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이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넌 항상 바쁜 것 같아. 정말 부지런해보인다 멋지다.
주변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듣던 말이었다. 난 그저 그런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생활을 이어 갔을 뿐, 바쁜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항상 움직이고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에는 무려 주 5일 약속을 잡았다.
친구랑 새로운 카페 가보기, 평소에 가고 싶었던 서점 찾아 가보기, 한강에서 치맥 먹기 등등.
정말 소소하지만 해 보지 못했던 경험들을 원없이 시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3년차가 되는 지금, 늘 삶이 그렇듯이 새로움이 많이 줄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여전히 하고 싶은게 많았다. 여전히 바빴다.
주 5일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는 대신, 나와의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오롯이 나와의 데이트라는 명목으로 나에게 집중해 보는 것.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이나, 운동을 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카페를 가되 친구와의 수다가 아닌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기로 나와 대화하기. 무언가를 사유하고, 창작하는 일. 전과는 다른 방식의 바쁨이었다.
나의 오랜 관찰 끝에, 나에게 바쁘지 않다는 것은 단순한 평온이 아니라 꿈이 없다는 신호임을 깨달았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한시도 쉬지 못하는 불쌍한 한국인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그런 불안감이 아닌, 내가 어떤 것을 느끼고 좋아하는지 고민하는 데에서 온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런 바쁨이 가끔은 독이 되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때로는 선택과 집중이 힘들었다. 어느 날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탓에, 매번 시간에 쫓겨가며 일을 벌이고 나서는 수습하느라 힘들어서 울었던 날도 있었다. 어느 날은 충분히 여러가지를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고 채찍질만 하다가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행복하자고 하는 일들의 본질을 잃고 그저 아무 의미 없이 반복만 하고 있던 내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만의 처방전을 내렸다. 하루에 무엇이든 세 가지를 했다면, 그건 잘 산 하루라고. 그렇게 다독여주기 시작했더니 바쁨 사이에서도 마음이 안정을 찾았다. 무엇이든 치우치면 독이 된다. 외줄타기를 할 때 균형을 잘 잡아야 사는 것처럼, 인생도 그런 느낌이다.
오늘도 여전히 바쁘고, 앞으로도 바쁠 예정이다.
그럭저럭 사는 어른이 아닌, 꿈이 있는 어른이 되고 싶으니까. 그래서 난 항상 바쁘다.