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죽는, 환한 장례식 기사를 본다. 파티 같은 죽음의 장면은 생소하지만, 우리도 이제 장례식에 대해 재고해야 할 때가 아닐까. 왜 죽음이 늘 엄숙하고 슬퍼야 할까. 왜 3일이라는 긴 시간을 가족들을 힘들게 해야 할까. 왜 꼭 검은 옷과 상복을 입고, 소란스러운 장례식장에서 죽은 이와 감정의 연결도 없던 이들을 만나야 할까.
그러니,
“죽었어요.”
하고 연락하기보다,
“곧 죽어요. 그래서 모두 같이 마지막 만남을 갖고 싶어요. 즐겁게 죽고 싶어요.”
하는 초대를 하면 어떨까?
생전 장례식의 모습이 간혹 보인다. 죽기 전에 가족과 친구들과 미리 이별 인사를 나눈다. 검은 옷 대신 밝은 색 옷을 입고,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온 날을 돌이켜 본다. 네가 있어서 행복했다는 주위의 따뜻한 반응은 죽음을 앞둔 이를 충만하게 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웰다잉 문화운동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드라마 ‘서른, 아홉’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부고 리스트.
“밥 한번 먹자고 연락이 오면 나가서 밥 한번 먹고 싶은 사람.”과 죽기 전에 다 함께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부고 리스트를 만들어 보면, 내 삶의 관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될 것이다.
생전 장례식이건, 사후 장례식이건, 장례식을 신나고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내 어머니는 어느 날 당신의 장례식 때 <티어스 인 헤븐>을 틀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 내 장례식 때는 <With a little help of my friends>를 틀어줬으면 좋겠다. <스타워즈> OST 중 <다스베이더의 테마 Darth Vader's Theme>도 나쁘지 않다. 둘 다 틀어도 좋다. (『쓸모 있는 음악책』201쪽)
음, 내 장례식에서의 플레이리스트라. 저자의 곡을 들어보았는데, 나의 곡은 아니었다. 특히 Darth Vader's Theme이라니. 이건 좀 깼다. 그럼 나의 곡은 무엇일까? 너무 거룩하거나 너무 슬프지 않은 곡을 골라봐야겠다. 평소에 내가 즐겨 듣던 곡, 가족들이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곡들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놓자.
부고 리스트와 나의 장례식 플레이리스트는 애도가 아니다. 끝을 받아들이자는 의미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가족의 죽음은 사실 이렇지 않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일주일 동안 혼수상태였고, 그 이전 몇 달도 파티를 열어 드린다 해도 즐길 수 있는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 죽음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시아버님은 오래 앓았지만,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셨다. 죽음은 계획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의 장례식 피로연을 꿈꾸어 본다.
남편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내가 부탁하면 늘 선선하게 “그래.”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에게 나의, 신나는 장례식 피로연을 부탁한다.
맺음말)
발칙한 상상력으로 내 장례식 피로연을 꿈꾸어 본다. 이게 웃고 즐길 일이냐 싶다. 막상 죽음 선고를 받으면 바람에 춤추듯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서도 눈물을 펑펑 쏟을 거다. 그래도 죽음은 준비해야 한다.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한 방에 가더라도.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마음 자세로 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