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부자는 못될 것 같다
나는 부자가 될 수 없겠다. 유튜브 메인에 뜬 동영상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든 생각이었다.
20살 때 하지 않으면 후회하는 것,
하루 15분으로 월 100만원 버는 방법,
꼭 사야 하는 꿀템,
없으면 안되는 패션 아이템
…
온갖 후킹을 위한 썸네일이 각자 아우성이었다. 나를 먼저 클릭해 달라고.
홀연히 이끌려 재생을 시작하면 결국은 뻔한 이야기다. 모두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돈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물질만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문장처럼 자연스럽게 결론이 떠올랐다.
‘아, 나는 부자가 될 수 없겠구나.’
이유 첫 번째, 사람들은 자신에게 당장 이득이 되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난 그런 것보다 본질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다.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돈을 어떻게 하면 많이 버는지 등. 물론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런 방법을 소개하기 보다는 그래서 왜 우리가 돈을 벌어야 하는지, 결국 이 물질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본질적인 이유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돈을 많이 버는 일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그 외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이유 두 번째,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소재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그 점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난 그걸 할 수 없다.
자극적인 것들로 컨텐츠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소비 하게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재능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해서 먼지 묻은 돈을 벌고 싶지 않다. 물론 먼지가 묻었다는 표현은 언제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비유다.
마지막 이유 세 번째, 결국은 나도 물질주의를 조장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난 의문이 든다.
모든 것들을 좋아보이게 포장해야 한다. 물질들로 컨텐츠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소비의 욕구를 불러 일으켜야만 성공의 지름길에 가까워진다. 이 과정에서 진심으로 좋지 않은 것들도 컨텐츠로 만들려고 하다 보면 강박이 생기거나 그것들을 만듦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물질주의를 조장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광고도 받고, 수익도 늘어나면 좋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취향을 찾게 해주거나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면 그건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본질을 떠나 큰 규모의 부를 축적하려는 사람은 다만 자신의 자본을 불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일 뿐이지.
하지만 결국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남들이 생각하는 부자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겠지. 50억은 있어야 한다, 그것도 부족하다 100억 정도는 있어야 부자다.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적어도 내가 되지 못하는 <부자>와 관련된 정의는 아니다.
나의 사전에 표기된 부자란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누가 나에게 뭐라 해도 불필요한 이유라면 가볍게 흘려 들을 수 있는 여유, 아침 햇살과 함께 커피 한 잔을 하며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날이 좋다는 이유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꽃을 선물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 정의를 부자가 아닌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통상적인 부자는 못 되겠다.
다만, 마음의 여유가 있는, 좋아하는 책의 문장을 곱씹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겠지.
그거면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