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딴에 대한 내 첫인상은, 역시나 마스크였다. 그녀는 파란색 덴탈 마스크를 쓰고 미얀마 전통 의상인 론지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가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들었지만 그렇다고 한국어나 미얀마어로 소개를 할 수 없었다. 그 정도 영어는 알아들을 수 있는지 딴딴은 미얀마어로 답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밍글라바 라고 하지 않았을까.)
딴딴과 N, 그리고 나의 첫만남이니 일단 커피와 차, 간단한 간식을 내서 인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딴딴은 본인의 이름을 말했지만 발음하기가 어려웠다. 더듬거리며 딴딴의 본명을 따라하는 나를 지켜보던 N이 닉네임으로 부르자며 그 자리에서 딴딴이라는 이름이 어떠냐 했다. 아마도 딴딴의 본명 속 발음을 따라 붙인 듯했다.
딴딴은 차를 마실 때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었고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그녀는 작은 어깨를 움츠리고, N이나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질문을 할 때마다 고개를 연방 주억거리며 답했다.
첫날은 역시 내가 아이를 돌보고 N이 딴딴에게 우리 집의 청소 루틴을 알려주었다. 청소 일을 한 경력이 오래된 덕분인지 그녀는 어려워하지 않고 청소를 끝냈다. 기본 월급을 보장해주기 위해 매일 최소 4시간 이상 일하기로 했는데 청소를 하고 럭키의 장난감들을 닦고 마트 배달 온 물건들을 가지러 콘도 로비에 내려갔다 왔는데도 시간은 넉넉했다.
우리 집의 청소도구가 손에 익지 않거나 N과 내가 만들어놓은 루틴이 낯설어 실수를 조금씩 하기도 했지만 신경쓸 만 한 일은 아니었다.
수줍어하던 내 앞에서의 모습과 달리 N과 딴딴은 미얀마어로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나중에 딴딴이 집에 돌아가고 나서 N은 수다를 통해 알게 된 딴딴에 대한 이야기들을 내게 말해주었다.
40대 초반의 그녀는 싱글이며 역시 결혼을 하지 않은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왜 결혼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남자가 싫다고 답했다며 N이 까르르 웃었다. 그래서 그게 진짜 이유인지 아니면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농담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 본인 집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N은 딴딴이 오전의 사무실 청소로는 얼마를 받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단 몇 시간만에 온갖 정보를 주고 받은 듯했다.
2,3일차쯤 딴딴에게 설거지와 빨래널기도 맡겼다. (빨래는 옷을 구분해서 세탁해야 하는 일이 헷갈릴 것 같아 늘 내가 맡아 했다. 세제에 대한 이상한 결벽증이 있어 설거지는 N에게도 거의 시킨 적 없었는데 요즘은 강박을 버리기 위해 훈련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N이 의외의 말을 했다.
“딴딴이 궁금해해요.”
“뭘?”
“맴이 내게 자신에 관해 어떤 말을 했는지요. 맴이 자길 마음에 안 들어하는지 걱정하는 것 같아요.”
아직 완전히 강박을 버리지 못했고, 딴딴이 설거지를 할 때 너무 짧은 시간 그릇을 헹구는 것 같아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충분히 물로 헹궈달라고 N을 통해 말을 전했는데 딴딴은 그게 마음에 걸렸었던 것 같다.
“설거지에 대한 건 딴딴 잘못이 아니라 내가 예민해서야. 나는 우리 남편이나 우리 언니가 설거지할 때도 충분히 헹구는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지거든. 세제를 먹게 될까봐 이상한 불안감이 있어. 나는 딴딴이 마음에 들고 우리집에서 계속 일했으면 좋겠어. 뭔가 불편한 점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전해줘.”
딴딴이 일하고부터 우리 집은 한결 안정을 찾아갔다.
N은 출근 후 아침을 먹고 널린 빨래를 개어 정리한 뒤 럭키를 보기 시작했고, 그 뒤로 나는 아침을 먹고 하루에 하나씩 만드는 이유식 반찬을 손질하고 찜기에 올렸다. 찜기나 초퍼, 그릇 등이 싱크대 안에 쌓여도 부담이 없었다. 열시 반이면 딴딴이 출근해 쌓인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두 개를 해내곤 하는 센스나 영리함은 N이 한수 위였지만, 딴딴은 N보다 부지런했다. 그녀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타입이었다. 치울 거리가 하나라도 생기면 잽싸게 정리했다.
영어를 못한다고는 하지만, N이 같은 자리에 없을 때 내가 뭔가를 -빨래가 다 된 것 같은데 널어줘 같은- 이야기하면 대충은 알아듣고 해결해놓는다.
남편의 현지인 동료는 그녀의 문화 수준을 운운했지만, 아직까지 문제된 일은 없었다.
물론 첫날 지레 겁을 먹고 N을 통해 집에 와서 일 시작 전에는 손발을 먼저 씻어 달라거나(여기 사람들은 양말을 거의 신지 않고 슬리퍼나 샌들 같은 여름 신발을 신고 다니는데 거리도 더럽고 인도의 상태도 좋지 않아서 집을 방문했던 대부분의 현지인들 발이 더러웠다), 아기 물건을 만지거나 아기 빨래를 널기 전에는 손을 씻고 해달라는 등의 기본적인 위생 수칙을 강조한 덕분일 수도 있지만.
남편과 업무 협의를 볼 때 그녀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하지 못한다고 했다. 남편은 내니는 따로 있으니 아이를 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아이를 싫어하는 것일수도, 아니면 아이가 다치거나 울까봐 부담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한 그녀는 아기를 아주 예뻐했다. 수시로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청소를 하며 지나갈 때 럭키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손짓을 하거나 어르는 소리를 내며 아기를 웃게 만들었다. 일을 끝내고 옷을 갈아 입은 뒤에도 아기가 밥먹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아기를 돌보는 N의 수발을 들다 집에 돌아가곤 했다.
N과 딴딴, 그리고 럭키
조용하지만 다정한 그녀의 목소리에 럭키도 딴딴만 보면 방긋방긋 웃고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고 손을 뻗는다. 딴딴이 출근해 집안에 들어서면 N과 놀고 있다가도 엉덩이를 들썩이며 반기곤 한다.
나는 N을 좋아하긴 하지만, 알아 듣기 힘든 영어 발음으로 내게 수다를 쏟아낼 때는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가끔은 목소리도, 움직임도 조용한 딴딴과 있는 것이 더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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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전, 남편의 직장 동료가 믿을 만 한 내니가 필요한데 딴딴을 고려 중이라는 말을 전했다. 혹시 그녀에게 이직 제안을 해도 되는지 내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딴딴이 필요하지. 다시 다른 사람을, 그것도 딴딴만 한 사람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고. 구하기 전까지 이 평화가 깨지는 것도 걱정이고. 그런데 딴딴에게 월급이나 환경이 더 좋은 직장이고 본인이 옮기고 싶다면 내가 가타부타 말리거나 붙잡을 수는 없지.”
며칠 후, 남편의 직장 동료가 제안한 입주 내니 겸 헬퍼 일자리를 딴딴이 거절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함께 살고 있는 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상주하는 일은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 느낀 안도감이란. 말은 쿨하게 했지만 이제야 겨우 균형이 잡혀가는 듯한 양곤 생활이 흔들릴까봐 내가 얼마나 초조해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또 하나 다행인건 거절한 -한 달에 두 번 쉬는 조건의- 입주 도우미의 월급이 우리 집에서 주5일 4~5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과 큰 차이가 안 난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만 원 남짓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만약 차이가 크게 나는 돈이었으면, 물론 우리 때문에 그 일자리를 거절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심지어 입주 도우미 월급은 딴딴이 아침에 하는 사무실 청소 월급과 우리 집 월급을 합친 것보다 적다. 당연히 입주 도우미 월급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미얀마에서는 먹고 자는 걸 고용인이 해결해주고 교통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입주 도우미 월급이 출퇴큰 도우미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크지 않은 집에 여자 셋이 부지런히 움직이다보면 내가 바라던, 글을 쓸 수 있는 조용한 오후와는 거리가 먼 부산함이 가득하지만 체력적으로는 훨씬 편안해졌다. 책 한 줄 읽기 힘들 정도로 지쳤던 예전의 고단했던 일상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기를 위해 돌아가는 하루 루틴 속에서 N과 딴딴, 그리고 내가 각자의 역할을 맡은 지금의 평화가 깨지지 않고 오래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