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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탄 Oct 16. 2019

잘 먹겠습니다 라는 말의 무게

오늘의 행인1 : 아들 먹이려고 메기 손질하던 할머니



아무래도 어색해서 말이나 한번 걸어봤다.

“이렇게 보니까 많이 낯서네. 그치?

근데 내뱉고 보니 이건 아닌 것 같다. 죽은 닭한테 말을 걸다니 제정신인가.

새벽 배송으로 주문한 생닭의 살은 생각보다도 더 허여멀건 하고 부드러웠다. 누가 ‘닭살'을 오돌토돌한 살갗으로 정의했나. 음모거나 오해다. 내가 만져본 닭살은 안쓰럽도록 부드러워 손을 대기도 미안할 정도였다.

휴대폰에 띄워놓은 ‘닭곰탕 레시피'의 첫 단계는 씻은 닭의 껍질을 가위를 이용해 잘라서 벗기는 거다. 손대기도 미안한데 가위를 대라니. 정말 난감했다.

목 부근에 가위 날을 집어넣고 등까지 쭉 자르면 쉽다고 그랬다. 친절한 블로거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요리 꼴통인 저도 닭곰탕을 다 하네요. 근데 이건 좀 어려워서요.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요... 요리할 때 가상의 선생님을 모시고 말을 거는 버릇이 좀 생겨서, 뭐 이런 식으로 중얼거리며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목이라니. 세상에. 여기에 머리가 달려있었을 생각을 하니 앞이 아찔해 가위를 놓고 싶었으나,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블로거 선생님은 무려 두 시간을 약한 불에 푹 고았다고 했으니 나도 그대로 따르려면 이 애도를 얼른 끝내고 해체 쇼에 들어가야 했다. 닭곰탕은 해외 출장을 마치고 온갖 피로를 다 안고 돌아올 남편의 몸보신 용이었고, 잠시 후 저녁이면 그가 집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닭에겐 미안했지만 가위를 들고 껍질을 가르기 시작했.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언젠가 나에게도 이런 상황이 다가오는 날이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방송 취재 때문에 만난 할머니를 보면서였다.
할머니는 이제 막 60 중반에 들어선 큰아들 해 먹일 보양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음식 해준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하게 웃으면서. 그 시절 어려운 사정이야 워낙 많이 접해서 ‘옛날에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고생 스토리가 지겨운 사람들에겐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할머니에겐 그게 사무치는 한으로 남은 것 같았다. 

자식들 한창 클 때가 제일 힘들었을 시기라, 보통 먹이는 게 하루  끼. 그것도 반찬 없이 풀 죽만  때가 많았다고 하는 할머니의 얼굴 미안함이 가득했다. TV보니 요즘 엄마들은 참 잘 먹이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아이들이 그렇게 키가 크는 건가 보오, 하고 숨겨진 비법이라도 알아낸 듯 소곤소곤 목소리를 줄여 말했다.

경찰 되고 싶다던 큰아들은 기특하게도 꿈을 이뤄 서울에 올라갔단다. 바빠서 명절에도 집에 내려오지 못하는 날이 많은데, 얼마 전엔 일하다 허리를 삐끗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가만있을 수가 없어 기운 차릴 보양식을 만들어 보는 거라고.


할머니의 보양식은 메기 매운탕이었다. 마침 동네 낚시하는 사람이 실한 걸 낚았더라며 굽은 허리로 신나게 메기를 꺼내와 손질을 했다.

그런데 얼른 끓여 보내야지, 손길을 재촉하던 할머니가 잠시 머뭇거리던 순간이 있었다. 반으로 가른 메기의 배 에서 알이 가득 나왔을 때였다.

“아이고 어쩌나. 내 새끼 먹이려고 남의 새끼 다 죽이네.”
“네?”
“이놈이 새끼를 가득 뱄다고. 살아보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 하필 니가 잡혀서... 고맙게 잘 먹을꾸마.

뱃속에서 흘러나온 알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할머니는 한동안 칼등만 만지작거렸다.



껍질 벗긴 닭은 끓는 물에 데쳐서 기름기를 한 번 뺀 뒤 다시 채소 듬뿍 넣은 물에  끓여야 한댔다. 30분 뒤 1차로 건져낸 닭은 살만 발라내서 고춧가루, 마늘, 청양고추로 양념해 두고, 뼈는 더 넣고 한 시간 반을 더 끓였다.

뼈가 점점 우러나면서 국물은 거짓말처럼 하얗게 변했다. 우와 이게 곰탕이구나. 뽀얀 국물에 아까 양념해 뒀던 살코기를 넣어 먹으면, 구수하고도 얼큰한 이북식 닭곰탕이 된다.


쳐 돌아온 남편은 닭곰탕을 후루룩후루룩 맛있게 먹었다. 역시 집이 최고라고, 보양이 되는 것 같다고, 말도 하고 밥 말은 국물도 먹느라 입이 바빴다. 할머니도 아들에게 이렇게 먹이고 싶어서 미안한 마음 감내하며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거겠지. 



이따금 음식을 하 많은 걸 배운다. 기다리는 법, 손질의 수고로움과 육수의 중요성, 온도에 따른 맛의 변화 등등. 완성된 걸 받아먹기만 하면 몰랐을 것들 조금씩 알아다. 그날은 닭 껍질을 직접 벗기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을 마음 하나를, 메기 배를 가르다 말고 괜한 칼등만 만지며 잘 먹을꾸마, 하던 할머니의 마음 하나를 알았다.


고마운 마음으로, 최대한 아껴서 먹고 먹여야지.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먹어야지. 그리고 ' 먹겠습니다'에 이 마음을 한껏 담아봐야지. 흔한 그 말이 갑자기 엄청 무거워다.






<101개의 얼굴에 대한 보고서>

매일 옷깃 스쳐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사소한 기록입니다.

낯선 얼굴들이 건네는 안 낯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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