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입구 편의점은 12시면 문을 닫는다. 마무리 청소를 하고 가는 건지 희미한 불빛이 한동안 새어 나오다가, 그마저 꺼지는 게 12시 반쯤. 그러면 이어서 고깃집도, 횟집도 문을 닫는다.
옆집 대학생은 1시에 집을 나선다. 처음엔 들어오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잘 들어보니 나가는 거였다. 새벽 알바를 가는 걸지도 모른다. 그가 나가고 나면 개가 외로이 운다. 괜찮아, 괜찮아. 늘 그랬듯이 오전엔 돌아올 거야. 들리지도 않을 텐데 개를 조금 달래본다. 한동안 나는 옆집 문소리를 알람 삼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누워있으면 더 많은 소리가 들린다. 늘 늦게 퇴근하는 어느 가장의 차가 들어오는 소리. 집 앞까지 와서 차를 세우고, 주차금지 표지판을 들어서 치우고, 다시 차를 타서 문을 닫고,알맞게 주차하는 소리.
안 들리는 날도 있지만 노인의 기침 소리와, 검은 고양이(우리 골목 고양이들은 다 검은색이다)가 낮게 야옹거리는 소리도 새벽 공기를 두드리곤 한다.
그리고 이쯤까지도 잠에 못 들었다면, 나는 창문을 연다. 누군가 나처럼 새벽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면, 이 시간에 내 드림캐처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잠시 후 2시 10분쯤. 집 건너편 도로로 화물트럭 한 대가 들어온다.
우리 집은 다세대주택 단지의 도롯가에 있다. 말이 도롯가지, 도로와 집 사이에 자전거 도로와 넓은 보도가 있고, 폭 3m 정도의 화단도 있다. 화단에는 울창한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어서 창문을 열고 있으면 숲속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4차선으로 나 있는 도로엔 차도 별로 안 다니는데, 그래서 그런지 늘 화물트럭 몇 대가 여기다 주차를 한다.
2시 조금 너머의 그 화물트럭 아저씨는 원래 차를 대고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가끔 담배 한 대를 피울 때도 있었는데, 난 그 냄새가 싫어서 창문을 닫았다가 몇분 후 다시 열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패턴이 좀 달라졌다. 차를 대고, 담배를 피우고, 다시 차로 돌아가서 노래를 튼다.
처음엔 시끄러워서 담배처럼 창문을 닫았는데,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까. 아니, 무슨 바람이건 집에 가서 들으면 되지 왜 시끄럽게 주택가 앞에서 저러고 듣고 있는 걸까. 그래서, 어떤 음악을 듣는 걸까.
창문을 안 닫고 노래를 들어보기 시작했다. 그의 선곡은 참 극단적이었다. 어느 날은 어두운 재즈였다가 어느 날은 아이돌 음악이었다가 했다. 취향이 다채롭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만큼 심경이 복잡한 건가. 재즈도 놀라웠지만 아이돌 음악도 놀라웠다. 생각보다 어린가... 하긴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아저씨’라 부르는 것도 내 편견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아저씨는 아이돌 음악을 잘 안 들을 거라는 게 편견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안 오던 잠이 솔솔 오기도 했다. 그래서 끝까지 다 못 들은 적도 있지만, 보통 15분 정도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음악이 멈추면 차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투벅, 투벅, 걷는 소리가 들린다. 이쪽 주택단지 라인인지, 건너 아파트 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느 집인가로 발걸음 소리도 사라지고 나면, 이젠 정말 고요하다.
그냥 보내기 아쉬운 하루가 있다. 후회되는 일이 있거나 반대로 오늘의 내가 너무 기특해 죽겠거나. 할 일이 남았거나 내일이 두렵거나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그립거나. 나는 그럴 때 창문을 열고, 가만히 새벽을 본다.
요즘은 주로 반성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든다고 생각한 지는 이미 대여섯 해나 지났는데, 나는 여전히 같은 반성을 하고 있다. 나이가 잘 든다는 건 참 어렵다.
화물트럭 아저씨가 새벽마다 음악을 트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커다란 트럭에 작은 몸을 얹고 쉴 새 없이 움직여 왔을 하루. 그 끝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