용종 시술을 했다.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별일이 없기를 바라는 기도를 했다. 바깥에서 애타게 기다릴 내 동생이 안타깝고 종일 마음 쓰였다. 

그래. 남은 날까지 이렇게 서로 염려해 주고, 생각해 주는 자매들이 있는 게 행운이고 축복이다. 병과 목숨은 어쩔 수 없지만, 사람 사이의 일은 우리하기 나름이다. 나도 받기보다 좀 더 베풀면서 살아야지. 그리고 내 자매들과 재미있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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