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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by 유수 Sep 30. 2024

다시 평일 아침. 효성은 평소와 다르게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 게으름을 피우며 침대에서 겨우 벗어난 그녀는 천천히 화장실로 향했다. 굳게 닫힌 화장실 문 손잡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노크를 하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있어.” 평소 가장 먼저 샤워를 했던 효성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 안의 암막커튼을 걷어내지 않아 주변이 어두웠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희미한 햇빛에 비친 얼굴은 꽤나 초췌했다. 효성은 다시 고개를 돌려 벽을 응시했다. 그녀는 부동의 자세로 화장실에 있는 민지가 나오길 기다렸다. 5분 정도 지난 뒤, 샤워를 마친 민지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효성의 방문에 노크를 했다. “나 다 씻었어.” 그 소리에 효성은 다시 천천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걸어갔다. 느릿느릿 칫솔에 치약을 짜고 입에 물었다. 절제된 움직임으로 팔을 좌우로 흔들며 이를 닦았다. 전날 비가 온 탓에 바깥 창틀에 민달팽이가 기어가고 있었다. 효성은 지나가는 저 달팽이 마저 자신을 답답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효성이 샤워를 채 끝내기도 전에 윤서가 화장실 문을 세게 두드리며 소리쳤다. “아직 멀었어? 나 급해!”


방으로 돌아온 효성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전화기는 조용했다. 효성은 그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재혁이 출근하고도 남을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효성은 어떠한 말소리도 내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 자기 전 미리 꺼내놓은 옷까지 갖춰 입고 가방까지 메어주니 나갈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효성은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연락처 목록에서 재혁의 번호를 찾아냈다. 효성은 휴대폰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녀의 엄지손가락은 긴 망설임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이 빠르고 단호하게 ‘삭제’ 버튼을 눌렀다. 모든 할 일을 마친 효성은 드디어 방문을 열었다. 마침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려는 윤서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 어색하게 눈을 맞추고 머뭇거리다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안녕!” “학교 가?” 두 사람은 곧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또 마침 현관에 있는 신애를 보았다. ”어디가? “ 신애는 두 사람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윤서와 효성은 작은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다. 신애와 윤서는 자전거를 꺼냈다. “이따 보자!” 신애는 해맑게 인사하며 출발했다.  선수급으로 자전거를 타는 신애는 어느샌가 윤서와 효성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윤서는 자전거를 타려다, 효성과 함께 걷기로 했다. 그녀는 자전거를 끌면서 효성과 나란히 걸었다. 두 사람 간 대화는 없었다. 얼마 뒤, 학교에 도착한 효성은 자전거를 고정시키는 윤서를 기다렸다. 윤서는 효성을 보며 서둘렀다. 각자의 강의실로 들어가기 전, 효성이 윤서에게 말했다. “나 재혁이랑 완전히 헤어졌어.” “응. 그랬구나. “ 윤서는 효성의 예상보다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지난번의 대화에서 윤서는 이미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잘한 건지 모르겠어. “ 효성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윤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잘했다는 게 뭔데?” 윤서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손을 들어 효성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지난날의 효성과 자신의 모습이 뒤바뀐 현재의 상황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때 네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겠어.” 효성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예전 이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윤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뭐가 되었던 네 선택이 정답일 거야.” 윤서가 말했다. 그녀는 효성에게 인사를 하고 강의실로 갔다. 효성은 윤서를 뒤로하고 도서관 쪽으로 걸어갔다. 오후가 되어서야 강의가 있는 날이었지만 혼자 집에 틀어박혀 있다간 영영 바깥공기를 쐬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일단 뭐라도 하자, 도서관에서 책이라도 빌려보자,라는 생각으로 효성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재혁은 생각보다 이별을 잘 받아들였다. 여행 이후 효성의 태도가 신경 쓰였던 차에, 그녀의 입에서 헤어짐이 나왔다. 하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였다. 재혁은 서로가 떨어져 있는 현실과 수화기 너머로 차가운 말을 내뱉는 효성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 역시 탓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차를 끌고 셰어하우스로 달려갈 수도 있었고, 여행 중에도 둘만의 속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충분히 많았다. 선택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모두에게 있었다. 그래서 재혁은 담담하게 상황을 직면하기로 했다. 사실상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단지 출근길이 조용해졌다는 거였으니까. 그날 아침, 효성이 늦잠을 자는 동안, 재혁은 처음으로 출근이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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