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의 버스 정류장. 나는 매우 지쳐있었다. 방송 일을 하다 보면 그런 날이 하루 이틀 있는 게 아니긴 하지만, 전날부터 밤을 새워 꼬박 35시간째 깨어있는 거였다. 얼른 가서 잠부터 자자, 하다가도 편집이 아쉬웠던 부분이 떠올라 머릿속을 헤집어놨다. 휴대폰을 꺼내 생각난 걸 끄적이다가 고개를 들어 버스가 오는지 봤다가, 또 끄적이다가 고개를 들었다가 하던 중이었다.그 모든 걱정과 생각을 일순간 얼어붙게 만드는 얼굴을 보았다. 가슴이 쿵, 하고 아주 깊이 내려앉았다. 엄마였다. 아니 엄마를 닮은 아주머니였다.
엄마는 항상 내 허벅지를 매만지며 ‘오동통한 내 너구리~’하고 노래를 불렀다. 한창 외모에 예민한 열다섯, 열여섯 쯤엔 그 노래가 좀 거슬렸다.
“내가 그래 오동통하나?” “아니.” “근데 왜 자꾸 오동통하다 하는데?” “오동통해서 오동통하다 하는 게 아이다, 바보야.”
그 오동통한 내 너구리를, 엄마는 딸이 다 큰 어른이 되고 난 후까지 참 지리하게도 불렀다. 그리고 스물여덟의 여름, 나는 영원히 그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엄마는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 이문세를 좋아했고, 이선희를 좋아했다. 해바라기를 좋아했고, 포크 음악을 즐겨 들었다. 설거지를 할 때면 수잔 잭슨의 에버 그린이나 빌리 조엘의 어니스티 같은 걸 흥얼거렸고, 나는 부른 배를 두들기며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노래를 들었다.
엄마의 노래는 슬펐다. 슬프고 쓸쓸했다.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두 분은 따로 산 세월이 더 길었다.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 엄마는 나에게 아빠의 소식을 물었다가 동생의 소식을 물었다가 했다. 잘 지낸다고 대답하기가 싫었다. 내가 보기에 엄마는 쓸쓸했고, 잘 못 지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밥을 먹었을 때, 엄마는 반찬으로 부추김치를 내줬다. 사실 그건 두 번째 점심상이었다. 금방 먹고 돌아섰으면서, 부추김치를 빠뜨렸다고 다시 상을 차리는 거였다. 새우젓 넣고 부추김치 만든 게 맛있다고, 무도 갈아 넣어서 참 시원하다고 한참을 자랑했다.
배부르다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소용없었고, 할 수 없이 누룽지와 부추김치로 두 번째 점심을 먹었다. 배는 불렀지만 엄마 말대로 부추김치는 아주 시원하고 맛있었다. 한 그릇을 싹싹 비우자 ‘봐라! 맛있제!!’하고 세상 다시없는 신나는 목소리를 냈고, 나는 내 배통이 큰 것이 새삼 뿌듯했다.
“엄마는 소띠고 니는 토끼띠라서 엄마 옆에 있어야 먹을 게 많디. 딱 붙어 있어라.”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에게 밥상 한번 차려준 적이 없다. 나는 늘 소에게 받아만 먹는 토끼였다. 꿈에 엄마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 꿈에서 밥상 한 번만 차려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야속하게도 나는 꿈에서도 늘 철없이 받아먹기만 하는 딸이었다.
‘사과 먹을래? 배 있는데, 배 깎아 줄까? 우리 딸내미 좋아하는 포도 사놨지!’ 사과를 보면, 배를 보면, 포도를 보면, 딸 먹일 생각에 신난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오동통해서 오동통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고 했을 때, 그럼 왜 그 노래를 자꾸 부르냐고 물었었다. 엄마가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는 아쉽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때는 아니지만 진짜 오동통했던 아이 때의 나. 엄마 눈엔 열여섯의 나도, 스물여덟의 나도, 여전히 오동통한 젖먹이 같았던 게 아닐까.
엄마를 닮은 아주머니는 꼭 엄마처럼 웃으면서 내 앞을 지나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오동통한 내 너구리가, 수잔 잭슨의 에버그린이, 허벅지를 문질렀다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