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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탄 Sep 17. 2019

언젠가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오늘의 행인1: 트로트 트는 할아버지



방송 촬영으로 만 '홍 대장' 할머니는, 동네를 주름잡고 다니는 아주 활발한 캐릭터였다. 낮에는 사총사 할머니들과 놀러 다니거나 밭일을 하거나 글공부를 했고, 밤에는 큰딸이 사줬다는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주말에는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이 번갈아가며 제 새끼들을 데리고 놀러 와 온 집안이 떠들썩했고, 안방 벽 자식과 손주들 사진으로 빈틈없이 시끌시끌했다.

촬영 마지막날 밤, 피디가 물었다.

할머니는 심심할 틈이 없으시겠어요.”
“왜 안 그래, 심심해.”
"심심하세요?”
“그럼. 영감이 없잖아. 심심하지…”

도저히 심심할 겨를이라곤 없어 보이던 얼굴이 순식간에 서글퍼졌다. 할머니는 붉어진 눈시울을 달래느라 노래 책만 들여다보았고, 피디도 감히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망설이며 그 얼굴을 조용히 찍고 있었다.


그때 처음 생각해 봤던 것 같다. 평생 함께 살 맞대던 사람이 없어지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다는 것. 그 공허함 깊이는 어디까지일까.



그래서 저녁마다 거리에 나와 트로트를 트는 그 할아버지를, 나는 마음 편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매일 저녁 빠짐없이, 적어도 내가 그 길을 지나치는 저녁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거리에 나왔다.

그의 옆자리엔 항상 오래된 구식 라디오가 늙은 고양이처럼 얌전히 앞발을 포갠 채 앉아 있었고, 거기선 유명하지 않은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볼륨이었는데, 정작 할아버지는 그걸 듣지도 않는 것 같았던 게 따라서 흥얼거리는 것도 아니었고 리듬을 타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고요했다.
그의 등은 거리를 향해 동그랗게 굽어 있었고 눈은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퇴근하는 사람을 봤다가, 산책하는 사람을 봤다가, 바로 옆 과일가게에 복숭아를 사러 나온 사람을 천천히 봤다가. 호기심도 아니었고 관심도 아니었고 그저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움직이는 것에 시선을 두기로 한 것 같은 적막하고 적적한 얼굴.

사람들은 그의 시선을 불편해했고 시끄러운 트로트 소리를 불편해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비친 할아버지의 얼굴이 ‘심심하지…’하던 할머니의 얼굴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홀로 남겨졌을 때의 공허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글쎄 그걸 공허라는 간단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건, 저녁밥을 먹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두 번 다시 없다는 것. 때로는 거대한 담론이었다가 때로는 아주 사소한 수다거리였다가 하는, 사실 주제는 뭐든 상관없고 함께 나누는 것 자체가 숨통인 대화. 그게 없다는 뜻이다.

또 나에게 그건, 왠지 일없이 울적한 기분이 들 때 손바닥을 슥슥 문지르는 것만으로 위로를 주는 뜨듯한 등짝이 없어진다는 뜻. 또 비슷한 이야긴데, 나쁜 꿈을 꾸고 헤어나지 못할 때 괜찮다 해줄, 눈곱 낀 멀건 얼굴이 없어진다는 뜻. 


트로트를 트는,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를 위로할 말을, 나는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 다만 밤마다 길에 나와 트로트를 틀고 움직이는 무언가를 멍하니 보는 것이 그의 헛헛함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조용한 밤 산책길에 무례하게 울려 퍼지는 트로트의 소음 정도 기꺼이 참아내기로 해본다.






<101개의 얼굴에 대한 보고서>

매일 옷깃 스쳐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사소한 기록입니다.

낯선 얼굴들이 건네는 안 낯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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