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장애인은 이 사회의 모든 곳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앞으로 장애인들은 무시당하고 살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한다고 하면 진짜로 한다는 걸 다들 알아야 해요.
영화⌈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 바버라 리시키
팟캐스트에서 [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라는 영화 소개를 듣고, 바로 넷플릭스에 로그인했다.
1990년대 영국의 장애 인권운동가였던 두 사람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1시간 7분짜리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은 버스정류소에 바버라가 "동정은 집어치워"라고 쓰면서 시작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닮아있어(무려 90년대, 무려 실화) 답답했다.
출근길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시끄러웠던 한국, 특수교사인 나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꼭 출근시간에 해야 해? 너무 피해 아니야? 어떻게 생각해?"
우리가 누리는 대부분은 그들에게 피해다. 고상버스, 계단, 문턱, 회전문 등을 생각해 보아라.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피해를 준다는 불편한 표현을 쓰지 않는다.
다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본 생존과 관련된 요구를 할 뿐이다. 우리에게는 불편인 것들이 그들에게는 생존과 맞닿아 있다. 그들도 취업을 하면 출퇴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트에서 극장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어디서든, 장애인을 보았는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만 해도 초등 3개교, 중학 2개교, 고등 1개교가 있고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이 최소 60~70명 정도로 추산된다. 도대체 그 많은 학생들은 어디 있는 걸까?
영화속에서 그들은 줄곧 외친다.
"동정 말고 권리를 달라!"
"자선(후원) 말고 권리를 달라!"
도움을 받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삶을 그들도 희망하는 것이다.
우리 또한 희망하지 않는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스스로 그것을 해내기를 말이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앨런의 대사가 가슴에 와 박힌다.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라고 학생들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20년을 넘게 특수교사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보려 한다. 피해왔지만, 피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끝내지 못한 수업이다.
나의 제자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내 마지막 수업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