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술탄 Oct 15. 2019

마주 닿은 살은 끝내 안전하다

오늘의 행인1 : 작은 우산 하나 같이 쓰고 가던 부부



건물 입구에서 한 여자가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시울이 벌겠고, 비 오는데 우산 없는지 양손 비어 있었다.

곧바로 남편이 우산을 들고 나타나지 않았으면 내 우산을 건네고 싶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용기가 없어 끝끝내 건네진 못했겠지만, 그럴 용기도 없는 내가 한심해질 만큼 여자는 힘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가 서 있던 곳은 산부인과 건물이었다. 여느 병원 앞이면 우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산부인과는 좀 다르다. 생명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곳. 드나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대에 차 있고, 벅찬 감격으로 상기되어 있는 곳. 그러니 이곳에서 흘리는 눈물은 상상할 수 없는 쓰라림이 있을 것이라, 조심히 예상해 보았다.


똑같이 눈시울이 벌건 남편은, 병원 화장실에서 가지고 나온 듯한 휴지를 아내에게 건넸다. 아내는 그걸로 남아있는 조금의 눈물을 눌러내고 호흡을 정리하려는 듯 숨 하나를 뱉어냈다. 아주 깊고 긴 숨이었다.


“집에 가자.”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편이 우산 하나를 천천히 펼쳤다. 펼쳐서 머리 위로 들고 아내의 어깨를 안은 채 빗속을 걸어갔다.


내가 혼자 든 우산보다 작은 그 부부의 우산은, 두 사람의 몸을 다 감싸주지 못했다. 남편이 아내 쪽으로 우산을 더 기울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좁았다. 혼자 쓰기에도 약간 작아 보이는 크기. 빗줄기는 두 사람의 어깨를 조금씩 적셨고, 더 흘러내려 팔꿈치와 옆구리와 다리도 조금씩 적셨다.  가혹한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곧, 쏟아지는 이 비에도 절대로 젖지 않는 면을 보았다. 커다란 우산을 혼자 쓰고 가는 나도 바람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골고루 조금씩은 젖었는데, 저 작은 우산을 쓴 그들에겐 끝까지 젖지 않는 면이 있었다. 그건, 두 사람이 기대다시피 마주 닿아 있는 살. 조금씩 적셔지는 바깥쪽과 달리, 마주 잡고 가는 그들의 안쪽 면은 끝내 젖지 않는 거였다.


부부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인 그 슬픔을 잘 견뎌내길 바라던 응원은, 그래서 잘 견뎌내겠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기어코 젖지 않고 지켜지는 저 마주 닿은 살처럼, 마주 닿은 마음 한 편씩은 반드시 안전할 테니까. 남편의 왼쪽이 아내의 오른쪽을, 아내의 오른쪽이 남편의 왼쪽을, 안전하게 부둥켜안아줄 테니까.

함께라는 건 이렇게도 다행인 일이다.






<101개의 얼굴에 대한 보고서>

매일 옷깃 스쳐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사소한 기록입니다.

낯선 얼굴들이 건네는 안 낯선 이야기.



이전 08화 꿈꾸는 닭볶음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