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6, 70년대에 그렇게 관심이 많냐고요

뉴욕 한 달 살기 4

by 꼬낀느


뉴욕 2일째.


길도 익힐 겸 어제는 12,700보, 오늘은 13,000보를 걸었다. 사는 곳과 친해지려면 걷는 게 최고다. 공간지각력이 부족해서 이사 가면 몇 달간 집 주위를 걸어 다니며 동네를 익혔다. 예전에 알았던 뉴욕의 길들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되어 있어 다시 정리해서 입체적인 지도를 만드는 중이다. 구글맵을 내내 켜고 다녔더니 아이폰 12 바테리가 하루를 다 가지 못했다.


여기도 유기농 호울 푸드 whole food이 대세였다. 첫날 동네 마트에서 아침으로 먹는 사과와 견과류를 샀는데, 견과류가 맛이 없어 못 먹을 정도였다.

“호울 푸드 가게 가서 다시 사자.”

아침에 같이 콜럼버스 서클까지 걸어가면서 영민은 동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해주었다.

“이 동네는 대부분 안전한데, 저기 저 건물은 시에서 지은 아파트라 유색인종들이 많이 살고 밤에 지나갈 때 조금 조심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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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동네에 따라 위험도가 확연히 달라서, 미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쪽 어퍼 웨스트지역은 안전한 동네이다. 저녁에 둘이 산책길이 잘 정비된 강가에 나가 걷기도 했는데, 동네 주민들이 서울 강변처럼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도 다니며, 조깅도 하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강변과 West 66번가가 만나는 이 집에서 지하철을 타려면 10분 걸어서 링컨센터까지 가야 한다. 영민은 링컨센터 영화관에서 요즘 6, 70년대 한국 영화 특집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오늘은 디자인 스토어를 오전에 두 군데 돌아보고, 아름답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듬뿍 눈에 담았다. 이런 물건들을 사지는 않아도, 한참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h.jpg 모마 디자인 스토어에서 본 소금 후추통. 딸 선물할까 하다가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아 보여 일단 보류.


H 마트 가서 오징어와 삼겹살을 좀 사려고 바로 한국 거리에 갔다. 여기 있는 동안 한식 요리 간편한 것을 몇 가지 동생에게 가르쳐주려고 한다. 오늘은 오삼불고기를 좀 덜 맵게 할 것이다.

H 마트에 어떤 제품이 있나 주욱 둘러보며 구경하는데, 떡 파는 곳에서 두 아주머니가 한참 대화를 나눈다. 썰어놓은 납작한 떡국떡과 떡볶이를 하는 동그란 떡의 차이가 무엇인지 검은 얼굴의 라티노 아줌마가 침을 튀면서 곁의 백인 아주머니에게 설명하고 있다. 떡국과 떡볶이 차이를 설명하는데, 들으면서 혼자 속으로 기가 찼다.

‘너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한식에 열을 올렸니.’

그러고 보면, 점심으로 김치 순두부 먹으러 갔던 식당도 한국인보다 현지인들이 더 많았다. 이제 미국 사람들도 매운맛에 꽤 친해져 있다.




장을 보고 들어와서 한두 시간 쉰 후 링컨센터 영화관에 한국 영화를 보러 나섰다. 밤에 가긴 싫고, 오후 4시 이만희 감독의 1963년 전쟁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예약해 두었다. 이대엽, 장동휘, 최무룡, 구봉서, 전계현, 독고성 등 쟁쟁했던 배우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러 갔다.


어제 구겐하임에서 나는 한국의 50년 전 실험미술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뉴욕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늘은 영화관에서 다시 혼자 키득키득 웃는다. 영화 시작 전 20분, 자리에 앉았는데 나오는 음악에 한글 가사가 들렸다. 아마도 김정미인 듯해서, 앱을 열고, 음악을 들려주고 제목을 찾았다.

뒤 이어 펄 시스터즈의 <나만을 사랑해 줘요>

신중현의 <커피 한 잔>

박춘석의 <연애 졸업반>

키보이스의 <멀어져 간 사랑>

잊어버린 옛날 노래들이 링컨센터의 영화관을 울렸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이들은 지금 이렇게 50년 전 우리 문화를 음미하는지.

영화도 요즘 영화들처럼 말끔하고, 스타일리시하지도 않고, 대사와 연기가 이북 배우들처럼 과장되어 있는데. 무엇을 보는 것일까. 나처럼 향수를 느끼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흥미로운 일이다.


이 영화에서는 구봉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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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구 : 주의 곁으로 가는 영광이 베풀어지고 말았구나. 이제 죽으면 정말 억울하다. 우리 집은 쇠푼이나 있는 집안이거든. 나는 장남이고 말이야. 그래서…그래서 요리조리 피해 후방 근무만 하다가 총질이 하고 싶어서 지원해서 전선에 나왔지. 내가 몇 놈이나 죽였을까? 아마 내가 쏜, 쏜 총엔 한 놈도 안 죽었을 거야. 총질이 서투르니까 말이야. 그런데 놈들은 날 쐈어. 나쁜 놈들. 난 이대로 죽는 거요? 너희들은 날 살릴 수 없니? 내가 재미있게 말하면 너희들은 웃었지? 슬플 때도 말이야. 내가 죽으면 너희들은 슬프지. 내가 없으면 누가 웃겨주니? 내가 웃으면… 이렇게 말이야.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도 구봉서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그가 맡은 봉구는 영화의 가장 웃기는 장면과 가장 슬픈 장면을 책임진다. 막걸리 파티에서 양춤을 주도하거나, 양공주 바에서 엉터리 영어로 미군들을 돌려보내는 장면은 영화가 가장 유쾌해지는 신이다. 반면 전우들에 둘러싸여 봉구가 죽어가는 장면은 전쟁에 대한 깊은 성찰이 느껴지는 대사와 함께 영화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그린다. 그러고 보니 “전장에도 양지는 있구나” 같은 이 영화의 유명한 대사들은 심심찮게 봉구의 입을 통해 나왔다. 영화를 참 잘 만드는 이만희가 봉구의 죽음에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s://www.kmdb.or.kr/story/132/3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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