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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by 유수

“지은이 나가는 거 본 사람 있어?” 윤서, 민지, 효성과 신애는 거실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지은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난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중이었다. “아니, 못 봤어.” “나도. “ “난 새벽에 문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해.” “그럼 새벽에 집을 나간 건가?” 지은이 사라진 지 벌써 닷새가 지났다. 그녀는 별다른 말도 없이, 갑자기 모습을 감춰버렸다. 하우스메이트들은 지은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도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건 무응답뿐이었다. 지은이 사라진 지 이틀이 지나고서야 하우스메이트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의 안부를 걱정하게 된 계기는 바로 신애의 집착이었다. 신애는 항상 누군가 자신의 음식을 몰래 먹는다고 여겼다. 오죽하면 냉장고에 있는 자신의 달걀 개수, 캐비닛에 보관하는 믹스커피의 재고 등을 전부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침에 시리얼을 먹기 위해 꺼내든 우유가 예상보다 가볍게 느껴지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신애는 누군가 자신의 우유를 훔쳐 먹었다고 주장하며 하우스메이트들을 추궁했다. 윤서, 민지, 효성의 알리바이를 확인한 뒤, 유력한 용의자가 된 지은을 심문하기 위해 그녀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지은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제야 하우스메이트들은 한동안 아무도 지은과 마주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은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던 사람은 윤서였다. 때는 효성이 재혁과 여행을 떠난 날 저녁, 윤서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지은을 보았다.


”저녁 뭐 먹어?” 윤서는 꼬륵거리는 배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물었다. “그냥,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해 먹으려고.” 지은이 프라이팬 위 계란을 뒤집으며 말했다. “난 뭘 먹지…” 윤서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냉장고를 열었다. 마땅한 식재료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마트에 가기엔 너무 귀찮았다. 윤서의 냉장고 칸에 있는 건 우유, 버터, 계란, 그리고 토마토 한 개뿐이었다. 이것들로 무슨 요리를 해 먹어야 할지, 윤서의 고민이 길어지자 냉장고에서 경고음이 나기 시작했다. 삐-삐-삐- “지은아, 나도 샌드위치 같이 먹어도 될까? “윤서가 냉장고 문을 닫으며 말했다. ”나 토마토도 있는데…“ 그녀는 지은이 서 있던 가스레인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지은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부엌을 나간 것이었다. 윤서는 힘이 빠진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다시 저녁 메뉴가 고민이었다. 바로 그때, 현관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윤서는 고개를 내밀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현관 앞에 아무도 없는 걸 보니 누군가 밖으로 나간 거라 생각했다. 윤서는 다시 뒤를 돌아 냉장고를 뒤지려던 참이었다. 그때, 신애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윤서는 기대 찬 얼굴로 신애에게 물었다. “신애야, 너 혹시 저녁 먹었어?” “아니. 너는? “ 신애의 말에 윤서는 눈을 반짝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우리 같이 먹을래? 나 지금 먹을 게 하나도 없어. “ 윤서는 이번엔 입술을 죽 내밀어 보였다. 신애는 윤서를 보며 <장화 신은 고양이>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위기에 처한 고양이가 적군을 무장해제 시키기 위해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귀여운 모습을 취하는 거였다. 마침 배가 고팠던 신애는 윤서의 작전에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우리 피자 먹을래? 내가 살게.” 신애가 말했다. “정말? 나야 좋지! “ 윤서는 뛸 듯이 기뻐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돈은 반반씩 내자. 나도 보탤게.” “아냐. 다음에 네가 사줘.” 신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냉장고에 붙은 피자집 전단지를 만지작 거렸다. “대신 내가 먹고 싶은 거 시킨다?” 신애가 물었다. ”당연하지! 아, 우리 영화도 보자. 내가 노트북 가져올게. “ 신이 난 윤서는 서둘러 방으로 올라갔다. 신애는 그 사이 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애는 하우스메이트들과 자주 통화를 했다.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용건을 전화로 해결했다. 2층 구조의 집에서 유일하게 1층 방을 쓰는 탓에 매번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고, 그건 굉장히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긴 신호음 끝에 민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민지야, 나랑 윤서랑 피자 시켜 먹을 건데 너도 같이 먹자. “ 신애는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아, 나 지금 밖이야. 저녁 약속이 있어서… 너네끼리 먹어. “ 민지는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답했다. “아! 알겠어. 이따 보자. “신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민지가 저녁 약속이라니, 이건 분명 남자와의 시간을 의미하는 거였다. 평소 교내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는 민지가 주말에 따로 친구와 만날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신애는 이어서 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을 지속되었지만 지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윽고 윤서가 노트북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피자 시켰어? “ 윤서가 물었다. “아니 아직. 민지랑 지은이한테 연락해 보느라.” 신애는 핸드폰을 들고 덧붙였다. “민지는 밖이고, 지은이는 전화 안 받던데?” “아, 아까 나간 사람이 민지였나 보다. “ 윤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은이는 어쩌지?” 신애가 물었다. “아, 지은이는 아까 샌드위치 먹었을 거야. “ 윤서가 식탁에 노트북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방에 올라간 것 같았는데, 잠들었나? “ 윤서는 다시 중얼거렸다. 그녀는 지은이 조금은 신경 쓰였다. “그럼 우리끼리 먹지 뭐. “ 신애가 피자집에 전화를 걸며 말했다. “그러시지요. 아, 영화는 뭘 볼까?” 하지만 신애의 말에 윤서는 금세 콧노래를 부르며 노트북 화면의 영화 목록을 뒤적였다. 주말 저녁, 배달음식과 영화는 환상의 조합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때 나간 건 지은이었던 것 같아” 윤서와 신애의 이야기를 들은 민지가 입을 열었다. “나는 한참 전에 집을 나갔었거든.” 민지의 말에 나머지 네 사람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럼, 그날 저녁부터 지금까지…” 윤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효성과 신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안절부절못하던 윤서가 다시 말했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볼까?” “그래볼까? 우리가 신고해도 되는 거겠지?” 민지가 물었다. “그런데 신고했다가 문제만 더 커지면 어떡해?” 가만히 있던 효성이 말했다. “기다려볼까? 지은이 개인적인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 “ 신애가 덧붙였다. 그 후 네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조용한 기운이 감도는 셰어하우스 안에 한숨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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