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쓱해하며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옆 테이블에서 소주를 기울이던 단골 아재들이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어 갑론을박을 벌인다.
아재1(큰 덩치, 회색 등산조끼) : "에이, 아주마이가 뭘 오래 했어." 아재2(마름, 역시 회색 등산조끼) : "왜 그래도 10년 넘었잖아요. 꽤 된 거 아닌가." 아재3(키 크고 마름, 남색 등산조끼) : "이 동네에서 그 정도면 이제 막 걸음마 뗀 거지!"
처음엔 저 등산조끼 무리 허세 쩐다 생각했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건너편에는 30년, 그 옆에는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줄줄이 보인다.
사실 원래 목적지는 블로그에서 찾은 닭볶음탕 맛집이었다. 방송으로도몇번 소개됐는데, 마늘이 많이 들어가서 국물이 알싸하고 칼칼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했다.소문대로 대기줄이 길었다. 우리도 대기표를 뽑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어라? 바로 옆에도 닭볶음탕 집이 있었다.이맛집과 달리 손님 하나 없었고, 가게 유리문 안으로는 손님 없이도 혼자 분주한 주인아주머니가보였다.
기다리는 것도 싫고 시끄러운 것도 싫고 맛이 뭐 그리 크게 차이 나겠는가 싶고, 무엇보다 여덟 평 남짓한 가게를 혼자 분주히 지키는 아주머니의 손님이 되고 싶었다.
“이제 먹어도 돼요. 떡부터 잡숴.”
탕이 바글바글 끓는데 먹는 타이밍도 모르고보고만 있는 젊은 손님이 신경 쓰였는지, 아주머니가 손수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주신다. 황송해하며 국물부터 한 입 넣는데, 와. 술도 안 먹었는데 해장되는 기분이다. 빨간 국물에서는 흔히 느끼기 힘든 시원함. 닭은 또 어떻고! 덩어리가 큰데도 비린 거 하나 없이 깔끔한 맛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아직도 그 '맛집'앞에 줄서서 번호표만 내려다보고 있는 저들을 보며,왠지 모를 승리감에젖어들었다.
맛이 괜찮냐는 물음에 너~~~무 맛있다고 좀 오버해서 대답했는데, 아주머니의 얼굴이 아이처럼 환해졌다. 닭을 찍어먹는 맛 간장은 아들이 직접 달였다며 자랑을 하셨다. 아들은 지금 일본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단다. 몇 년 후엔 아들과 함께 이 장사를 계속 이어가는 게 꿈이라고 하셨다.
아아. 꿈.
손님 하나 없이도,아주머니는혼자 분주히 꿈을 지키고 있었던 거다.
닭볶음탕을 반쯤 먹었을 때, 예의 그 아재들이 들어왔다. 보아하니 이 골목 어디선가 가게를 하는 분들 같았다.
아재1 : "가게 문은 닫고 왔어?" 아재3 : "아~ 안 닫았어. 뭐 가게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아재들의 유쾌한(?) 개그가 시작되니 고요하던 가게가 적당히 소란해졌고, 덕분에 우리는 좀 더 편하게 먹는 것에 집중했다. 아주머니는 계속해서부지런히 커다란 솥을젓고,맛을 보고, 냉장고를 정리하시다가, 다시 또 솥을 저었다. 가끔 아재들 개그를 비웃어주시면서. 또 가끔, 젊은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있나 살피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