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쯤은 되어 보이는데, 자전거를 늦게 배우는 모양이었다. 핸들을 야무지게 잡은 소년의 손에서 긴장이 느껴졌다. 이리저리 조금씩 휘청거리긴 했지만 아빠의 자전거를 제법 잘 따라가고 있었다. 앞서가는 아빠는 앞보다 뒤를 더 많이 봤다. 저러다 아들보다 아빠가 먼저 어디 부딪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때 아들의 자전거가 크게 휘청이더니 끼익하고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러니까 천천히 오라고 했잖아.”
놀란 아빠와 달리, 아들은 그마저도 신난 것 같았다. 위험할 뻔했으나 안 넘어지게 재빨리 중심을 잡은 스스로가 대견한 표정이었다.
아빠는 이제 아예 자전거에서 내려 아들이 타는 자전거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녔다. 사람 없는 이른 아침의 트랙, 넘어져도 상처나 날까 싶은 안장 낮은 자전거, 혹여 상처 좀 난다 해도 끄떡없을 듯한 씩씩한 아들. 위험 요소는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아빠는 넘어지면 받아줄 듯 손을 뻗은 채 쫑쫑거리며 아들 뒤를 밟았다. 몇 년 전의 우리 아빠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간 집 마당에 낡은 오토바이가 서 있었다. 누가 오토바이를 버린다기에, 탈 만한 지 어쩐지 테스트를 해보려고 가지고 왔단다. 오토바이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어서 훌쩍 올라탔다. 자전거는 잘 타니까 그것처럼 중심 잡고 타면 되겠지 싶었다. 아빠한테 조작법을 배우고, 핸들을 당기니 부릉! 소리를 내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더 천천히 당겼어야 했는데 너무 빨랐다. 그렇다고 내가 다치거나 넘어질 뻔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빠가 적잖이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그래 막 당기면 안 된다!! 천천히 해야지!”
우리집 앞마당에서, 시속이라고 재기도 힘든 속도로 기어가고 있는데도 내가 넘어져서 다칠까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이 새삼스러워서 웃었다. 걱정 말라 안심시킨 후에 이번엔 아주 천천히 핸들을 당겨 마당을 가로질러 달렸, 아니 기었다.
“잘 타재?”
뿌듯해서 뒤를 돌아보니 아빠의 손이 엉거주춤 내 뒤를 받치고 있었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 엉거주춤한 손바닥에 한가득 담겨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집에 눈이라도 펑펑 내렸단 소식을 들으면 근방의 내리막길이 생각나서 온종일 마음이 졸여진다. 괜찮다는 데도 그쪽 내리막길로 걸어 다니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한다. 예년에 없던 폭설이 왔던 때는 읍사무소에 전화해서 내리막 도로에 눈은 언제 치워주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감기기라도 느껴지면 며칠은 그 걱정이다. 혼자 사는 아빠가 아픈 와중에 외로움까지 느끼진 않을까 전전긍긍 전화를 해대는 거다.
얼마 전 남편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도 그랬다. 일출을 보고 싶어 성산일출봉을 갔는데, 임신 후기라 정상에 오르긴 무리였던 나 때문에 입구 쪽 편평한 언덕까지만 걸었다. 그게 아쉬웠는지 남편이 다음날엔 혼자 정상까지 가보겠다고 했다. 자고 있을 테니 잘 다녀오라며 보냈는데, 웬걸. 바람이 거칠게 불어 숙소의 유리창이 버거운 듯 흔들렸다.
앞도 잘 안 보이는 새벽인데, 이 거센 바람에 중심 잃고 몸이 휘청거리진 않을까. 그러다 발 잘못 디뎌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나는 90kg에 육박하는 남편의 생사가 걱정되어 그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게 그렇다.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걱정할 거리가 아닌데도 혹시나 소중한 존재가 다치진 않을까, 상처 입진 않을까 마음을 졸이고 오버하는 겁쟁이 바보가 된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중학생 아들이 다칠까 봐 초딩도 시시해할 것 같은 작은 자전거에 태우고는, 그마저도 넘어질까 뒤꽁무니를 바짝 따르는 저 아빠처럼.
그리고 혼자서 심각한 그 어리석은 걱정의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문득 깨달아진다. 걱정했던 그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걱정되는 그가 있어 행복하다, 라는 걸.
엊그젠가, 플러그가 약간 구부러진 바람에 어댑터가 잘 안 들어가 버벅거리고 있는데, 그렇게 막 끼우면 감전된다며 나를 앉혀놓고 어댑터 꽂는 걸 몇 번이나 보여주고 연습시키던 남편이 생각난다. 이게 뭐라고 앉혀놓고 진지하게 연습까지 시키는 그 장면이 되게 웃겼다. 그리고웃긴 만큼 또, 제법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