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죽었다.
“더 이상 손 쓸 수 없으니 호스피스 시설로 옮기래요. 통증 완화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괜찮다고요.”
“고통 없이 편하게 계시다가 가게 해드리자.”
잠인 듯 꿈인 듯 소곤소곤 내 아이들이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게 까무룩 멀어졌다.
며칠 전,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후로는 마약성 진통제 덕인지 통증은 둔해졌지만, 잠수하듯 자주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을 다시 만났다. 어제의 기억처럼 선연하게 그날들이 느껴지고, 그때의 감각과 기억이 살아났다. 나는 먼저 내 유년 시절로 날아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으로 남았다. 슬라이드 필름처럼 내 생의 기쁨과 슬픔의 순간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여섯 살 때 동네 아이들과 달리던, 해바라기가 피어있던 기찻길. 소녀 시절, 동무들과 만나기로 했던 새벽 해운대의 비바람. 첫눈. 첫 아이의 첫걸음. 첫 외국 풍경. 남편과의 사랑 등. 기뻤던 순간들이 넘쳤다. 더 더하거나 덜어내지 않아도 될 만큼 내 인생의 여물통에 가득 찬 기억들이 이제까지 날 지탱하고, 살게 해 주었다.
아빠. 거기는 어때요? 이제 저를 데려가 주세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다가온다. 진통제에 취해서 앞에 무언가 있듯이 그것을 가리키며, “저기, 저기.” 하시던 아버지. 이제 내가 아버지의 모습을 향해 허공에 손을 내민다.
“저기, 저기.”
오늘 아침 아버지가 나를 마중 나왔고, 그 손길을 따라 생과 사의 경계를 힘들지 않게 넘었다.
바람을 따라서, 올레 7코스에 산책하러 갈 때마다 외돌개를 오래 바라보았다. 힘차게 솟아있는 그 돌무더기는 죽음을 힘들게 하지 않고 벗해줄 것이다. 외돌개 주변의 바다는 내 남겨진 흔적을 못 가본 세상 곳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바다는 새로운 길을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내가 죽으면 꼭 저기다 뿌려줘.”
그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부탁한다.
나를 보내고, 장례식장에 3일간 모이는 그런 장례식은 하지 마세요.
그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정말 피로한 절차였어요.
대신 내 재를 뿌리고 와서 피로연을 열어 줘요.
왜 결혼식이나 생일만 잔치하냐고요.
오늘은 나의 또 다른 출발이잖아요.
한 생 사느라 수고한 나를 위해 모두 모여 즐겁게 먹으면서, 웃고, 춤추고, 놀아주세요.
음악도 활기찬 곡을 틀어요.
많은 분이 오지도 않겠지만, 안 와도 서운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과 아이들, 그리고 친구 몇.
나는 보이지 않아도, 그 곁에 있을 거예요.
살아가면서 가끔 사금을 채취하듯 전혀 뜻밖의 기쁨을 얻는 순간이 있다. 숱한 자갈과 모래들 사이에서 걸러진 그 작고 반짝이는 덩어리들 덕분에 이제껏 살아왔다. 언제 다시 그런 행운이 올지, 다시 오기는 할 건지 알 수 없는 사금광(砂金鑛)에 살지만, 여전히 기대하는 것이다. 그날 그 자리에서 눈부시게 화학 변화를 일으켰던 한 사람이 혹은 한 풍경이 사금처럼 반짝이며 내 안에 가득하다. 오늘 나는 죽었지만, 그 기억들은 아직 살아있다. 생의 마지막 날이 기억들로 환하다. 장례식 피로연에서 나는 환하게 웃고 있다.
맺음말)
사진은 21년 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이다.
딸아.
엄마의 이 글을 슬퍼하지 말아라.
‘Memento Mori’.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것은 생을 더 활기차게 만들고, 내 남은 시간이 아까워서 알차게 쓰게 한단다. 그동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갈란다. 이 엄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