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재즈를 즐기다 보니

뉴욕 한 달 살기 16

by 꼬낀느


나는 재즈를 젊은이들에게 배웠다. 96년에 대학원에 들어가서 알게 된 띠동갑 친구들. 그들이 재즈를 들었다. 낯설었다. 그때까지 내가 알았던 음악은 어렸을 때는 클래식, 젊었을 때는 팝송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가 재즈를 음악으로 안 쳤다. 그 영향인지 호기심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다닐 때 박성연의 야누스가 신촌에 문을 열어도 가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90년대의 젊은이들은 재즈를 듣고 즐겨서 고개가 갸우뚱했다.


당시 친구들이 좋아했던 음악을 하나씩 찾아 들으며 공부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듣는 음악이 재즈라서 나도 알고 싶어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즈는 처음 듣는다고 선뜻 좋아지는 음악은 아니었다. 그럴 만큼 감각과 음악적 자질을 타고난 사람은 좀 드물지 않나.


처음에는 쳇 베이커가 좋았다. ‘Alone Together’나 ‘Almost Blue’에서 그의 우수에 흡수되었다. ‘고엽’의 많은 버전들을 차례차례 들어 나갔다. 캐논볼 애덜리의 연주 중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에 가슴이 후드득 뜯겨 나갔고, 빌 에반스의 피아노에는 좌절을 느꼈다. 리얼북의 간단한 멜로디 한 장을 두고, 어떻게 저런 연주를 할 수 있는지 그의 능력에 졌다. 에바 케시디의 말랑한 목소리도 한 해 가을쯤 좋아했었다. 또 시드니 베쳇의 서머타임이 들어 있는 앨범을 구하고, 한동안 그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렸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다이애나 크롤의 파리 올렝피아 극장 라이브를 보았다. 호흡도 멈춘 듯 한 시간이 넘는 공연을 TV에서 다 보았다. 타자로서의 재즈가 아니라 비로소 내재화되는 체험을 한 공연이었다.

그 후 여자 싱어들의 목소리가 좋아, 말로, 웅산, 나윤선의 공연에 갔다. 밥 제임스에 대한 에피소드도 생겼다.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재즈 싱어여서, 홍대앞 '에반스'와 대학로의 ‘천년동안도’에 그녀의 노래를 들으러 자주 갔었다. 이렇게 차곡차곡 재즈에 대한 기억이 쌓이면서 그와 나는 가까워졌다.


미국에서 태어난 재즈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왔다. 그래서인지 고베에는 재즈 클럽이 많았다. 고베 재즈 페스티벌에 다니면서 작은 클럽의 맛을 알았다. 코앞에서 연주자의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간 공연 중 가장 최고는 스팅의 공연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장이었다. 마치 젊었을 적의 황병기 선생님처럼 그 역시 무대를 장악했고, 처음부터 앙코르곡을 부르는 마지막까지 여유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는 정통 재즈는 아니지만, 포플레이 Fourplay의 내한 공연도 무지무지 다이내믹해서 흥분에 넘쳐 박수 쳤던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들의 <Journey> 앨범을 좋아했었다.

가장 실망했던 것은 휘트니 휴스턴의 공연이었다. 고음도 올라가지 못해서 안쓰러웠던 그녀. 그 후 죽음의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 공연을 다시 떠올렸다.




집 가까운 링컨센터에 재즈를 들으러 가려고 동생과 동생 남편, 셋이서 프로그램을 골랐다. 링컨센터의 재즈 공연장은 셋이다. 본격적으로 공연만 관람하는 큰 로즈극장이 있고, 디지스 클럽 Dizzy’s Club (https://jazz.org/dizzys/)에서는 음식과 술을 먹으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브라 brass, 브라, 브라가 많아야 재밌어. 노래도 있는 공연이.”

그래서 디지스클럽에서 빅밴드가 연주하는 10월 3일 저녁 7시 30분 공연을 골랐다. 테이블 좌석을 골랐더니 일인당 50불. 음식은 별도 주문이었는데, 의외로 비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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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에 슬슬 걸어갔다. 한 시간 반 동안 기다리면서, 바깥 창문으로 해가 지는 콜럼버스 서클을 바라보면서 내가 재즈를 만났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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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지휘자 겸 연주자 스티븐 번스타인 Steven Bernstein, 보컬 캐서린 럿셀 Catherine Russell이 Millennial Territory Orchestra와 함께 노래했다.

블루스의 서곡인 고전적 ‘St. Louis Blues’로 시작하여, R&B 전설 Louis Jordan의 노래 ‘Rusty Dusty Blues’로 넘어갔다.


나는 트럼펫, 클라리넷, 바이올린, 테너 색소폰, 트롬본, 베이스, 드럼 같은 악기를 알아볼 수 있었고, 바이올린과 클라리넷 연주자의 격정적 연주가 기억에 남았다. 보컬은 약간 가는 목소리라 니나 시몬같이 두터운 목소리를 좋아하는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경쾌한 노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금관악기가 많아 신났던 공연이 끝났을 때 바깥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다. 주로 여유 있어 보이는 백인 노인들이 주류이다. 8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무대 정중앙에 앉아 연주를 듣다 고개 숙여 졸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들이 둘 있었다. 그러니 한국 젊은이들을 빼고는 노인들이 주관객이다. 조이스 극장에서 춤 공연을 볼 때도 그랬다. 젊은이들은 더 짜릿한 클럽들이 많으니, 이런 재즈나 춤 공연은 노인들 차지인가 보다.




역시 뭐든 해야 남는다.

기억도 남고, 추억이 된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으면 신나지도 않지만, 맑아지지도 밝아지지도 않는다.

나는 걷고, 여러 가지를 겪으면서 차츰 맑게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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