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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Dec 10. 2020

코로나 확진을 받기까지

<여전히 아직, 파나마에서 인제로>

도연에게.


아주 중요한 이슈부터 전할게! 내 블로그에서 이미 봤겠지만 내가 코로나 확진을 받았어! 그래서 나는 여전히 파나마에 있어. 

과테말라 입국을 위해서는 코로나 음성 확인서가 필요했거든. 출국하기 3일 이전에 받은 검사여야 했지. 그래서 출국일을 이틀 앞두고 오빠와 큰 병원에 가서 드라이브 스루로 코로나 검사를 했어(다행히 아기는 검사를 안 해도 된대). 사실 검사 전날부터 몸살을 앓아 좀 아팠거든? 에이- 설마 코로나겠어? 마스크도 열심히 썼고 손도 자주 씻고 알코올 젤도 늘 챙겨 다녔다고. 이건 분명 몸살일 거라 확신했어. 증상이 있던 그 날, 새벽부터 꽤 고된 스케줄을 소화했거든(그렇지만 너의 생일날만큼 고되진 않았던 것 같다). 몸살이 날 만도 하지.. 싶었던 나날들이었어. 코로나 검사를 하고 나와 한 시간쯤 지났나? 이메일로 결과가 나왔는데 내가 양성이 나온 거야!

 '에이.. 이거 오류네 오류야!' 싶었던 이유는 코로나 검사 방법 중 저렴한 걸로 했거든. 이건 검사 비용이 $40인데 정확도가 80~90%정도래. 그러니까 열 명이 검사하면 한 두 명은 오류가 날 수 있기도 하고, 실제로도 우리 윗집에 사는 친구가 이걸로 검사했는데 양성이 나왔다가 다시 PCR(검사 비용이 $100이고 정확도는 99.9%래)로 검사했더니 음성이 나왔거든. 나도 오류일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도 일단 양성이 나왔으니 바로 격리에 들어갔고(게스트룸이 나의 격리시설이 될 줄이야!) PCR 검사를 집으로 와서 해주는 곳이 있어서 재검사를 했어. 그리고 이건 24시간 후에나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나 긴 하루를 보냈지. 당장 모레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데.. 양성이 나올 경우와 음성이 나올 경우를 대비해 오빠랑 카카오톡으로 끝없는 가족회의를 해봤지만,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어. 일단 결과를 기다려보자!로 매 회의가 끝이 났지. 발을 동동 구르던 그 24시간 중의 화룡점정은... 바로 생리였어. 생리가 터졌어. 그것도 새벽에. 새벽 3시에 화장실에서 이불을 빨았다.. 하.. 눈치도 없는 생리년 같으니라고....

그리고 다음 날, 재검사에서도 양성이라는 결과지를 받았어. 양성 결과지를 받고 나니 오빠와 시호가 걱정돼서 죽겠는 거야. 증상이 있어 몸살약을 먹고 자던 그 밤도 내가 시호를 안고 잤는데.. 오빠는 그날 나에게 아프지 말라며 뽀뽀까지 하고 잤는데!! 그래서 오빠와 시호도 PCR로 검사를 하기 위해 출장 검사를 다시 신청했어. 그런데 사실.. 오빠도 이미 증상이 나오기 시작했어. 내가 겪은 것과 똑같이 오빠도 오한이 온 거야. 열이 올랐다 내렸다.. 오빠도 양성이겠지.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았는데.. 시호까지 양성이겠지.. 마음이 무척 무겁더라..


"어차피 이건 먼저 걸리냐 늦게 걸리냐 차이예요. 모두가 코로나에 걸려야 끝이 날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아기들은 대체로 무증상인 경우가 많으니까. 다 같이 양성 나오면 그냥 집에서 편하게 지내면 돼요." 


집으로 와서 코로나 검사를 해주던 사람은 오빠와 시호도 양성이 나올 거라 거의 '확신'에 차서 얘기를 했대(나는 방에 갇혀있으니 모두 전해 들은 이야기야). 그리고 사실 나도 '확신'에 차있긴 했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얘기하는 검사자의 멘트가 되려 위안이 되기까지 했어. 

내가 격리를 시작한 건 금요일, 그리고 오빠와 시호의 검사 결과가 나온 건 월요일이야. 4일 동안 아픈 몸으로 오한에 식은땀을 흘리며 나와 시호 밥을 하고 시호 육아를 하는(게다가 잘 때에도 마스크를 쓰고) 오빠를 지켜만 보는 게 너무 괴롭더라고.


 "오빠 어차피 양성인 거 같은데~ 그냥 내가 나가서 같이 도울게."


오빠는 그래도 결과가 나오고 확실해지면 그렇게 하자고 버텨내더라고. 그리고 월요일 저녁이 되어 오빠에게 믿을 수 없는 카톡이 왔어. 


[시호랑 나랑 둘 다 음성이야.]


하느님, 감사합니다! 가 절로 나오더라고. 땡스 갓!!!!!!!!!! 이건 기적이라고 생각했어. 천사들이 우리 시호를 지켜주었어. 시호를 돌보기 위해 오빠까지 지켜줬어. (쓰고 보니, 왜 나는 안 지켜준 거지.. 흥)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격리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지. 


내 컨디션의 회복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좋아졌어. 몸살 기운도 금세 사라지고 고통스럽게 아프던 인후염도 없어졌지. 잃었던 미각과 후각도 대부분 돌아온 상태야. 

누군가는 나의 코로나 확진 소식에 눈물을 글썽이며 타지에서 전염병에 걸렸다고 슬퍼하던데, 생각만큼 그렇게 지독하진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의도치 않은 2주간의 휴가를 보내고 있는 셈이 되었거든. 하루 세끼 따박따박 남편의 룸서비스로 밥도 나오고 지난 일 년 간 부족했던 잠을 몰아자기라도 하듯 밤에도 10시간씩 자고 낮잠까지 자고 있어. 물론 약기운으로 자는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에겐 오빠와 시호에 대한 사랑이 더 애틋해지는 시간이 되고 있어. 어서 격리가 끝나고 나가 마음껏 오빠와 시호를 안아주고 싶어.


그나저나 너의 편지를 읽고선 오빠가 도연이 생일날 에피소드 대박이라면서.. 이렇게 말하더라.

"도연이도 너도.. 참.. 파란만장하게 산다"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남편은 정말 따뜻하고 차분한 느낌이 들어. 만나본 적이 없는 나에게까지 안정감이 느껴진달까. 편안하고 포근한 사람일 것 같아. 코로나는 악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뉴스에서 백신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 같으니, 우리 희망을 가져보자! 

함께 과테말라도 여행하고.. 파나마도 여행하고.. 너의 늦은 신혼여행을 이곳에서 함께 할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아! 


난 코로나에 한 번 걸려서 당분간은 항체가 있을 거래! 너도 새신랑도 인제에서 부디 무탈하길 바라! 

또 소식 전해주련.



p.s. 시간 날 때 답장 좀

파나마에서 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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