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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Oct 31. 2024

조립식 가족을 보며 떠올린 샤스루

엄마는 낳은 사람만이 아니다     


드라마 ‘조립식 가족’을 본다. 첫 화의 아이들 모습이 짠하여 보게 되었는데 이야기가 빼어나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움켜쥐는 포인트가 있었다.      


누구보다 아빠 정재(최원영역)를 유심히 본다. 

엄마가 일찍 죽은 자신의 어린 딸, 

돈 벌러 간다고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남자아이,

자신의 상처를 감당하지 못해 아들을 학대하다 떠난 엄마를 기억하는 남자아이.

엄마 잃은 세 아이를 그는 십 년 동안 든든하게 지킨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의 밥상을 준비하고, 빨래와 저녁 식후 뒷마무리까지 혼자 다 하는 그는 세 아이가 일찍 잃은 엄마였다. 엄마란 낳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덕분에 세 아이는 건강한 청소년이 되었다. 

공부는 꼴찌에 가깝지만 씩씩하고 긍정적인 딸과 각각 소질을 살려 운동과 공부를 잘하는 두 남자아이의 고교 시절 모습을 지금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젊은이가 된 세 남녀의 로맨스 드라마로 발전할 모양이다.     

원작 중국 드라마 ‘이가인지명 以家人之名 (2020)’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란 의미인 걸 보니, 중국에서도 가족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어 제목 ‘조립식 가족’도 극의 의의를 잘 나타내는 제목이다.


샤스루를 닮은 아빠     


나는 늘 혼자 집안일을 다 하는 드라마의 아빠가 가끔 목이 메었다. 그를 보며 샤스루를 떠올렸다. 


* 프랑스어 샤스루 chasse-roue : 마차나 차량 출입으로 인한 파손을 막기 위해 문의 귀퉁이나 건물의 모서리에 설치하는 경계석, 쇠말뚝        

      

 

사진가 구본창의 홈페이지, https://www.bckoo.com/chasse-roue


구본창의 사진 중에서 특히 이 샤스루가 마음에 들었다. 둥근 몸이 마치 엄마처럼 집을 품고 보호하고 있었다. 아빠는 이처럼 가족을 세상의 횡포로부터 지켰다. 샤스루가 생채기투성이가 되듯이, 정성으로 아이들을 돌보느라 과로해서 쓰러지기도 한다. 그에게는 혈육만이 아니라 자신이 품은 아이들 모두 가족이었다.     

 

가족의 해체, 재구성    

 

부모의 가출, 사망, 별거나 이혼 등에 의해 위기에 처한 아이들이 늘고 있다. 부모도 기구한 사정이야 다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저 슬프고 외로울 뿐이다. 

조립식 가족의 딸 주원(정채연 역)은 세 아이의 성이 다 달라서 사람들에게 가족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양자 결연을 통해 성을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제 가족은 더 넓은 범위로 재구성되고 있고, 우리는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혼인으로 맺어진 것은 아니더라도, 혈연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더라도 구성원 간의 결합 자체에서 비롯되는 ‘활짝 웃음’이 있다면 그 웃음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가족의 기능 하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혼인과 혈연을 강조했던 전통적인 ‘정상 가족’ 개념 외에, 구성원 간의 유연한 결합을 통해서도 전통적 가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방식, 즉 비혼 가족과 같은 대안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설규주, 《쿨투라》     


이제까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뭉클한 장면은 아마도 3회 말 아빠 정재와 아들 해준의 대화일 것이다. 

해준의 친아버지가 아들을 데려가려고 왔다. 아들은 친아버지를 만난 이야기를 정재에게 하지 않았다.


정재 : 그래도 아빠 의견을 묻는다면 아빠는 안 갔으면 좋겠어.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아빠가 너 밥도 해줄 수 있고 또 니 교복도 다리고. 아빠는 조금 더 그거 하고 싶어서.  
해준 : [울음] 가라 칼까 봐. 말 안 할라 캤어요. 무서워서. 


제 몸과 마음의 상처에만 관심 있어 악만 바락바락 써대는 미성숙한 친엄마, 돈이 먼저인 친아버지를 가진 아이들이라도 이렇게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는 사람에게 아이들은 세상 사는 법을 배운다.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조립식으로 만난 가족이었지만, 십 년을 부자로 살아온 이들은 이미 끈끈한 가족 결합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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