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의 베트남 여행
여행자1_ 생각하고 판단하는 여자, 이름하여 각하
여행자2_ 뭐든 적극적으로 따르는 여자, 이름하여 뭐든
여행자3_ 본능적으로 즐거움을 찾는 여자, 이름하여 겁자
그 도시의 첫 숨은 여행의 첫 기억이 된다.
4시간의 비행, 비행기에서 마신 맥주 덕분에 적당히 기분이 좋다.
공항이라는 곳은 도착해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긴장의 연속이다. 여행 제법 해본 사람처럼 여유로운 자태로 스무스하게 빠져나가고 싶지만, 매번 실패다. 나란 사람은 별명이 물벼룩인 만큼 더더욱 내적 모양새를 숨기기 어렵다.
수하물을 찾으면 첫 과제가 끝난다. 베트남은 입국심사가 없다. 이 점은 나름 귀찮은 숙제를 덜어 준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입국신고서를 쓰는 것도 신경 쓰이는 절차다. 대신 우리는 라오스에서 30일 이내에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오는 일정이라 비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센터에서 비자만 발급받고 나가면 끝이다. 살짝 긴장감이 돌았지만,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 서류(여권 사진, 비자 신청서 등) 덕분에 비자발급은 무탈하게 끝난다. 여권에 비자를 붙이고 나니, 뭐 여행 좀 하는 느낌이 난다. 이제 한숨을 돌린다.
공항에서 첫 숨은 여행의 첫 기억이 된다.
이 나라의 기후, 음식, 사람을 모두 담고 있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비로소 떠나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유심을 구매(유심은 현지 편의점 등에서 구매하는 게 더 저렴하지만, 빠른 인터넷 연결을 위해 공항에서 구매)하고 환전을 하면서 우리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여행 중에는 뭔가 손해를 볼까 싶은 괜한 걱정에 신경을 곤두서게 된다. 유심구매와 환전을 하고 나니 공항에서의 볼 일도 끝이 난다.
이제 다음 미션, 숙소 찾아가기가 남았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택시를 잡는 사람들이 많다. 행동이 가장 빠른 겁자가 서두르는 다른 여행자들에게 질세라 인파로 달려든다.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 사이를 살피며 기회를 찾고 있는데 각하가 딱 좋은 (택시 아닌) 택시를 찾는다.
각하의 침착하고 순발력 있는 판단에 겁자는 감탄하며 생각한다.
‘정신을 바짝 차릴 필요는 없겠군! 정말이지 든든한 각하야.’
“미터기로 가는 게 아니라 정해진 액수를 주면 된대!”
“좋아! 가자~!”
시간은 벌써 새벽 2시를 넘기고 있다. 피로함이 주는 빠른 결정!
겁자와 뭐든은 각하의 뒤를 쫓아 택시를 탄다. 미터기가 아닌 정해진 금액을 주고 가니 뒤통수 맞을 일은 없다. 조금 손해 본다는 마음가짐은 뒤통수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테다. 나쁘지 않다. 미터기 조작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처음 약속한 금액은 반드시 기억할 테니 말이다. 여행 중에는 조금 덜 똑똑한 게 마음 편히 즐기기는 낫다.
마음이 편해지자 다시 취기가 올라온다.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를 마셔본다. 이전에 맡아보지 못한 냄새다.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은 내가 이전에 다른 곳에서 지금의 이곳으로 떠나왔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따뜻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때리는 와중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취기가 긴장감을 덜어준다.
꽃을 실은 자전거들이 옆을 스쳐 간다. 그리고, 날 보고 웃는다. 처음 마주한 나에게 저리도 환한 웃음을 주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