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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 K Feb 05. 2021

스페인의 주거문제

과일은 엄청 싼데  월세는 생각보다 비싼데?

스페인에 있으면서 가끔 살기좋은 곳이라 느낄 때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슈퍼마켓에서 실컷 장을 보거나 새옷을 사입고 명세서를 봐도 생각보다 적은 금액이 찍혀 있을때다. 의식주 가운데 의()와 식()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데 다른 물가대비 마지막 주()에 해당하는 주거비 부담은 어떨까? 스페인 사람들의 주거문제에 대해 알아보자.


갈수록 높아지는 월세 부담 

스페인에서 주거방식은 자가소유 또는 렌트가 있다. 학생이나 젊은이들은 아파트 하나를 여럿이서 쉐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와 같은 전세개념이 없다.) 내집마련 전까지는 전세가 아닌 렌트를 해서 살아야 하는데 렌트의 최근 수년간 월세가 급격히 상승하며 스페인 국민들의 월소득대비 월세지출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부동산 플랫폼 Fotocasa와 구직 플랫폼 Infojob이 2020.6월 공동 발표한 '2019 급여 대비 월세관계 보고서(Relación de salarios y vivienda en alquiler en 2019)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평균 급여대비 월세 비중은 40%로 2015년 이후 5년만에 12%p가량 상승하였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속해 있는 카탈루냐주의 경우 각각 56%를 기록하여 렌트비가 한달 월급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Fotocasa(2019 급여 대비 월세관계 보고서)

동 보고서를 보면 지난 5년간 평균 임금에 비해 월세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5년간 평균 월급은 1,973유로에서 2,040유로로 상승한데 반해 80㎡크기 아파트의 평균 월세는 561유로에서 무려 814유로까지 올라갔다. 가격상승은 수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주도하였다. 다른 기관의 발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월세 가격이 수년간 큰 폭으로 상승했고, 이로 인해 가계소득 대비 지출비중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출처: Fotocasa(2019 급여 대비 월세관계 보고서) 

다른 국가와의 비교에서도 스페인 가계의 주거비 지출 부담이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OECD가 발표한 가처분 소득대비 주거비(Housing cost over income) 통계에서, 2018년(또는 최근 연도)기준 스페인의 세입가구 가운데 가처분소득 대비 40% 이상을 주거비를 지출하는 가구의 비중은 20.3%로 전체 38개 대상국 중 5번째로 높았다.   

출처: OECD( Housing cost over income)


실제 월세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스페인 내 또 하나의 최대 부동산 플랫폼인 Idealista가 발표한 2020년말 기준 자치주별 월세시세는 아래와 같다. ㎡ 당 전국 평균 월세가격은 11유로로 80㎡ 크기의 아파트를 렌트할 경우 한달에 880유로(한화 120만원 상당)를 내야한다. 수도 마드리드시의 시세는 ㎡당 14.8유로(마드리드 주내 마드리드 시)로 80㎡ 아파트 1달 렌트 비용이 1,184유로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Fotocasa의 2020년말 기준 시세는 10.65유로를 기록하였다.)  

출처: Idealista


OECD와 EU집행위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가계경제 안정을 위해 월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비중이 30%이내가 되도록 권고하고 있다. 스페인 중앙은행도 최대 35%가 넘지 않도록 조언한다. 따라서, 주거비에 과도한 지출로 인해 스페인 가정의 재정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월세가격 상승 요인

2014년을 전후로 경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월세 가격은 평균 경제성장속도보다 훨씬 가파른 속도로 상승하였다. 집계기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최소 30~40%이상 상승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요를 부추긴 요인으로 관광산업 호황, 외국인들의 선호, 고용회복을 꼽을 수 있다. 


지난 수년간 스페인의 관광산업은 전체 GDP 성장률을 상회하는 고성장률로 경제회복을 주도하였다. 2019년 스페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수는 8,350만명으로 전 세계 2위를 기록하였다. 자연히 스페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면서 이들의 숙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일반 거주목적의 세입자에게 장기로 임대하기 보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임대 회전율을 높일 경우 수익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로 인해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찾는 이들을 위한 매물이 줄어들고 가격이 올라가는식이다. 높은 렌트비용 때문에 기존의 주민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부작용도 문제로 부각되어, 불법 숙소를 단속하는 등 관광용 숙소임대사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도 하였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관광뿐만 아니라 훌륭한 교통인프라와 높은 삶의 질을 갖춘 비즈니스 장소로도 각광을 받는다. 마드리드는 행정수도로 외교사절단, 각종 국제기구 및 파견 기업인들의 수요 베이스가 존재하고 바르셀로나 역시 외국계 기업들에 인기가 높다. 대규모 관광객이 유입되고 소비가 활발하다. 또한, 지중해 연안의 휴양지역들은 이전부터 주변 국가(주로 독일, 영국 등) 국민들의 은퇴 후 거주지로 인기가 높았으며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들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최근 많은 유럽의 부동산 업체들은 스페인 내 부동산 수요 증가를 예상하고 투자를 진행하였다. 외국인 투자수요도 부동산 시장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하나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수요상승의 요인은 고용회복에 있다. 스페인의 경제회복은 '임금조정을 통한 고용회복 - 가계소득 증가 및 내수활성화 / 수출가격경쟁력 개선 - 기업이윤 증대 - 추가 고용창출'이 핵심이었다. 고용창출이 경기회복의 시발점이었다. 고용이 늘면서 부모와 같이 살다 독립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이들은 집 자체의 퀄리티보다는 이동성을 중요시하는 성향이 있어 자연히 대도시 중심가 매물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였다. 


반면, 수요가 증가하는 지역의 공급은 부족하다. 2020.1월 스페인통계청 기준 각 도(provincia)별 인구수와 스페인 최대 부동산 플랫폼인 idealista에 나와있는 판매물량 데이터를 활용해 인구 1000명당 매물비율을 계산해 본 결과 마드리드의 경우 7.61개로 51개 도 가운데 4번째로 작았으며 바르셀로나도 10.2개로 전국 평균(12.2)에 못 미치며 공급이 부족한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때문에 많은 부동산 기관들은 부동산 가격상승을 억지로 억제하기보다는 공급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집을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이득

월세부담이 크다보니 젊은층을 중심으로 주택구매에 대한 선호는 지속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중앙은행도 집을 사는 것이 낫다며 수요에 맞는 주택공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저금리가 고착화되고 있는 최근의 경제상황 하에서 부동산은 투자수단으로서도 매력적이다. 참고로 Fotocasa와 idealista가 발표한 2020년 스페인 부동산 평균 투자 수익률은 각각 6.8%, 7.5%로 상당히 높았다. 2019.10월 부동산 네트워크 Century21 España는 스페인에서는 집을 사는 것이 렌트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는 Urban Data Anaytics와의 공동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동 연구에 따르면 90㎡짜리 집을 살 시, 월 소득대비 주거비용이 스페인 어느 지역에서도 주요 기관들의 권고기준인 33%를 초과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라 팔마 지역의 가계소득대비 월세 비중이 상당했으며 그 외 지역의 월세비중은 대부분 권고수준 이내였다. 수도 마드리드의 경우 월 가계소득의 33%를 주거비로 지출한다고 가정할 때 월세로 살 때보다 무려 35㎡ 더 큰 집을 구할 수 있었으며  ㎡당 3,415유로의 90㎡짜리 집을 산다고 가정할 경우 렌트할 때보다 월 가계소득의 13%가량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상기 연구는 세입자와 부동산 소유주가 부담하는 각종 제세공과금, 기존 저축율 등은 배제하였기에, 해석에 유의할 필요는 있으나 어쨋든 두 옵션의 격차가 상당하기에 집을 사는게 유리해 보인다.  

출처: Centry21 España (2019.10.)


집을 사고 싶어도 못사는 이유

집을 사고 싶어하고 집을 사는 것이 경제적이고, 금리도 낮은데도 집을 장만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집값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텐데 일단 스페인 평균 주택시세가 어느 정도인지 보자. Idealista 자료기준 2020.12월 스페인 평균 주택가격은 ㎡ 당 1,779유로로 90㎡ 크기의 아파트 가격은 16만 유로로 대략 한화로 2억원 수준이다. 같은 크기의 아파트가 바마드리드에서는 33.1만 유로(한화로 약 4.4억원), 바르셀로나에서는 36만 유로(한화로 약 4.8억원)정도다. 

출처: Idealista 

지방은 비교적 사정이 낫지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산 세바스티안 등 일부 대도시에서는 현재 가계소득으로 집을 사기는 쉽지 않다.  사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의 핵심도시에서 집값이 싸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통상적으로 스페인에서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사고자하는 집 가격의 30% 정도의 종잣돈(씨드머니)을 모아야 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집값의 100%까지 대출이 손쉽게 이뤄졌으나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금융권에 대한 구조조정과 함께 대출규제가 강화되었다. 현재 스페인 시중은행들로부터 주택가격의 80% 이상 대출받기는 어렵다. 여기에 공증과 같은 행정비용, 세금,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부동산 대비 10~15%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참고로 스페인에서 새집을 살 경우 부가세 10%가 적용되며, 중고의 경우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나 보통 5%이상의 취득에 대한 세금을 내는게 일반적이다. 


부동산 컨설팅 그룹 Colliers International Spain의 2020.8월 조사자료에 따르면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우 평균 가정이 75㎡ 크기의 주택 장만에 필요한 씨드머니(주택가격의  30%)를 마련하는데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우 각각 10.5년, 12.3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왔다. 집장만 이후에도 대출금 상환에 적정수준보다 높은 월소득의 33%, 39%를 지출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전국적으로는 씨드머니 장만에 걸리는 시간의 편차가 커서 3.9 ~ 12.4년의 분포를 보였다. 젊은층의 사정은 더욱 힘들어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서 *최저임금(SMI)수준(2021년 월 1,108유로)을 버는 남녀 커플이 씨드머니를 장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5.6, 17.3년이었으며 그렇게해서 집을 장만한 이후에도 무려 소득의 50%가량을 대출상환에 써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aixaBank 연구소는 또 다른 연구결과를 내 놓았다. 2020.5월 자체 보고서를 통해 많은 스페인 젊은이들이 집을 살만한 소득수준을 갖추었음에도 주택구매에 필요한 저축을 하지 못해 내집 마련에 실패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CaixaBank 연구소는 주택구입능력지수(HARI, Housing Affordability for Renters Index)를 활용하였다. 동 지수는 세입자 가운데 최근 대출을 통해 집을 산 사람들의 소득보다 같거나 그 이상을 버는 사람들의 비율을 측정한다. 세입자의 저축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HARI(sin Ahorro)의 경우 49%로 비교적 높게 나왔다. 집을 사지 않은 사람의 절반가량이 최근 집을 산 사람들에 비해 소득수준이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저축상태를 고려한 HARI(Ahorro)의 경우 13%의 수치가 나왔다. 이는 집을 사지 않은 사람 중에 주택구매에 필요한 소득이 있으면서 종잣돈까지 마련한 사람의 비중이 최근 집을 구매한 사람의 13% 불과하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집을 일단 사면 저금리의 혜택과 함께 주거비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지만 필요한 씨드머니를 모으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그동안 월세를 내며 살아야 하는데 월세가격은 빠르게 상승하면서 집장만의 꿈이 갈수록 요원해지는 상황이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어쨋든 싼 가격의 집이 많아지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스페인 중앙은행(BDE)은 현재 스페인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대도시의 주택공급이 늘어나야 하며 경제적 취약계층들에 대한 안정적인 주택공급 확대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각종 도시개발 관련 규제 완화, 민관 합동 임대주택 공급 프로젝트 활성화(공공토지에 민간 건설사가 저렴한 가격의 임대주택 제공) 등의 안을 제시하였다.


코로나 19 이후의 상황

2020년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그동안 부동산 시장의 열기도 가라앉으며 시세가 어느 정도 낮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용타격으로 수요가 위축되는 한편, 외국인 관광객 방문이 80%가까이 감소해, 많은 관광객용 숙박시설이 일반 주거용 물량으로 풀리면서 공급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 대도시의 핵심 지역은 구매력을 갖춘 수요가 항상 존재하고, 공급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들 지역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대신, 코로나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취약계층이 많은 외곽지역 중심으로 가격하락이 진행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IMF는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저소득 취약계층에 집중되었기에 이들의 주거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고 이들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 지적하였다. IMF측은 토지규제 완화, 공공임대주택 확대 및 이들 주변지역에 대한 인프라 개발,  임차인에 대한 과도한 보호 자제를 통한 공급확대 유도 등의 방안을 스페인에 권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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