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 달 살기 10
한국에서 예약해두었던 브라이언트 파크의 요가를 가려고 준비하다가,
‘아, 몸이 이거 좀 아니네.’
싶어 그때부터 드러눕기 시작했다.
몸살까지는 아닌데, 무기력이 찾아와서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았다.
책방에서 책 도착했다고 찾으러 오라고 문자 와도,
동생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클로이스터(The Met Cloisters, https://www.metmuseum.org/visit/plan-your-visit/met-cloisters) 가볼 만해.’ 하고 추천해도 꿈쩍 않고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만 하루를 밥 먹고 쉬고 드라마 보며 침대와 붙어 있었다. 오늘부터 보스턴 여행을 아침에 가기에 체력을 충전해두어야 했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 이 아파트에 들어와서 좀 당혹스러웠다. 여름 서귀포에서는 밤새 한라산과 바다쪽 창을 한껏 열어젖히고 잔다. 바람도 실컷 맞고, 달빛도 들어오는 창가에서 자다가 맞바람 없는 아파트에 적응해야 했다. 첫날 밤은 힘들었는데, 다행스럽게 도착 다음 날부터 기온이 내려갔고, 동생이 거실 창문을 밤새 날 위해 열어두었다. 그제서야 잠자리가 시원하고, 편안해졌다. 역시 서귀포가 사람 살기에 최고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저녁 준비를 한다. 스티브는 이쪽 요리를, 나는 한식을, 저녁만 메인으로 먹고, 아침과 점심은 모두 제각각 알아서 먹는다. 간혹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점심 준비를 해서 나눠 먹기도 하지만, 둘 다 한그릇씩 들고 컴퓨터 앞으로 일하러 간다.
내 생각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재택 근무하는 동생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 밤 11시까지 집에서 일할 때도 잦고, 거의 하루 종일 잠시 점심 먹는 시간 외에는 일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어느 시점까지 일하겠다고 정해두고 해야 할 것 같다. 마냥 60이 넘을 때까지 이렇게 일만 할 순 없지. 돈을 덜 벌더라도, 좀 더 가벼운 일로 옮기든지, 취미를 살리는 일을 해야.”
남편이나 스티브나 영민이나 모두 일에 성취감을 느끼고, 일 잘하고, 돈 잘 버는 사람들이지만 이제 삶과 일의 경계와 한계를 정해가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일만 하다 아프고, 일만 하다 죽으면 인생이 아깝잖아. 나는 세 사람에 비하면 좀 더 약은 편인가? 지금 이렇게 한달이나 농뗑이를 치고 있으니 말이다.
엊저녁은 이 아파트의 입주민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팬데믹 이후 처음, 4년 만에 열린단다. 옥상에 주민들이 모여 준비된 음식과 와인을 먹으면서 서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다.
“나름 파티인데 예쁜 옷 입고가야 하나?”
셋이 옥상에 가니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다. 허드슨강을 끼고 붉은 노을이 물들어 있고, 그 노을 속을 비행기가 난다.
강 건너편에, 예전에 영민 친구 은미가 살던 아파트가 있다. 나는 23년 전에 은미네 집에 가보고 그 온통 흰색으로 인테리어된, 심플하고 세련된 집이 몹시 부러웠다. 이제는 나도 서귀포에 우리집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 변화가 다시 돌아봐지는 날들이다. 그리고 이제 슬슬 우리집 바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