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춤을 즐기다 보니

뉴욕 한 달 살기 15

by 꼬낀느



여기 와서 삼 주가 지나며 드는 생각이다.

1. 놀기 딱 좋은 나이야.

2. 내가 정말 좋은 환경에서 살았구나


뉴욕 체재 21일 중 하루만 침대와 붙어있고 매일 만 보 가까이 걸었다. 30일 동안 30만 보 걸을 거다. 참 부지런히도 다녔다. 역시 60대는 아프지만 않으면 놀기 딱 좋은 나이이다. 돌보아야 할 어린아이도 없고, 걸을 힘도 있다. 제 힘껏 걷고, 원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뉴욕 놀이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이제 서귀포의 공기와 바람이 말할 수 없이 그리워진다. 갈 날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더 이상 하라 해도 싫다. 남은 일주일 동안, 하고 싶었는데 아직 못 가본 곳, 못 먹어본 것만 해결하고 돌아가련다. 이만하면 2023년 가을 나들이는 충분하다. 10월 하순, 창문을 활짝 열고 잘 수는 없어도 아침에 창 열 때 느끼는 그 싱싱함을 맘껏 누려주리라.


지난주에는 춤 공연, 이번 주에는 재즈 공연에 다녀왔다. 뮤지컬이나 규모가 큰 공연은 예전에 뉴욕에서 보았다. 나는 뉴욕만이 줄 수 있는, 소규모이면서 품질은 뒤지지 않는 공연을 보고 싶었다. 그런 뜻에서 두 공연은 맞춤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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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첼시에 있는 조이스 극장에서 컨템퍼러리 발레단 BalletX(https://www.balletx.org/)의 공연을 보았다.


소품 셋을 공연한다.

신조(Credo), 허니(Honey), 고양(Exalt)


컨템퍼러리 댄스를 처음 보았다.

현대무용의 한 장르인 컨템퍼러리 댄스는 고전 발레의 영향을 받았지만, 전통적 형식을 벗어나 자유로운 표현을 한다. 음악과의 조화를 중시하여 무대에서 직접 라이브로 연주한다. 줄거리나 주제보다 안무가의 주관적 해석에 중점을 둔다. (여기 저기 찾아보고, 내 나름의 설명을 만들었다.)


지금 스타벅스에서 글 쓰고 있는 내 옆에서 대여섯 살 쯤의 흑인 여자애가 매장에 흐르는 ‘upside down’ 곡에 맞추어 자신만의 안무로 춤추고 있다. 저런 자유로운 의지가 아마 컨템퍼러리 뮤직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추억이 있다. 어렸을 적 나의 꿈에는 기다란 한 여자가 나왔다. 마치 모딜리아니의 모델 같은 그녀는 Credo의 의상같은 옷을 입고, 자유롭게 음악을 따라 춤추고 있었다.

‘저 춤을 뭐라고 할까.’

발레도 막춤도 시중의 춤도 아닌 춤을 추는 여자를 꿈꾸었다. 하지만 엄마는 네 자매 중 아래 두 명에겐 무용을 가르쳤지만, 위 두 명에겐 피아노를 가르쳤다.


내가 꿈꾸었던 그런 춤, 클래식을 바탕으로 하지만 정통 발레는 아닌 그런 춤을 그들은 추고 있었다. 손짓 하나 발끝 하나, 여럿이 추고 있지만 모두 칼같이 맞춰 추는 춤이 아닌 조금씩 다른 몸짓. 그들의 댄스가 신선하게 가슴에 들어왔다.


뉴욕 타임스지는 이 공연의 리뷰에서, ‘안무는 특정한 각도, 특정한 시작점을 갖고 있고, 심지어 튀는 느낌도 있었지만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라고 했다. 사랑의 모습을 다룬 18분짜리 ‘허니’는 ‘How deep is the ocean’과 몇 곡의 재즈곡을 피아노와 첼로 연주로 보여 주었다. 의상도 어둡고 하여 졸렸지만, 전후 두 작품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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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o 에서는 의상이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첫 작품 크레도에서 옷과 몸짓과 손짓, 그들의 단단하게 드러난 근육들을 보았다. 하이든의 스트링 쿼텟이 무대 왼쪽 구석에서 연주되고 있었다. 마지막 ‘Exalt(나는 이 단어를 느낌의 고양高揚으로 푼다.)’는 전자음악을 써서 마치 클럽에 온 듯이 모두 흥겹게 몸을 흔들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 작품을 ‘기술적으로 불안정하고 엉뚱’하다고 혹평했지만, 그래도 관객은 흥겹게 고양되었다.


공연을 나오면서 나는 심각하게 동생에게 말했다.

“나, 다음 생에는 아무래도 댄서가 되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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