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뉴욕 한 달 살기 3
뉴욕에서 첫발을 구겐하임으로 뗀 것은, 집에서 가깝고, 마침 <한국 실험 미술, 1960년대~1970년대> 전시회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시대를 살아봤지만, 대체 밥 먹고 살기도 바빴던 시대에 누가 어떤 실험 예술을 할 수 있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날씨도 화창하고, 그다지 덥지도 않아 걷기 좋았다. 집 앞에서 버스 타고 내려서 걸어가는 길도 상쾌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버스 정류장도, 버스에서 메트로 카드를 꼽는 방향도. 내릴 때 카드를 다시 안 대는 것도.
내리려고 문 앞에 서 있는데 문이 안 열렸다. 잠시 응? 하다가 앞을 보니,
‘문을 열려면 문에 있는 노란 선을 탭 하세요.’
란 글이 쓰여있었다. 슬쩍 건드리니 열렸다.
해봐야 알 수 있다. 이십 년 만에 혼자 뉴욕에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니 잠시 긴장했지만, 한번 해보면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편안하다.
“여권을 갖고 가봐. 시니어 할인이 될지도. 외국인이라 안 되려나? 워낙 입장료들이 비싸니까.”
생일이 한 달 지났으니 나도 시니어라, 이번 여행에 입장료 외화벌이를 톡톡히 해보려 한다. 원래 30불인데, 지금 재정비하는 중이라 일부만 열고 있어 티켓 할인을 하기도 했다. 서울에서도 안 해본 ‘할머니 할인’을 받아 시니어 19불인데 12불에 구겐하임에 입장했다.
전시회는 예상대로 난해했다.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주최로 5월 26일~7월 16일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회를 마치고 여기로 온 것이다. 나도 한참 자료를 찾아보고 해야 그 의미와 유래를 알 수 있었다.
개인으로 기존의 회화, 조각의 영역을 벗어나 오브제와 설치, 해프닝, 이벤트와 영화, 비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새 매체들을 ‘실험미술’의 이름으로 포괄하며, 역동적인 사회 현상을 반영하였다. 이 새로운 흐름은 «청년작가연립전»(1967)에서 촉발되고 확산되었으며, 1970년대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에서 집결되고 본격화되었다. 이후 ‘제4집단’, ‘ST’, «대구현대미술제» 등에서 다양한 면모를 보이며, 한국의 전위미술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회 설명 중)
관람객들은 이강소의 <닭> 퍼포먼스 사진과 흔적을 재미있게 보고 웃었다. 팔순의 미술가 성능경의 <세계전도(世界顚倒), 1974>가 내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자랄 적엔 저런 세계지도가 학교의 각 교실 벽에 붙어 있었다. 그 세계전도(全圖) 한자를 비튼 것이다.
성능경의 <신문 1974.6.1. 이후>는 말하고자 하는 게 이해 갔다. 어릴 때 매일 아침 신문을 읽으시던 아버지는 말했다.
“신문의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시대였다. 신문이 전해주는 기사로 세상의 일을 다 알 수 없었던 시대.
여운의 <작품 74>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74년 개봉한 <별들의 고향> 영화에서 경아역을 한 안인숙과 몇몇 인물이 낯익었다.
전시회는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내가 세상이나 인간 내면에 깊은 고뇌 없이 살았던 시대에, 저들은 저렇게 실험적인 시도를 했구나. 당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참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좀 몽몽한 시선과 심정으로 계단을 내려와 마네와 르느와르의 그림들 앞에 갔는데 전시회의 여운이 남아 그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득 한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는데, 속으로 깜짝 놀랐다. 실험적인 작품들을 보고 나와 다시 현실에서 실험을 본 느낌이었다. 그녀를 따라가다 결심하고 말을 걸었다.
“네 화장이 무척 특이하고 아름답다. 사진 좀 찍어도 되나?”
그녀는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승낙한다.
“그 화장이 매일의 화장이냐?”
말을 잘 못 시켰다. 그때부터 디자인 전공이라던 그녀는 자신의 화장에 관한 철학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웃으며 그녀와 헤어진다.
재미있다. 실험적으로 살지도 못했고, 지금도 못하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어 사람에게 다가가니 또 새로운 추억거리를 만든다.
그렇게 지낼 거다. 많이 걷고, 서슴지 않고 말 걸고 다가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