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현관에는 중국집이나 피자집 전단지보다 마트 전단지가 많이 붙는다. 몰랐는데 근처에 마트가 많은가 보다. 떼도 떼도 자꾸 붙으니까 언젠가부터는 가끔 전단지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번에는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자주 이용하는 마트의 전단지다. 내가 좋아하는 포도와 복숭아가 주말을 맞아 할인된단다. 근데 박스채로 팔아서 2인 가구인 우리집에서 살만한 건 못된다.
소고기 국거리는 키로당 만 오백 원. 오오... 고개를 전단지 쪽으로 좀 더 들이밀어 본다. 2kg 정도 사서 냉동실에 쟁여놔 볼까.즐겨 먹는 소고기 뭇국을 해먹어도 되겠고 저번에 처음 만들었는데 성공했던 육개장을 끓여 먹어도 되겠다.
사실 이렇게 생각만 하고 정작은 사러 나가는 게 귀찮아서 구매까지 이어진 적은 별로 없지만, 어쨌든 쇼핑하는 기분이 들어서나는 현관에 마트 전단지가 붙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한창 아이쇼핑을 즐기고 있는데, 문 밖에서 웬 아저씨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가 보았다.
“이제 한 달? 얼마 안 남았지. 근데 막상 낳으려니까 앞이 좀 캄캄하기도 하고 그래.”
아이 이야기인 듯했다. 아내의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나보았다. 이 건물엔 임신한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 저 아저씨는 외부인일 것이다. 택배 기사인가. 아니다. 테이프 떼는 소리가 났다. 지금 보는 전단지 같은 걸 붙이는 분이시구나. 발걸음은 계단을 올라 위층으로 갔다가 곧 다시 내려왔다. 이제 출입문을 나서야 할 차례인데, 그의 말소리가 문 앞에 계속 머문다.
“와이프? 지금 못 쉬고 있지.
...낳고 나서가 더 문제야. 맡길 데도 없고 일은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 나도 쉬라고 하긴했는데, 와이프가 계속 일은 하겠다고.
... 그치. 내가 벌이가 시원찮아서...”
흐려지는 말소리. 그다음은 한숨. 가장의 무게가 두꺼운 철문을 넘어 우리집 거실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왠지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애꿎은 전단지만 계속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