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은 과연 누구라도 자신을 찾을까 궁금했다. 셰어하우스에는 네 명이나 되는 하우스메이트들이 있었고, 학교의 친구들까지. 지은의 주변에는 적어도 10명 정도의 주변인물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라도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휴대전화 마저 꺼놓은 지은이었다. 그녀는 어쩌면 운명 같은 마주침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집을 나온 지은은 절대 멀리 떠나지 않았다. 학교와 집, 자주 가는 마트 근처를 맴돌며 운명을 기다려보았다. 늘 똑같은 일상에 특별함을 집어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사건’은 기대하고 바라는 자에겐 쉽게 오지 않는다.
지은은 카페에 들어갔다. 그녀는 카페의 입구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커피잔을 입에 갖다 대면서 가게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이는 없었다. 지은은 창밖을 바라보다 이 자리가 윤서가 전 남자친구와 이별을 한 장소임을 깨달았다. 윤서는 이사를 오던 날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 짐을 다 풀기도 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거실에서 효성과 고성을 주고받으며 다투었다. 이제까지 효성에게 대드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냉정한 그녀의 태도와 카리스마 있는 눈빛에 반박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당시 효성을 안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윤서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토해내었다. 지은은 그런 윤서의 모습에 영감이라도 받은 듯했다. 그래서 무턱대고 자전거를 샀고, 아무말도 없이 가출을 시도한 것이다. 지은은 반드시 무언가 일어나리라 생각하며 커피를 마저 마셨다.
“지은아!" 윤서의 목소리는 카페 손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만큼 컸다. 우연히 커피를 마시러 가게 문을 열었는데, 한동안 보지 못한 동거인이 있을 줄이야. 윤서의 마음 속에 반가움과 약간의 서운함이 자리했다. 자신의 소리에 놀란 윤서는 입을 틀어막으며 지은의 테이블에 가 앉았다. 그리곤 조용히 그녀에게 속삭였다.
“너 여기서 뭐 해?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데!” 윤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지은을 보았다. "아, 뭐 그냥. 바람이나 쐬려고. “ 지은은 우물쭈물 답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지은이 바라던 특별함이 아니었다. 윤서는 아랑곳 하지않고 고개를 돌려 지은을 째려보았다. “밥은 먹었어? 어딜 그렇게 돌아다닌 거야?” 윤서가 물었다. 여동생을 나무라는 언니와도 같았다. “응 대충. 여기저기 돌아다녔어.” 지은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다. 언니에게 혼이 나는 여동생과도 같았다. “오늘 집에 올 거지? 너 잠은 어디서 자고 있었던 거야?” 윤서는 계속해서 지은을 추궁했다. 그녀는 어쩐지 지은에게 잔소리를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동생이 있는 탓일까, 윤서는 생각했다. “응.” 지은은 슬슬 윤서의 눈치를 보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윤서의 추궁은 마침 카페 직원이 가져다 준 커피로 잠시 중단되었다. 윤서는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커피잔의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따뜻한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지은은 한숨을 돌렸다. “너 어디에 있었어? 짐은?” 커피 한잔의 여유도 잠시, 윤서는 다시 지은에게 캐묻기 시작했다. “짐은 없어….” 지은이 말했다. 그녀는 윤서가 다시 커피를 마시길 바라며 커피잔을 한없이 내려다보았다. “짐이 없다고? 너 숙소에서 지낸 것 아니야?” 윤서가 물었다. “응…. “ 지은은 고개를 더욱 숙이며 대답했다. 커피에서 김이 모락몸락 나고 있었다. “뭐? 너 설마 노숙했어?” 윤서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은이 걱정되는 마음에 점점 화가 나고 있었다. “아니…“ 지은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윤서가 커피잔에서 손을 뗀 것을 보니 더 이상 커피를 마시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럼 너 어디 있었어? “ 윤서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사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도 한 스푼 들어가 있었다.
“집…“ 지은은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 “집?" 윤서가 되물었다. "응. 집." 지은의 답에 윤서는 답답했다. "그래, 집. 그러니까 숙소 어디냐고!" 윤서는 참아왔던 화를 내며 지은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집! 우리 집!” 지은이 폭발하듯 자리를 박차며 윤서에게 소리쳤다. 윤서는 당황한 듯 커진 눈으로 지은을 쳐다봤다. “나 집에 있었다고! 우리 셰어하우스에!" 지은의 외침에 비로소 카페의 모든 손님들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은은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차분히 말했다. “어차피 너네 아침 8시나 되어야 일어나잖아. 그래서 집을 그냥 일찍 나선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