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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fter 이후 Jul 27. 2023

직장인의 여름방학 일기: 부산편

여름에 들었을 때 가장 설레는 단어, 여름방학



여름방학, 참 설레는 네 글자다. 


내가 다니고 있는 두 번째 직장에서는 직원들의 재충전과 일에 더 몰입하기 위한 좋은 제도로 <여름방학>을 제공한다. 그리고 내가 맞이하는 직장인으로써의 정식적인 첫 <여름방학>이었다. 직장인에게 여름방학이라니. 나는 이 네 글자에 가슴이 설레어 주어지는 소중한 일주일 동안 어떤 것을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나는 바다의 도시, 부산으로 향했다.


여행은 항상 설렌다. 많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좋은 기회이자, 경험이니까. 그러니 이것은 그저 부산 여행 중에 느꼈던 감정 기록 글이다.


* 본문에 나오는 사진들은 글 최하단에 배경화면으로 다운받으실 수 있도록 링크를 첨부해 두었습니다.



첫째 날


1. 여행의 시작, 바다의 도시 <부산>

여행은 소중한 사람 한 명과 함께 했다. 서울에 살면서,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삶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혼자 할 때보다 함께 할 때 즐거움이 배가 되니까. 우리는 전날에 야심차게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었지. 


기차 시간을 착각해서 10분을 늦어버렸다. 기차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기에 우리는 급한 대로 택시를 잡았다. 역에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리니 남은 시간은 2분. 우리는 최선을 다해 뛰었다. 출발하려던 기차를 간신히 잡아 기차에 오른 순간. 왠지 해낸 것 같은 기분에, 힘들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1시간 반을 아꼈다며 웃었다. 얼레벌레 시작하게 된 여행이었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여행이라서 그런 걸까?


기차에 가만히 앉아서 창 밖의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다양한 생각들이 오갔다. 그렇게 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 기차 안에서 소곤소곤 대화하는 사람들, 전광판에 지나가는 뉴스들을 보고 있으면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럴 때마다 괜히 메모장을 켜서 문장을 생각나는대로 적고는 했다.


그렇게 생각나는 것들을 끄적이다 보면 어느새 부산이다. 우리는 내려서 또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 지 기대를 품은 채로 기차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뭐, 우선 도착했으니 배부터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2. 고양이와 책, 바다가 있는 곳 <손목서가>

기차에 내려서 근처의 차이나 타운에서 배를 채운 뒤, 우리는 곧바로 <흰여울마을>로 향했다. 저번에도 들렸던 곳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한 카페에만 오래 머물러 있느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탓에 아쉬움이 남아 이번에도 들리게 되었다. 버스로 약 30분 남짓,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전에도 본 적 있던 서점 같은 카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살고 있던 고양이도 여전히 팔자가 좋아 보였다. 바다 앞에 책과 고양이라니. 어떻게 보아도 좋은 조합이지 않은가. 그 앞에 펼쳐진 바다를 멍하니 구경하다가 딸랑, 소리와 함께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저번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책이 별로 없었다. 마음에 꼭 맞는 책이 없어서 아쉬웠다. 책을 몇 권 뒤적이다가 자리에 놓고는, 간단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2층의 다락방 앞에 앉아 가져온 책을 읽으며 간간히 친구와 대화했다.

창 밖 바로 앞으로 바다가 보이는 모습. 날씨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앞에 있는 두 아이와 아버지가 하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아빠, 타락이 뭐야?"

"타락은... 음, 마음이 나빠지는 거야."


왠지 별 거 아닌 문장이었지만, 아버지가 망설이시더니 이내 아이들의 언어 눈높이에 맞추어 말씀해 주시는 것이 순수해서 귀엽다고 해야 하나. 저것이 부모님의 사랑이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대답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기억에 남는 작은 대화였다.


3. 이틀의 휴식을 책임져 줄 숙소

그렇게 조금 있다가 우리는 카페를 나와서 숙소를 향했다. 도착한 곳은 운이 좋게도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있는 숙소였다. 1층은 카페, 윗층은 숙소로 쓰이는 곳이었다. 방음이 잘 안 되고, 여러모로 조금 허름해 보이는 숙소였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숙소였다. 이 근처가 관광지라서 그런지 가격이 그렇게 싸지 않았는데도. 그래도 이틀 동안 잠을 자야 할 곳이니까. 조금의 정을 붙이며 짐을 풀었다. 


4. 첫 야구 홈경기 관람

친구가 롯데 팬이라서, 야구의 진면모를 보여주겠다며 가게 된 롯데 홈경기장, 사직 경기장을 가게 되었다. 역시 홈경기장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다른 야구 관람석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문득 응원을 하면서, 일제히 함께 소리치면서 열정적으로 응원을 하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야구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이렇게 이끄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져서 집중하며 경기를 관람했다.


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 선수가 홈런을 치고, 그 다음 선수가 공을 치고는 지면을 박차며 달려나가 2루까지 도달한 그 순간 몸이 전율하는 것이 느껴졌다. 스포츠가 원래 이런 거였지. 결과는 원하는 만큼 나오지 못했지만 야구의 짜릿한 순간을 맛보기한 것 같다. 앞으로 야구에 조금씩 더 눈길이 갈 것만 같다.



둘째 날

1. 해상 열차 탑승

시작부터 늦게 일어났다. 아침에 눈을 뜨니 11시 남짓이었다. 해상 열차는 분명히 10시 반 티켓이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래도 탈 수는 있으니 준비를 하고 열차를 타러 나갔다. 늦어서 그런지 앉기는 힘들었다. 버스를 타는 것 마냥 서서 바다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가는데, 다리는 조금 아팠지만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나쁘지 않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음, 다음에는 캡슐 열차도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아쉬웠다.


2. 바다 위의 절 <용궁사> 

언젠가 교과서에서 본 것 같은 바다 위의 절이 있다길래, 해상열차도 탈 겸 가고 싶어서 한 번 들려보았다. 올라가는 길이 뚜벅이 여행이라, 습한 날씨 탓에 조금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갈 만 했다. 그런데 바닷물이 빠질 때라서 그런지 내가 생각하는 느낌은 별로 나지 않아 아쉬웠다. 조금 돌아보다가, 가는 길에 절에서 친구와 함께 부엉이가 달린 작은 소원 팔찌를 사서 나눠 꼈다. 친구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소원은 그냥 소박하게 빌었다. 이 행복이 오래오래 가게 해달라고.


가는 길은 국립수산과학원 쪽으로 빠져나왔는데, 잉어가 가득한 연못이 있길래 그 길로 구경 좀 하다가 나왔다. 이게 더 재밌었던 것 같기도 하다.


3. 부산 롯데월드, 현실판 카트라이더 <루지 체험>

마침 용궁사를 구경하고 나온 길에 바로 앞에 큰 경주장 같은 것이 있어서 친구에게 물어보니, 현실판 카트라이더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카트라이더? 사실 게임도 잘 못하는데, 이걸 현실에서 한다니.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왠지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통영이나 한정된 곳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이라고 해서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왠 걸, 생각보다 정말 재밌었다. 운전면허도 없는 내가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운전법이 직관적이여서 꽤 쉬웠다. 그리고 속도도 꽤 빨랐다. 진짜 재밌었다.


운전을 하다가 고개를 조금 더 들어보면, 저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데 그 순간적인 풍경이 뇌리에 박혔는지 여전히 생각난다. 코스가 4가지 정도가 있어서 갈림길에 들어서는데, 그때그때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하는 재미도 있었다. 총 2번을 탔는데, 1번째에 자신감이 붙어서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헛소리가 무색하게 2번째에 레일에 박아서 당황을 조금 했었지만 무사히 체험을 끝낼 수 있었다. 가격은 꽤 나갔지만, 역시 그래도 여행 와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


4. 수평선, 도시, 그리고 <요트>

바다의 도시에 간 김에 바다를 열심히 보고 와야하지 않나 싶어서, 바다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을 찾던 찰나에 좋은 것을 찾았다. 바로 <요트 체험>. 항상 바다를 볼 때마다 어느 시간대가 되면 바다에 배가 그렇게 많이 떠 있더라니, 저건 다 무슨 배일까? 하던 것이 요트 체험을 하던 배였다. 가격대도 생각보다 꽤 저렴했다. 토요일만 아니면 일요일과 평일에는 1시간에 만이천원으로 생각보다 괜찮았다. 한 배에 약 20명 정도 탑승하는 거고, 사진은 요트 앞에서 찍는데, 배가 생각보다 출렁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중심잡기 게임이 되어 미묘하게 웃겼다.


날씨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수평선 만큼은 저 멀리서 확실하게 보였다. 그 사이로 유유하게 떠다니는 배들을 보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기분. 내가 이래서 바다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해운대에서 탑승해서 광안대교 밑으로 지나가는 코스로 천천히 운행하고, 요트들이 둥글게 모여 작게나마나 불꽃놀이도 해준다. 불꽃이 생각보다 빈약하기는 했지만, 요트에서 음악도 빵빵하게 틀어주고, 노을을 보면서 멀어져가는 도시, 가까운듯 먼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바람에 생각보다 많이 불어서 사진 찍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고보니, 왜 이렇게 유독 내가 바다를 좋아하고,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질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렸을 때 14살까지 바닷가 앞의 마을에서 살았었다. 여수, 소호동이라는 곳에서. 그 당시에 그렇게 시골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데 바다 앞 요트경기장에서 자전거나 인라인을 타고, 그 옆의 소제 마을에서 방아깨비를 잡고 다녔던 걸 생각하면 시골은 시골이 맞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자라오면서 그곳에서 좋은 기억이 참 많았다. 가령, 그 조그만 나이에도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 고민 상담을 하겠다고, 친구와 함께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버스정류장을 내려가는 돌계단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저녁밥을 먹고 밤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가족끼리 바닷길 옆 산책로를 거닐기도 했고, 선생님 몰래 초등학교 비상계단에 앉아 간식을 나눠먹으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항상 내 어릴적 누군가와 함께 했던 그 순수한 시절에는 바다가 내 앞에 있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바다를 보면 왠지 기분이 뭉클하고 편안해지는 것이 고향에 온 느낌이 들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5. 소소한 버킷리스트, 바다 앞에서 조개구이 먹기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같이 간 친구가 조개를 싫어했다. 그래서 평소에도 선뜻 먹자고 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 무슨 일로 결심을 해줘서 먹을 수 있었다. 가리비와 물총조개, 전복 등 다양하게 이것저것 구이용 조개들이 나왔다. 사실 가족끼리 어릴 적에 먹어본 이후로 조개구이를 먹어볼 기회가 딱히 없어서 못 먹었었는데 이렇게 보니 뭔가 신기하고, 먹을 생각을 하니 입맛이 돌았다. 언제 익지를 반복하면서 열심히 뒤적이며 먹었다. 회도 시켜서 먹었는데 조개도 조개지만 회가 적당히 잘 숙성되고 두툼해서, 쫄깃하고 맛있었다. 지금 생각하니까 또 먹고 싶을 정도로. 가격은 비쌌지만 왠지 학생 때부터 바다 앞에서 조개구이를 먹는게 소소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바로 광안리 앞에서 먹어서, 먹고 광안리 산책을 했다. 신나서 광안리를 끝에서부터 끝까지 해변을 거닐었는데, 생각보다 길었다. 거의 30분 남짓 걷고는 생각보다 머네?라는 이야기를 하며 친구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별 다른게 낭만이 아니라 바다를 보며,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낭만이 아닐까. 와중에 우리끼리 작은 내기도 하나 했다. 광안대교의 길이를 가장 근접하게 맞추는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는 내기. 결과는 내가 졌다. 절대 잊지 못할 거다. 광안대교의 길이는 7.42km이다.



셋째 날

1. 블랙 타이거 새우 텐동 <요이쿠마>

일어나서 오늘은 텐동을 먹기로 한 사실을 떠올렸다. 근처에 맛있는 텐동 집이 있다고 해서 서둘러서 갔는데, 역시 월요일이라 그런지 그렇게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서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블랙 타이거 새우 텐동이라니 이건 서울에서 본 적도 없다. 엄청나게 크고 실해서 놀랐다. 그래도 텐동 특성 상 어떻게 해도 거대한 튀김이 물리는 건 막을 수 없다보다. 그래도 물리기 전까지는 맛있게 먹었다. 


와중에 장어 텐동을 보면서 '왜 장어 메뉴는 다 비쌀까?'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와 토론하다가 찾아보았다. 장어는 인공수정이 안되어서 양식이 힘들거나 어렵다고 한다. 역시 무언가가 비싼데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참치도 거대한 크기이고, 원양어선을 타야 하는 데다가, 해체하는 것도 엄청난 인력이 들지 않는가. 무언가 식재료가 비싸다면 그만큼의 비용과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른이 된 지금은 이해한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 값을 주고 맛있게 먹는 일밖에 없다. 아무튼 맛있는 것을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여유로운 카페, 시원한 뷰 <오후의 홍차>

홍차를 시음해보고 따로 사오고 싶었는데 홍차 가격에 숨을 들이키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생각보다 꽤 비쌌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시음을 해보고 사와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그냥 얼그레이 밀크티를 주문해버렸다. 그것도 일반적인 카페에서 먹는 밀크티랑은 확실히 다른 이국적인 맛이 났지만, 평소에 먹을 때에는 냉침으로 해서 시원하게 우유보다 물에 타먹는게 좋아서. 홍차는 좀 더 알아보고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층이었는데, 1층은 꽤 넓게 좌석이 있어서 조금 큰 오두막에 온 느낌이였고 분위기도 아늑하고 좋았다. 디즈니에서 나올 법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부산에 오기 전에 여행 버킷 리스트를 적어 왔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카페에서 그림 한 장 그리기였다. 그래서 여행 중에 아이패드를 오랜만에 펼쳐들고 어제 있었던 장면을 각색해서 그리기 시작했다.


어젯 밤에 광안리 해변을 산책하며 있었던 일. 그냥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뿐이지만. 그림을 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날씨가 참 오락가락해서 힘들었지만, 택시의 힘을 빌려  어지저찌 다음 숙소에 잘 도착했다. 도대체 이놈의 장마는 언제 끝나는지 참 궁금했다.


3. 비와 함께한 광안리 해수욕

도착한 숙소는 광안리의 바로 앞에 위치한 곳이었다. 위치가 정말 좋았고, 넓고 있을 것이 다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어쩐지 엄청나게 비싸더라니. 뷰도 좋아서 숙소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휴가를 위한 새로운 수영복을 샀기에 어떻게든 해수욕을 하고 싶었다.


결국 새로 산 새하얀 수영복을 입고 나가서 튜브를 하나 빌렸다. 단돈 오천원. 비싼 감이 있었지만 이 튜브가 있나 없나의 유무에 따라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투자의 의미로 빌렸다. 튜브만 있으면 부산 바다는 파도 자체가 높기 때문에 동동 떠있기만 해도 재밌으니까. 그렇게 두 시간 남짓 파도에 떠있다가, 물을 튀기다가, 모래 놀이를 하다가 들어왔다. 모래 젠가(?)도 하고 나름 참 어린애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싶다. 이렇게 동심을 가지고 놀아야지.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더 놀고 싶었고, 더 놀 수 있었지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급하게 숙소로 철수했다. 언제 또 비를 왕창 맞으면서 해수욕을 해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웃기기도 하고. 즐겁고 특별한 해수욕이었다.


4. 뷰가 좋았던 오늘의 숙소, 광안리 앞 오피스텔

포항 여행을 갔을 때도 오션 뷰 숙소를 빌려보았지만, 이번에 갔던 숙소가 내가 가보았던 숙소 중에 제일 뷰가 좋은 곳이었다.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은 곳. 오후, 저녁, 새벽, 아침이 모두 다른 풍경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래서 숙소에 돈을 쓰는구나 싶었다. 


이런 숙소에서 돌아와서 뽀송하게 씻고, 맛있는 저녁과 함께 술 한 잔을 곁들이니 이곳이 천국인가 싶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중간에 영화를 한 편 볼까 해서 평소에 보고 싶었지만 못 봤던 <트루먼 쇼>를 보기 시작했다. 역시 명작은 명작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내 인생이 트루먼쇼 같다.'라는 농담을 할 때마다 어렴풋이 그 의미를 이해했었는데 이번에 영화를 보고 나니 이게 얼마나 무서운 뜻인지 깨달아 버린 그런 느낌. 


Oh, in case I don't see you,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마지막에 주인공이 이 대사를 말하는데 온몸에 전율이 느껴져서 하마터먼 기립박수를 칠 뻔했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친구와 함께 '내가 만약 이 영화 속의 상황에 처했었다면'이라던지 영화 캐릭터 대사를 따라하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여행을 와서 본 영화는 왠지 더 특별하고,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마지막 날, 여행의 끝

1. 여행의 마무리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다. 왜 벌써 여행이 끝났지? 정말 말 그대로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너무나도 아쉬웠다. 부산 3박 4일이면 너무 긴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정말 아쉬웠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번 만큼은 딱 하루만이라도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맑은 날씨의 광안리를 만끽하며 아침 산책을 끝내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어제의 점심시간의 모습과는 다르게 광안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렇게 일을 안 하고 노는 사람들이 많다고? 직장인의 시선에서 그런 우스갯소리를 하며 마지막 식사로 규카츠를 먹고는 부산역을 향했다. 지나가던 길에 줄 서있던 곳에서 먹은 규카츠는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누군가가 부산에서 뭘 제일 맛있게 먹었냐고 하면 조개구이 다음으로 규카츠라고 하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산 명물이라고 불리는 낙곱새, 밀면, 국밥은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게 좀 우습기는 하다. 


2. 갑자기 쏟아진 폭우

부산역으로 향하는 길에 탄 버스의 운전기사님은 보통 과격하신 것이 아니었다. 엄청 터프하셔서 우리의 속을 신랄하게 뒤집어놓으셨다. 좋지 않은 속을 부여잡고 내리니, 갑자기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짐과 옷의 절반은 비에 적셔진 채로 우리는 그렇게 역에 도착하여 기차에 탑승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참. 끝까지 얼레벌레 되어버린 우리의 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3. 이제 다시 고향으로

나는 대전으로, 친구는 서울로 올라갔다. 여행을 끝내고 올라가는 길에 고향이 있으니 잠시 가는 길에 쉬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그 감각이 아직 여행이 꿈같이 느껴져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기차 역에서 내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녀왔습니다>라는 그 문장을 내뱉을 때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그제서야 여행이 끝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향에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감각이 들었다. 


그래, 아직 나의 여름방학은 끝나지 않았다. 

남은 기간은 여행을 추억하면서, 또 나의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지. 


여름방학이라는 것은 참 좋은 단어다.

다음 여름방학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여러분들과 여름을 나눠보고자 배경화면을 준비했습니다. 아래의 링크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OCEAN WALLPAPER: https://posty.pe/8k0vt5

BOAT WALLPAPER: https://posty.pe/3ziwh9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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