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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버슬릭 May 21. 2023

’나‘ 스스로를 비난하지 마세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나를 그 기준에 맞추면 그때부터는 내가 아니랍니다.


언제인가 조금은 행동이 남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자신만 오래 걸리는 음식을 시킵니다. 물을 마실 때 꼭 자신의 컵이 있어야만 물을 마십니다. 길을 걸을 때도 항상 남들보다 뒤처져서 걸어가고 무엇인가를 제안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그냥 하자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대부분의 일에서 그 사람을 제외하거나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진행합니다. 그 행동들이 이상하다며 같이 지내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험담을 하며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에 관한 모든 행동과 말들은 그 이상한 사람을 무리에서 조용히 없어지게 하려는 행동들 같았습니다.


 그 사람을 따듯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마지막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죠. 팀을 관리하는 관리자부터 그의 후임까지도 그를 좋아하지 않고 대화하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그에게 충고만 하고 그를 이해하려는 따듯한 말 한마디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경험과 실패에서 나온 선구자의 조언만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조언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넸고 만족해하는 표정을 보이곤 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러 떠난다 하였습니다. 1년 남짓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자신이 적응하지 못하는 곳에서 또다시 고통받으며 지내며 살기 싫다고 했어요.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사람들은 자신과 같이 지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듯했고 함께 있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다며 간다고 말이죠. 아무래도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혼자 일하며 지내는 게 좋은 방법일 거라며 그러한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 사람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물인 듯합니다. ‘멈추는 게 싫겠지만 당신이 계속 그렇게 걸어가면 따라가는 다른 사람이 위험하니 싫더라도 멈춰주세요’, ‘여긴 조용히 해야 하는 공간인 거 모르시나요? 조용히 해주세요.', '그건 제 물건인데 왜 가져가신 거죠? 돌려주세요.‘ 살아가면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주변의 이야기들입니다. 물건을 가지고 싶은데 내가 만든 게 아니니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내야 합니다. 다른 무리에서 구한 식량을 그냥 먹어버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안 좋은 감정들을 불편해하며 싫어한다고 표현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여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그러한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합치시키다 보니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규칙이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작은 조직이라도 없던 규칙이 만들어집니다. 누군가가 불편해하며 소리를 들려주면 다른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반응을 하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나머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게 되죠. 다수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의견은 소수가 받아들이는 형태로 서서히 자리 잡혀 갑니다. 어떤 조직은 원리와 원칙이 고수되어야 그들의 목표를 잘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조직은 조직원을 구속하지 않는 것에서 창의력과 목표 의식이 생긴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조직이 추구하는 이념이 만들어지면 모두를 하나의 규칙 안으로 밀어 넣고 같은 방식과 비슷한 행동들로 규정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강직하게 굳혀진 방식은 그들의 문화에 녹아드는 것이죠.

 

 각 나라마다 그들만이 따르고 있는 고유의 규칙들도 있습니다. 조직의 규모가 하나의 국가 단위로 커지면 작은 조직의 규칙보다 더 오랜 시간 협의를 하고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각각의 국민이 의견을 내고 타인이 청취하고 평가하며 수정하고 다시 의견을 청취하는 많은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아주 오랜 시간 그들의 규칙이 만들어지면서 한 국가의 문화와 의식으로 자리가 잡히게 됩니다. 그들만의 생각과 규칙은 국민성이라는 거대한 집약체를 만들고 서로 다른 문화와 비교하여 우위를 점하려고도 합니다.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서로 비슷해 보여도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가치관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자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기준점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결과만 가지고 그 두 사람을 같은 가치관을 가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것은 가치관입니다. 아이가 차도로 뛰어가면 그 행동을 저지하는 것에는 모두가 같은 생각일 거라고 예측하지만 가치관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릅니다. 아이의 목숨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는 그 아이의 부모가 자식을 잃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겪는 것이 염려되어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내 눈앞에서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행동할 수도 있는 거겠죠.

 

 사람은 저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반응이 다릅니다. 사소한 일에도 각기 다른 반응을 가지는 것은 그들의 경험에서 가장 이상적인 결과에 도출한 행동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특정한 일에 대해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반응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죠. 가령, 나의 말을 무시하는 사람들 틈에서 오랜 시간 지내다 보면 스스로 그들에게 어떠한 의견을 내비치어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체념의 마음이 자리 잡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것은 의견을 내지 않고 그냥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그때는 그 행동이 가장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했었을 테니 말이죠. 그러면 그 이후에 비슷한 상황이 다가오면 과거의 경험을 빌어 의견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같은 패턴이 고착화되면 스스로 만든 합리적 판단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죠. 내 성격이 형성된 과정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겪어왔던 모든 일들의 결과물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일어났던 일들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에서부터 개인의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특정한 행동이나 반응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받아들이기 쉽고 예측하기 쉬운 상황을 만드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타인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설령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해서 요구할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이 지내고 있는 조직에 적응해 가기 위해 좋고 싫음을 잊어버립니다. 그들의 의견이 곧 정상범주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느껴지고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도태되고 배제당할 것만 같은 거죠. 그들이 원하는 것이 적응하던지 아니면 도태되던지 선택하는 것이죠. 생각의 차이에서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이 그 조직을 자신의 가치관으로 채우려는 욕심이 문제인 것이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 노출되어 살아왔지만 다른 공통의 목적으로 서로가 만나게 됩니다. 모두의 가치관은 상이하거나 비슷할 수 있는데 그들은 적어도 조직에서만큼은 모두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그 생각에 조금이라도 불만을 가지거나 의견을 제시한다면 불쾌한 반응으로 상대를 더욱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죠. 처음부터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사는 사회는 다양한 가치관보다는 사회가 원하는 가치관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내가 만들어낸 가장 이상적인 가치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만들어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피곤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죠.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아주 불편한 페르소나를 평생 동반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비치는 모습에 크게 관심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피해를 주는 범위의 행동이 아니라면 그 행동이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생각이 올바르고 건전하면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쌓아 둔 자신의 가치관은 본인의 모든 행동들을 정당화시켜 줍니다. 아주 탄탄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비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모습은 자신이 넘치고 당당하며 품위가 있으며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는 생각이나 삶을 살아가는 목적 또는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등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굵직한 가치관 아래에서 나타나는 행동이야 말로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바라지 않고 본인 스스로를 위하는 행동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그것이 피해를 주거나 해를 끼치지 않으면 큰소리로 말할 수도 있으며 당당하게 일어나서 의견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속해있는 무리에서 다른 행동을 하면 소외당하다가 배제당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은 자연스럽게 배제당하는 행동에 대해서 습득하고 진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어디까지 받아 들어야 하는지 몸소 느끼게 되는 것이죠. 무리에서 이탈하면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해야 하고 버티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고 그들과 잘 어울리며 지낼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고 가치관을 비슷하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후손에게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살아갈 수 있는지 교육을 통해서 되물려 줍니다.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해서 자신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주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이죠. 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본인 스스로 결정한 행동들로 가득 찬 자신이어야 합니다. 행동의 기준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잘못된 행동인데 내가 모르고 하고 있는 건 판단하는 것을 타인에게서 찾는 것이죠. 모든 행동의 기준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말이죠. 무리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지내는 것은 생존을 위해 좋은 결정인 것은 맞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지 그것이 정답이기 때문에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좋은 가치관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설득하여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조직이 만들어놓은 규정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가치관이 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확한 삶의 기준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기준을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 때 자신이 잘못된 것이라고 스스로를 탓하며 타인이 만들어놓은 가치관을 다시 쫓아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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