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딴은 두 달 전부터 우리 집에서 일하기 시작한 파트타임 헬퍼(가사 도우미)다. 오전 10시 30분쯤 집에 와서 4~5시간 동안 일을 한다.
양곤에 온 날부터 헬퍼 겸 내니인 N이 있었지만, 새벽부터 N이 집안일을 끝낼 때까지 오전 내내 육아를 맡다가 오후부터는 아기 이유식을 만들고 우리 부부가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했던 나는 점점 지쳐갔었다.
결국 N이 좀 더 일찍 아기를 돌봐주고, 그녀가 하던 집안일을 맡아줄 파트 타임 헬퍼를 찾기로 결정했을 때 처음 고용했던 사람은 딴딴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구인 공고를 내고 몇 명의 지원자와 인터뷰 시간을 잡았지만, 약속을 지켜서 우리 집에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47세의 싱글맘이었던 그녀는 지금까지 화이트 칼라 업무만 해왔다고 했다. 헬퍼 경력은 고사하고 몸 쓰는 일을 해보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녀는 인력 에이전시에서 일하며 싱가포르로 헬퍼를 보내기 전 교육을 담당했었기에 이론적으로는 모든 걸 알고 있다며 자신있어 했다. 게다가 그녀는 N보다 훨씬 듣기 수월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의 집 일을 해보지 않았을 뿐, 본인의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했을 테니 집안일에 전혀 문외한이라고는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녀가 출근한 첫날은 우리가 2주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이미 전날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N이 와서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는 첫날 서로 편해지자는 뜻으로 준비한 차와 과자를 나누어 먹고, 한국에서 가져온 어마어마한 짐 정리를 도와주고, 여행 가방을 닦으며 여유롭게 3시간을 채웠다.
이틀차부터 그녀의 본격적인 헬퍼 일이 시작되었다. 주 업무는 청소였다. 내가 아이를 보고 N이 본인이 해온 루틴대로 일을 가르쳐주었다.
방 두 개와 욕실 두 개, 거실과 주방으로 구성된 우리 집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계약서에 나와 있는 스퀘어를 평으로 환산하면 36평이었지만 수영장이나 헬스장 같은 공용면적이 커서인지 실제 체감적인 평수는 20평대로 느껴졌다.
아기 장난감들, 소파와 식탁이 있는 거실은 사실 아기 매트를 밟지 않고서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은 편이었다.
우리 집 거실
이전 콘도는 이곳보다 침실도 거실도 훨씬 널찍했었는데 그때도 N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집안일을 했었다.
그런데 새로온 헬퍼는 3시간 동안 일을 해도 청소를 끝내지 못했다. 요리나 빨래를 더 시킨 것도 아닌데,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리고 밀대로 닦고 침대와 선반을 정리한 뒤 걸레질을 하는 것 뿐인데….
하지만 본격적인 첫날이고, 낯선 집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익숙해지고 손에 익으면 괜찮아지리라 믿었다.
그런데 다음날, 그러니까 3일차 되던 날 그녀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나 내게 어떤 사전 연락도 없었다. N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그녀는 N에게 몸이 아프다며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어쩌면 처음 해 본 낯선 육체 노동에 몸살이 난걸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미리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은 것이 탐탁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프다는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다음 날도 출근하지 않았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출근을 해도 되냐는 메시지를 남편에게 보냈을 뿐이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N에게 물었다. N이 고용주는 자신이 아니니 남편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해서 그제서야 마지못해 남편에게 연락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 어떤 양해의 전화나 메시지도 없었다. 그쯤 되니 우리도 불성실한 그녀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 일했던 이틀치 일당을 줄테니 로비에 와서 받아가라고 N을 통해 전했다. 그때까지 연락 한 번 없던 그녀가 그 말을 전한 당일 냉큼 와서 돈을 받아갔다.
이후로 다시 헬퍼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N의 친구와 사촌이 연달아 물망에 올랐지만 다른 지방에 있던 그녀들 모두 이유를 알 수 없는 정부의 지역 봉쇄령 때문에 양곤에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기를 돌보고 남는 시간에는 엄청나게 식욕이 왕성한 아기의 이유식을 만드느라 점점 더 지쳐가던 그때, 남편의 직장 동료가 사무실 청소를 하는 딴딴을 추천했다. 비록 영어는 못하지만 지난 9년 동안 단 두 번의 결근을 제외하고는 늘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두세 시간 정도 사무실을 청소하고 돌아가는 성실한 친구라고 했다.
남편은 현지인 직원의 도움을 받아 딴딴에게 파트타임 일자리를 제안했고 그 자리에서 월급과 업무 범위에 대해 조율했다. 수개 월을 봐왔지만 남편은 단 한 번도, 심지어 마주보고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그 시점에도 딴딴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사무실 청소를 할 때 그녀는 늘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했다. 아마 목소리도 그때 처음 들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N과 같은 시간에 집에 와 오전 안에 집안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헬퍼를 원했었다. 번잡한 분위기가 사라진 깨끗하고 조용해진 오후에 여유가 생기면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딴딴은 아침에는 사무실 청소를 해야했기에 우리 집에는 빨라야 10시 30분이 되서야 올 수 있었다. 아쉽긴 했지만 신분이 확실하고 믿을 만 한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남편이 딴딴에게 파트타임 일자리를 제안한 바로 다음날부터 그녀는 우리 집에서 일을 하게 됐다.
N이 의사소통을 도와주겠지만 영어를 하지 못하는 그녀와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됐다. 인터뷰를 도와줬던 남편의 현지인 동료는 그녀의 문화 수준(의식 수준이라고 그랬나,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는다)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했다.
날씨와 환경, 문화와 경제 수준에 따라 청결과 위생에 대한 기준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그 격차가 사람에 따라서는 아주 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동남아 생활을 하며 몇 번이나 체감했기에 동료 직원의 그 말에 걱정이 컸다. 살짝 겁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드디어 다음 날 아침, 그녀가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고 N은 그녀를 데리러 로비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