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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양 Sep 11. 2024

그녀는 정말 내 아이를 사랑할까?





평일 낮, 비좁은 우리집 거실에는 부지런히 기어다니는 9개월 된 아기와 부산스러운 세 명의 여자로 북적거린다.



내니(유모)인 N은 졸음 때문에 투정이 심해진 럭키를 달래가며 기저귀를 갈고, 헬퍼(가사 도우미)인 딴딴은 베란다에 널어둔 밀대 걸레를 들고 그 곁을 지나간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럭키 이유식으로 쓸 당근을 손질하고 찜기에 올린 뒤 배를 깎는다. 현지 배는 밍밍하고 맛이 없어 ‘신고배’라는 한글띠가 둘러진 한국산 배를 주로 구입하는데, 이 배 역시 맛은 복불복이다. 아기 간식으로 갈아두고 나머지는 어른들의 간식으로 접시에 담는다.



배를 가지고 거실에 나와 시원할 때 먹자고 N과 딴딴을 부른다.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딴딴은 한 조각 겨우 먹을까 말까 하고 포크를 내려놓은 뒤 다시 일을 하러 간다.



N이 배를 먹는 동안에는 내가 럭키를 돌본다. 원기왕성한 아기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아기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은 거실 한 가운데서도 티셔츠는 땀에 절여 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호기심 넘치는 아기



N이 간식이나 커피를 마실 때 마음 편하게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 반, 제발 빨리 먹고 아기를 받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절반이다.   



사십이 넘은 저질체력의 늙은 엄마는 N과 딴딴이 있어도 가끔은 육아가 버겁다.



가족과 친구 하나 없는, 그것도 인프라가 최악인 동남아 최빈국 중 한 곳에서 아기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가족 구성원 누구든 아플 때,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한계에 부딪치는 일이 종종 있다.   



남편이 아플 땐 남편 케어와 더불어 저녁부터 아침까지 오롯이 혼자 육아와 살림을 맡아야 하는 체력적인 부담과 더불어 타국에서 내가 우리 가족을 (비록 잠깐이지만) 온전히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과 두려움에 마음이 어지럽다.


  

아기가 아플 땐 엄마만 찾는 껌딱지가 되어 안아달라고 하는 통에 가뜩이나 시원찮은 어깨, 팔, 무릎 관절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다. 큰 병원으로 달려가곤 하지만, 한국의 작은 소아과보다도 못한 의료 장비에 한숨만 나온다. 괜히 엄마 아빠 때문에 아기가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슬프다.



내가 아플 땐. 사실 마음 놓고 아프지도 못한다. 한국처럼 이유식을 주문해서 먹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아픈 몸을 일으켜 늘 아기 먹을거리를 만들거나 챙겨야 한다.



지난 5월에는 온 가족이 릴레이 달리기 하듯 아팠다. 남편 감기 2~3일 후 럭키 감기 3~4일, 럭키가 좀 차도를 보인 후 내 감기 3~4일, 내가 좀 살만해질 나흘차쯤에 남편 장 바이러스로 응급실행….



심약하고 꾀많고 게을러서 늘 엄마와 두 언니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사십 평생 살았던 천생 막내인 나는, 한국으로 가고 싶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럴 때 한줄기 빛같은 존재가 N이었다.



파트타임 헬퍼인 딴딴을 고용하기 전 N은 오전에는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는 럭키를 돌봤다. 몸조리를 채 끝내지 못하고 양곤에 왔던 저질체력 노산 엄마의 육아는 내니가 있어도 고통스럽고 피곤했다. 육아는 서툴렀고, 밤수유를 하던 때라 절대적인 수면 시간도 부족했다. 호르몬은 날뛰어 매사 예민하고 서글펐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 한 명 없는 이 낯선 나라에서 N마저 없었다면 상황은 더욱 최악이었을 것이다.




N은 나이는 나보다 열 살정도 어리지만 십 대 후반에 결혼해 스물에 낳은 아이가 벌써 그녀보다 훌쩍 키가 큰 소년이었다. 내니와 헬퍼 경력이 오래 되었고, 싱가포르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었다. 직전에는 무려 쌍둥이 남자 아이들을 돌보았고 그 고용주에게서 받은 추천서도 가지고 있었다. 독학으로 배운 영어라 발음이 매우 개성있긴 하지만 소통이 가능했고, 눈치도 빠르고 영리한 편이라 한 번 알려준 일은 까먹는 일이 없었다. 육아와 살림에 한해서는 그녀는 나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까마득한 선배요, 프로였다.



단점이나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나. 처음 들인 고용인치곤 운이 좋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빈틈 많고 살림에 서툰 나를 대신해 집을 정리하고, 미얀마어를 하지 못하는 나 대신 배달원이나 콘도 관리인들과 소통을 해주고, 내가 이유식이나 음식을 할 때 아이를 돌봤다. (N과 업무를 협의할 때 요리를 제외했다)



N과 딴딴과 함께 호텔 애프터눈티. 두 사람 덕분에 여유롭게 필사중.



남편이 팀빌딩이나 출장을 갔을 땐 우리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우리 부부는 N이 우리 집에서 오래 일해주길 바랐기 때문에, 최대한 그녀를 배려해주려고 노력했다.



이사를 했을 때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한다는 말에 4개월 차인 그녀의 월급을 올려주었고, 띤잔 명절에는 넉넉하게 보너스를 주었다. 먼거리에서 출퇴근하는지라 한 달에 절반은 지각했지만 늘 퇴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보내주었다. 음식을 배달시킬 때는 종종 그녀의 몫으로 조금 더 주문해 퇴근길에 들려보냈고, 함께 외식을 할 때는 원하는 음식을 골라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남편이 아이를 돌봤다. 한국에 다녀올 때 N의 아들 선물까지 챙겼고, 종종 과자를 사서 전해주도록 했다. 생활이 어렵다는 그녀의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아기 기저귀를 사서 보내주거나, 럭키의 옷과 과자들을 나누어 주었다.



그녀 역시 우리 집에서 일하는 것을 만족해했다. 가끔 그녀는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에요. 나는 맴(나)도 좋고 럭키를 사랑해요’ 라며 돈을 더 준다는 곳에서 오퍼가 왔지만 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갈 마음이 없다는 뜻을 전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더 잘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주는 월급이 적은 편인가 소심한 걱정이 되기도 해서 한인 커뮤니티에 문의글을 올려보기도 했었는데 느낌상, 양곤이 아닌 미얀마의 타지역에 사는 분이거나 오랫동안 여기서 거주했던 사람들은 평균 이상 많은 월급+보너스라고 평했고 현재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양곤의 물가를 민감하게 체감하거나 최근에 인력을 고용한 적 있는 분들은 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월급이다)



N은 정말 럭키를 예뻐했다. 럭키를 어르거나 놀아줄 때 그녀의 목소리는 활기찼고 명랑했다. 외출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럭키를 보고 귀엽다고 말할 때마다 그녀는 자랑스러워했고 기뻐했다.



럭키가 그녀의 옷에 토하거나 침을 흘려도 싫어하는 기색 한 번 보이지 않았고, 아이의 잦은 대소변 처리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잠투정 심한 아기를 안은 채 거실을 서성이며 한 없이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미얀마라는 타국에서 우리 럭키에게 또 한 명의 보호자가 있는 것 같아 나는 든든하고 안심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녀의 다른 얼굴을 보게 되었다.



N이 아기를 돌볼 때도 보통은 거실이나 주방에 있는 편이지만, 가끔 너무 피곤할 때는 방에 들어가 쉬거나 누워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날도 침대에 누워 있다가 거실 쪽이 너무 조용한 것 같아서 핸드폰을 들어 홈캠 앱을 켰다.



(고용할 때부터 거실에 홈캠이 있다는 사실을 N에게 고지했다. N은 이전의 쌍둥이 집에서는 거실은 물론 방방마다, 심지어 주방에도 카메라가 있었다며 문제 없다고 대답했었다.)



매트 위에 앉은 N과 럭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럭키는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고 N은 그런 럭키 앞에 앉아 있었다.



늘 아기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시선도, 아기를 어루는 조심스럽고 다정한 목소리나 손길도 없이 무심하게 아기를 내려다보는 N의 얼굴이 낯설었다. 화가 난 듯 차가운 표정, 음소거 된 화면을 뚫고 그녀의 깊은 한숨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N과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뭔가 봐서는 안되는 것을 본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얼른 앱을 껐다.




나는 잠깐 실망했다.


그리고 곧이어 실망한 내게 실망했다.



그녀는 럭키의 엄마가 아니다. 피가 섞인 친척도 아니다. 우리는 고작 8개월 전 처음 만났다. N은 돈을 받고 일을 하고, 나는 돈을 주고 그녀를 고용하고 있는 관계일 뿐이었다.



N은 내 아이를 완벽하게 사랑할 의무가 없다.



친엄마인 나도 럭키가 투정을 부릴 때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데 N에게 그런 완벽함을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한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순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녀를 여전히 믿고 있다. 타인으로서 그녀는 충분히 아기를 예뻐했고 보호했다. 그녀가 내보인 잠깐의 빈틈에 실망한다면 지금까지의 그녀의 노력이 억울할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새벽부터 집을 나서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와 종일 아기를 보면서 차오른 피로를 꾹꾹 눌러가며 내 앞에서 힘겹게, 일부러 아기와 명랑하게 놀아주고 목소리 높여 노래를 불러주었을 지도 모른다. 럭키를 아끼는 마음을 나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혹시 본인이 아기를 예뻐하지 않는다고 생각할까봐 고된 육아 노동 속에서 남은 활력을 쥐어짜냈을지도 모른다.  



럭키가 자라면서, 또 다른 내니를 만나거나 기관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심한 N의 표정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던 두려움과 지금의 깨달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그들이 내 아이를 위험하게 방관한다거나 청결하지 않게 다룬다는 뜻은 아니라고. 고작 몇 푼의 돈으로 안전과 위생에 대한 책임 그 이상을 기대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만족할 수도, 공생할 수도 없다.



소란스럽던 거실이 조용해졌다.



칭얼거리던 럭키가 잠들고, N은 아기를 안은 채 소파에 앉아 졸고 있다. 그녀가 눈을 뜨면 커피를 한 잔 타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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