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사람들
중요한 것은 말이다. 우리가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인가 하는 점이다.
특수교사는 성격이 각각 다른 여러 곳에서 일한다.
가장 많게는 일반학교에 설치된 특수학급, 그다음에 특수학교, 그 외 특수교육지원센터와 병원학교가 있다.
나는 이 모든 곳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고, 이 중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곳은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이다.
일반학교는 구성원 대부분이 일반교사이다.
다수의 일반교사 틈에 끼어 소수자로 생존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특수학급에 근무하는 교사 스스로를 섬 같다 표현하기도 한다.
"고립감"
특수학급에 근무하다 보면 누구나 겪는 감정이다.
두 종류의 고립감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업무에서 느끼는 고립감이다. 이 두 개는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고, 각각 존재하기도 한다.
관계에서의 고립감은 사람에 따라 달리 온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모든 교사가 사범대 졸업생으로 각 전공에 따라 기본적인 이질감이 있다. 반면, 초등의 경우는 일반교사 대부분이 교대를 졸업한 경우이고, 근무하는 지역 교대 졸업생들이 많다 보니 서로가 선후배인 경우가 많다. 내가 처음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는 동문 소식을 전체 메시지로 보내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런 일상의 근무환경이 소수교사들을 관계 밖으로 밀어낸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러한 환경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두루 친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는 내향적 성격 탓에 먼저 다가가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기에 관계에서의 고립감은 개인차가 있다.
그러나, 업무에서 느끼는 고립감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존재한다.
일반학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사람은 특수교사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 교사가 1년 차든 10년 차든 특수교육에 있어서는 오롯이 혼자 결정하고 추진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특수학급의 법정 정원은 6명이다. 이 6명의 학생은 모두 다른 학년, 다른 반에 속한다.
특수교사는 각 학년의 교육과정과 각 반의 교육활동 전반을 알고 있어야 하며, 특수학급 학생의 개별 교육과정을 작성하고 운영하여야 한다. 특수교육대상학생(교육청이 특수교육이 필요하다고 진단하여 선정, 배치한 학생) 각 학급의 담임교사와 수시로 상담을 하고, 각종 지원인력을 채용하고 활용해야 하며. 각 학년의 현장체험학습을 지원하고, 더불어 특수교육대상학생의 사회 적응을 위한 현장체험학습을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
그 외에도 특수교육대상학생의 통합교육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며, 도전행동이 있는 학생의 행동중재를 위한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교육청에서 시행되는 공문에 '특수'가 붙으면 전적으로 특수교사가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된다. 치료지원 및 방과후교육활동 지원 업무 역시 특수교사의 몫이다.
교육청은 학교의 업무정상화를 위해 불필요한 업무를 없애고 교무실무사를 배치하여 교사들의 업무부담을 줄이고 있지만, 특수교사의 업무는 전공자인 우리들의 몫으로 그대로 남았다.
누구도 결정해 주지 않고, 누구도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 특수교육 업무.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근무하는 특수교사를 대신할 사람은 학교에 없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동료가 없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다. 퇴근 후 나누는 술잔에도 담아내지 못하는 우리들만의 한숨.
업무상 고립감은 특수학급 교사들 모두에게 존재한다.
선생님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내 기억 속 선생님은 밝고 씩씩한 사람이었다.
교사가 되고 4년째에 접어든 그 선생님을 그토록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선생님이 하신 일들에 대해 보고 듣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잘 해내려고 노력한 흔적들.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셨을까?
교육청도 법정 정원을 초과한 학급에, 학급 증설도 교사 배치도 못한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는데, 선생님은 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특수교사 1명, 학교에는 그 특수교사의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 내가 아프다고 학교에 안 나오면, 아이들은 종일 일반학급에서 힘들어할 것이고, 담임선생님 역시 힘든 하루가 될 것이 뻔하다. 나의 부재가 너무 큰 불편함과 곤람함을 만든다. 특수학급에 근무하는 특수교사는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기댈 수 있는 건, 교사 추가 배치였다. 수업을 나누고, 업무를 나누고, 필요에 따라 서로 대체가 되어 줄 수 있는 특수교사 동료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말한다.
"왜 참으셨을까?"
"왜 병가를 내지 않았을까?"
선생님은 교실을 비울 수 없었을 것이다.
홀로 아무리 노력해도 학교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몸은 너무 아픈데 병가는 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무너지듯 낸 3일의 병가, 그 후로 열흘 만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특수교육대상자뿐 아니라 일반학생들 역시 과거보다 훨씬 입체적이며, 교육적 요구가 다양해지고 있다.
교육청은 숫자만 보고 학교의 사정을 다 안다고 하면 안 된다. 학교나 학생의 요구를 잘 따져 각 사정에 맞는 맞춤 지원을 해야 한다.
선생님이 교육청에 살려달라고 한 것이 마음 아프다. 교육청만이 할 수 있는 일, 교사 배치. 그 일을 왜 안 했을까? 선생님이 떠난 자리에 이삼일만에 대기발령 중이던 특수교사가 발령받아 왔다.
교사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은 어떤 규정에 갇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학교에는 나만 바라기 하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있다. 그런 특수교사를 교육청이 외면하는 것은 교사의 팔다리를 모두 끊어내는 것과 같다.
특수교사에게 교육할 권리를,
특수교육대상학생에게 통합교육을 받을 권리를,
특수교육대상학생의 학부모에게 자녀를 안심하고 집 앞 학교에 보낼 권리를,
보장하세요.
이것은 동정이나 선심이 아닙니다.
대한민국헌법에서 정한 국민으로서의 권리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무엇이기 전에 인간입니다.
*사진은 고인이 된 선생님이 심은 바질이다. 햇살 아래 잘 자라고 있다. 꼿꼿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